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한국을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킨 수출주도형 경제발전전략은 1,000년전 海上王 張保皐의 국제무역활동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글로벌 전략은 오늘날「동북아 경제허브」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6월 8일(수) 한국무역협회(회장 金在哲)와 장보고기념사업회, 삼성경제연구소(소장 정구현)가 공동으로 우리 민족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긴 張保皐의 업적과 활동을 재조명하고자 「海神, 글로벌 전략가 장보고」심포지엄을 개최하였다.

글로벌 전략가 ‘해신(海神)’ 장보고의 업적과 정신이 시사하는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함으로써, 해양대국, 무역강국을 통한 21세기 동북아 중심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지혜를 모색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코엑스에서 개최됐다. 본 심포지엄은 장보고의 역사적 재조명(세션 1), 장보고의 국제무역 성공전략(세션 2)을 살펴본 후 장보고를 통해 본 시대정신과 동북아협력방안에 대한 종합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야마사키 마사토시 일본 국학원대학교수는 “장보고의 교역 네트워크는 불교가 중요한 매개체였으며, 일본의 불교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히고, “역사적으로 장보고의 등장은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아시아 무역사, 세계관계사면에서 매우 흥미로우며, 향후 동북아의 발전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당시 신라인은 국경을 넘어 각 지역에 포진하면서 무역을 위해 동료관계를 유지하며 정보를 교환하는 등 네트워크를 통해 국제무역을 전개하는 이른바 ‘교역 디아스포라’(교역 이산공동체)를 구축했다”며 해외네트워크를 활용한 글로벌 전략가로서의 장보고에 주목했다.

김호성 서울교육대 총장은 “장보고는 새로운 가능성이 끊임없이 도전하는 혁신마인드, 民·軍·産 복합체로 토탈 솔루션을 제공하는 복합서비스모델, 해외동포를 조직화해 네트워크로 활용할 수 있는 안목과 식견, 무형자산의 창조적 활용 등 국가발전 전략가로서의 안목은 우리나라를 동아시아 중심, 세계 허브(hub)국가로 발전해 가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밝혔다.

세션 1에서 토론자로 나선 이승영 동국대 교수는 “정부의 글로벌 비전 부재와 단견적 시각, 지나친 제도장벽 등의 면에서 장보고가 활동하던 1천여 전과 지금은 다를 바 없다”며, “정부는 현재 많은 장보고를 실패자로 만들고 있지 않는가, 장보고의 실패를 지금도 반복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반문하며, 장보고가 60여년간 산동성, 강소성 등 5대 성(省)을 지배했던 이정기 정권을 계승 발전시켜 발해에 이어 제3의 고구려를 탄생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세션에서 허재전(許在全) 전 중국복건대학 교수는 “해상실크로드는 종교와 문화, 과학기술 등의 교류 뿐만 아니라 당나라 주변국들과 멀리 이슬람권과의 경제교류 및 무역을 촉진시켜 국경을 초월해 공동발전을 도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글로벌 CEO’로서 해상왕 장보고를 주목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기업가정신과 軍·産·商 복합서비스 개념의 新비즈니스 도입, 시장과 제품의 소싱(sourcing) 등을 통해 해외 네트워크를 국내 해상세력과 연계시킴으로써 동북아 해상교역네트워크를 주도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강정모 경희대 교수는 토론에서 “장보고 선단이 동양3국의 무역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북경-항주를 잇는 경항(京杭)대운하가 개통되어 중국의 중요 수운(水運)교통 요충지에 진출해 있던 고구려, 백제 유망민을 포함한 재당신라인들의 활약과 황해, 동지나해, 일본해 등의 해류, 조류, 풍향에 능통한 백제계 신라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황상석 세계닷컴 사장은 기업들이 실력과 능력을 갖춘 CEO를 양성하려면 실력을 중시하는 인사제도와 해외문제를 체계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해외문화체험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며 학계, 무역업계 등이 협력해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60~70년대 해외에 진출해 은퇴할 나이가 된 재외동포들의 기업을 인수,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장보고 사이버무역아카데미’ 개설을 제안했다.

