독립기념관, 일본신문 안중근의거 보도기사 자료집Ⅰ·Ⅱ 발간
‘모지신보’는 일본 후쿠오카(福岡)현 모지시에서 발행된 일간신문으로(1892년 창간 ~ 1938년 폐간) 한국관련 기사를 타 신문에 비해 보다 많이 보도한 신문이다. 특히 ‘안중근 공판 속기록’전체를 게재하였고,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이유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보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자료집 Ⅱ에는 이번에 새로 발굴된 안중근의사의 자필이 수록되어있다. 자필은 안중근의사가 사형을 선고받은 후 일본인 미즈노 변호사의 수첩에 기록한 것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曲突徙薪無見澤(곡돌사신무견택)
곡돌에 섶을 제거한 이는 혜택을 바라지 않는데
- 焦頭爛額爲上客(초두난액위상객)
머리를 태우며 이마가 짓무른 이가 상객이 되었구나
- 爲楚非爲趙(위초비위조)
이는 초를 위한 것이지 조를 위한 것이 아니라네
- 爲日非爲韓(위일비위한)
일본을 위한 것이지 한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네
(* 오사카마이니치신문, 1910년 2월 22일자 7면)
‘曲突徙薪(곡돌사신)’은 ‘漢書(한서)’‘곽광전(藿光傳)’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굴뚝을 구부려 놓고 또 굴뚝 가까이에 쌓아 놓은 땔감을 다른 곳으로 옮겨 놓는다’는 말인데 ‘화근을 미리 없앰으로서 재앙을 미리 방지한다는 뜻이다. 안중근의사는 자신의 의거가 이토 히로부미라는 땔감이 한국이라는 연돌(한국침략)에서 불을 내지 않도록 하였고 동양이라는 집(동양평화)을 태우지 못하게 한 선각자적 위업임을 밝힌 것이다. 더불어 이토 처단은 한국과 일본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밖에도 안의사의 의연한 태도가 일본인에게 ‘메이지시대의 애국지사의 면모를 엿보게 했다’(모지신보, 1910년 2월 24일자 “안중근의 일면”)라는 기사와 ‘안중근이 이토를 쏜 총탄의 간격이 각각 약 6cm를 넘지 않을 정도의 명사수’ 라는 기사(모지신보, 1910년 11월 1일자 “가와카미 총영사 귀국”)는 놀랄만하다.
또한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15개의 이유가 가감 없이 모두 보도되어 명성황후 시해에서 시작되어 러일전쟁 후 일본의 기만적인 침략과정을 안의사의 입을 빌어 그대로 언론을 통해 일본 국민에게 알리는 결과가 되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내용이다.
이번 기사모음 자료집은 안중근의사 순국 100주년을 계기로 작년 12월‘중국신문 안중근의거 기사집’과 올해 3월 ‘안중근 문집’발행에 이어 세 번째로서 안중근의사에 대한 재평가와 독립운동사 연구의 지평확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웹사이트: http://www.i815.or.kr
연락처
독립기념관 홍보사업팀
041-560-0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