강봉룡 목포대 교수는 “드라마 ‘해신’은 부정적인 장보고상을 일거에 깨뜨려 장보고를 ‘해신’과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위력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밝히고, “냉정한 역사연구와 역사교육을 통해 머리에 안착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종합토론에서 전문가들은 “이번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1천여년 전의 장보고가 한, 중, 일 3국의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극복하고, 아시아태평양시대를 확고히 할 동북아 경제협력시대를 열어 가는데 중요한 사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데 입을 모았다.

한편 장보고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金在哲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이날 드라마 ‘해신’ 제작팀에게 감사패를 전달했으며, 특히 드라마 ‘해신’에서 자미부인으로 연기해 인기몰이에 기여했던 탤런트 채시라氏가 개회식 사회를 보는 이벤트로 참가자들로부터 높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붙임 : 장보고 심포지엄 발표논문 요약

1. 논문발표일 : 2005. 6. 8
2. 발표장소 : 코엑스 본관 컨퍼런스룸 401호
3. 논문발표자 : 8명
- 외국인 2명 (야마사키 마사토시 일본 국학원대학 교수,
許在全 前 중국복건대학 교수)
- 내국인 6명 (이호성 한국교대 총장, 강봉룡 목포대 교수,
이승영 동국대 교수, 강정모 경희대 테크노
경영대학원장,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황상석 세계닷컴 사장)
차 례
1. 장보고시대의 동북아시아 무역 / 1
(야마사키 마사토시, 國學院大學 교수)
2. 국가발전전략가로서의 장보고 / 3
(서울교육대학교 김호성 총장)
3. 7-10세기 해상실크로도의 발전과 경제문화교류 / 5
(許在全 前 中國福建大學 교수)
4. 천년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 / 7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5.'장보고시대의 동북아무역'관련 토론 / 9
(강봉룡 목포대 교수, 島嶼文化硏究所 소장)
6.'국가발전 전략가로서의 장보고'관련 토론 / 10
(이승영 동국대학교 교수)
7.'장보고시대의 해양실크로드'관련토론 / 12
(강정모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원장)
8.'천년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관련 토론 / 14
(황상석 세계닷컴 사장)

1. 장보고시대의 동북아시아 무역
야마사키 마사토시, 國學院大學교수

장보고 시대의 신라상인들은 신앙심이 깊은 불교신자들이 대다수였으며 이들은 불교 고승들을 극진해 대접하고 불경, 불구, 불상 등을 일본에 전함으로써 동북아 지역의 역내교류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장보고가 세웠던 법화원은 불교를 믿는 각국의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의 역할을 했으며 외교, 무역 터미널로서의 기능을 했다.

일본의 고승 엔닌(円仁)이 장보고가 세웠던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1)에 머무른 것을 계기로, 장보고와 연관된 재당(在唐) 신라인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여행했던 사실은 그가 여행 중에 기록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신라인들은 국경을 넘어 각 지역에 포진하면서 무역을 위해 동료 관계를 유지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등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국제무역을 전개하는 소위 ‘교역 디아스포라스(Trading Diasporas, 교역이산공동체)’를 구축하여 서로 의존하였다.

장보고 시대에 활약했던 신라상인들은 독실한 불교도가 대부분이었다. 각종 일반 상품들과 함께 경전, 불구, 불상 등이 상인을 통해 일본에 전해졌으며 구법, 순례를 원하는 승려들의 왕래가 촉진됐다.

실례로 사원을 관리했던 장 영(張泳)2)과 청해진병마사(淸海鎭兵馬使) 최 훈(崔暈)3)은 엔닌과 교류하면서 그를 돕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모두 독실한 불교도였다.

이와 같은 사례는 9세기 중반만 보더라도 적지 않다. 국제무역인들 뿐 아니라 중앙, 지방 관료들 중에도 신앙이 돈독한 사람들이 있어 ‘교역항’에서의 그들의 교류가 무역을 보장하는 수단이 된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말하자면 불교적 교류는 국가나 언어를 초월하여 동북아 여러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서로 연결해 주었다.

1) 적산법화원 : 산동성(山東省) 영성시(榮成市) 석도진(石島鎭) 북부에 소재
2) 張泳(장영)은 양주의 신라상인으로 엔닌을 위해 불경 등의 구입을 주선해 주고 보관도 해었다. 장영은 신라의 숯장수와 나무장수로 위장하며 활동한 엔닌이 그의 밀입국 사실로 적발 구금되자 중국 관헌에게 뇌물까지 뿌려 엔닌을 구출해 주었다.

3) 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에 따르면 839년 6월 27일에 청해진병마사(淸海鎭兵馬使) 최훈(崔暈)은 839년 6월 27일에 매물사로서 교관선 2척을 이끌고 적산포에 도착하여 그 다음날 법화사를 찾아와 위문하고서 강남의 양주(揚州)를 향해 떠났다가, 840년 2월 15일에 적산포와 인접한 산동반도 남단의 유산포(乳山浦)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매물사 최훈 일행은 7개월 보름 이상의 장기간에 걸쳐 산동반도 적산촌에서 강남의 양주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순회하며 무역활동을 전개했으며 엔닌이 일본으로 돌아갈 때 자신의 배로 귀국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장보고가 암살당한 후 당나라 신라방으로 망명한 그는 귀국선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던 엔닌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다

2. 국가발전전략가로서의 장보고
서울교육대학교 김호성 총장

현재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IT기술과 조선 및 철강 산업, 뛰어난 교육열 그리고 장보고가 활동하던 1200년전의 지리적 이점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한국인들은 4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24개 가량의 산업에서 이미 세계 일류 수준에 도달할 만큼 세계 최고수준의 기업가 정신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바탕위에서 다음에 열거한 장보고가 국가발전전략가로서 발휘했던 위대한 업적과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우리나라를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 세계의 허브(herb)국가로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1. 혁신마인드
장보고가 민간교역의 신기원을 열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골품제도에 사로잡힌 귀족 출신이 아니었으므로 귀족들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청해진의 설치와 민간교역의 전개과정에서 그는 끝없이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는 개척과 혁신정신으로 일관했다.

오늘날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중 하나는 세계의 높은 문턱에 도전하여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려는 교육개혁 정신이다. 기존 고정관념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하여 중국을 비롯한 후발 개도국들과도 다르고 일본, 미국 등 선진국과도 다른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여 국가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장보고의 개척과 혁신마인드는 오늘날에도 매우 소중하다.

2. 복합서비스를 통한 부가가치의 극대화
청해진은 무역과 관련된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청해진은 민간무역뿐만 아니라 정부의 무역대행, 한·중·일 3국 정부 공식사절 안내, 여객 운송, 선박건조와 수리, 통역 및 선원제공, 종교 문화 지원 등의 기능을 보유했다. 즉, 청해진은 민·군·산 복합체를 망라한 토털 솔루션(total solution)을 제공하여 독보적인 자기 가치의 창출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복합 비즈니스 모델은 뒤로는 후발국의 추격을 받고, 앞에서는 선진국들의 압박을 받는 오늘날의 한국 경제에 매우 절실한 모델이다.

3. 해외동포들의 조직화를 통한 해외네트워크 구축
장보고가 구현한 해상지배 역량의 원천은 동북아 해상과 연안을 거미줄처럼 엮은 네트워크였다. 장보고는 해외거주 신라인들을 네트워크화 함으로써 동북아지역의 해상무역을 주도할 수 있었다. 장보고는 이미 오래전에 해외에 흩어져 있던 신라인들의 거점들을 자산으로 보는 안목과 식견이 있었다.

2001년 기준 해외 거주 한인의 수는 142개국에 565만 명으로 중국, 이스라엘, 이탈리아, 인도에 이어 세계 5위이다. 이는 우리보다 인구가 훨씬 많은 일본이 고작 200만 명인 점을 감안한다면 대단히 많은 숫자임을 알 수 있다. 현재에도 해외한국인들이 한국경제와 국력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한국 상품을 수입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외 거래에 수반되는 운수, 보험 등 대외서비스 부문에 크게 공헌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해외동포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4. 글로벌 전략을 바탕으로 한 현지화
장보고는 긴장완화의 탈냉전 시대, 개방화 시대에 살아남는 노하우를 잘 보여주었다. 그는 과감하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수용하여 동북아의 국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여러 도시에 현지 거점을 건설하여 현지화를 동시에 도모하였다. 현대에서도 글로벌 스탠다드 지향전략은 급변하는 우리 기업들이 급변하는 무역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5. 무형자산의 창조적 활용
장보고의 경쟁우위는 유형적인 것 이외에도 무형적인 것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정확한 항로의 파악, 항해술과 조선술, 각 지역의 산물과 거래 방식에 대한 지식, 조직 내부의 가치와 이념등은 당시의 해양무역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무형의 경쟁우위 요소였다. 청해진은 다른 국가나 조직이 모방하기 어려운 이같은 자산들을 보유하였던 것이다.

무형의 핵심기술을 비롯한 지식기반은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유형적 경쟁우위는 경쟁자가 단기간에 모방할 수 있으나, 무형적 경쟁우위는 장기간의 노력과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 축적이 불가능하다. 한국의 교육은 이점을 명백히 인식하여 무형의 지식기반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3. 7-10세기 해상실크로도의 발전과 경제문화교류
許在全 前 中國福建大學 교수

‘안록산의 난’(서기 755년)을 계기로 당이 국경수비대를 장안으로 이동시키면서 서북지역의 수비가 허술해지자, 토번(吐蕃)이 이 틈을 타 북상하여 당나라는 서역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고 육상 실크로드는 ‘길이 끊기고 왕래가 단절되었다’. 이는 실크로드가 육로에서 해로로 전환되는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였다.

당시 해상무역에서 주로 거래되던 품목으로 비단 외에 도자기가 있었는데 도자기는 해상 운송에 더욱 적합했다. 해상 운송에 투입되는 선박의 적재량이 크고 흔들림이 적어 도자기가 잘 깨지지 않기 때문이다.

당대에 해상 실크로드의 주요 통로로 두 개의 노선이 있었다. 하나는 등쩌우(지금의 산동성 봉래현)에서 시작되어 바다를 건너 고려로 연결되는 발해노선(渤海道)이였고 다른 하나는 광쩌우에서 시작되는 통해이도(通海夷道)이다.

중국과 해외 제국의 정치, 경제적 연계와 문화 교류는 해상실크로드의 등장으로 육상 실크로드의 쇠퇴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해상 실크로드는 중국과 외국간의 종교와 문화교류의 중요한 경로가 되었다. 불교가 육로와 해상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에 전파되었으며 이슬람교, 힌두교, 경교, 마니교 등도 유입되었다.

당으로 유학했던 승려의 초청으로 중국 고승 감진과 견정불이가 일본으로 가 불교를 널리 전파했고 당대의 전성기 건축예술, 조각예술, 의학 등이 일본으로 전수됐다. 또한 중국의 도교와 민간 신앙 또한 조선, 일본, 베트남, 동남아 등지로 전파되어 이들 국가의 종교, 문화, 의학 등에 영향을 미쳤다. 해상 실크로드는 국내외 과학기술 교류도 함께 촉진시켰다.

당대에 선도적 지위에 있던 중국의 과학기술 성과가 해외로 전파되어 세계 과학기술과 문명의 발전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의 선진 과학기술 성과를 도입하여 중국의 문명을 더욱 발전시켰다.

당대의 과학 문화는 신라에 커다란 영향을 미쳐 중국의 천문, 역법, 산술서적, 의서 등 많은 서적들이 신라로 전해으며 장안성(長安城)의 건축 규모와 배치가 신라의 도시 건설에 반영되었다.

당나라에 있던 일본 유학생과 승려들은 당대의 전적(典籍)을 적극적으로 확보하여 천문, 역법, 산학, 의약, 음률 등에 관한 많은 중국 전적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아스카, 나라 시대의 도성들은 바로 당나라의 장안성과 뤄양성을 본떠 지은 것이다

중국의 물시계(漏刻), 해시계(測影) 등의 기구, 제지법, 인쇄술, 수차, 도자기, 동전, 병기 등의 기술이 모두 당대에 일본으로 전해졌다. 일본의 찻잎재배 또한 송대의 고승 영서가 일본에 가져가 심으면서 시작되었다.

인도의 천문과 수학, 외과수술법이 중국에 유입됐고 중국의 고승 의정이 인도에 머물며 중국 전통약재를 이용해 인도인들을 치료해주어 많은 환영을 받았다.

대당제국과 대식제국(大食帝國, 아랍제국)간의 탈라스 전투에서 포로로 잡힌 당나라 병사 중에 제지, 방직 등의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로부터 중국의 제지 및 방직 기술이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 각국에 전파되었다.

중국의 도자기 제조기술과 연단술 등이 모두 당나라 때 아랍 일대로 전파되었다. 아랍의 ‘猛火油(석유)’가 중국에 전해진 후 빠르게 전쟁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해상 실크로드는 당나라와 주변국들과 멀리 이슬람권과의 경제교류 및 무역을 촉진시켜 국경을 초월해 공동발전을 도모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4. 천년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
한창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현재 우리나라가 자리잡은 동북아시아 전역을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장보고 시대와 마찬가지로 남북은 분단되어 있으며 주변국들 간의 긴장은 이완되어가고 있다.

동북아시아 지역은 세계 육지면적의 22%, 인구의 25%를 차지하는 지역으로 조만간 경제적으로도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연결하는 중심지로 부각되고 있다. 더욱이 세계적인 IT기업을 보유한 IT강국으로서 한국은 정보, 기술, 문화의 측면에서 허브(hub)역할을 수행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

천여년전 해상무역의 주도권 장악을 통해 신라, 당, 일본 3개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했던 장보고의 성공요인을 분석하는 노력과 함께 이를 적극 활용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CEO로서의 장보고가 갖고 있는 경쟁력은 다음과 같은 부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기업가정신 : 끝없는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
- 동북아의 광활한 지역을 상권으로 장악

장보고가 민간교역의 신기원을 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존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골품제도라는 기존 질서에 찌든 신라의 귀족들과는 달랐다. 그는 귀족출신이 아니었으므로 '귀족다운 고정관념'이 없었다. 청해진의 설치와 민간교역의 전개과정에서 그는 끝없이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했다.

2) 복합군진 :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軍·産·商 복합서비스의 개념을 도입
- 군사력과 상업력 동시 구축
- 제조/판매/삼각무역/인력,화물수송 등 군사적, 행정적, 상업적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

청해진은 무역과 관련된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新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청해진은 단순한 무역업무 뿐만 아니라 정부의 무역 대행, 3국 정부 공식사절 안내, 여객 운송, 선박건조와 수리, 한·중·일 통역 및 선원제공, 종교/문화 지원 등의 기능을 보유했다.

3) 기술중시
- 신라의 조선술과 항해술을 경쟁력의 기반으로 삼음

장보고 휘하의 군사 및 무역선단이 저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신라의 발달된 조선술과 항해술 때문이었었다. 신라의 조선술과 항해술은 장보고가 나타나기 이전부터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었는데 이것은 역대 신라왕들이 꾸준히 추진했던 적극적인 해양정책의 결과였다.

4)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 정보의 신속한 전달,
- 시장 및 제품의 Sourcing

장보고의 무역모델은 단지 한, 중, 일을 연결하는 국제간 3국 무역에 그치지 않았다. 청해진은 신라, 당, 일본 항로의 중심일 뿐 아니라 페르시아, 인도, 태국 등 동남아시아와 중국 동남부를 연결하는 남양항로와 동북아 항로의 연결고리였다. 중국내의 남북간 무역을 담당했고 나아가서 절강성, 복건성 및 양자강 일대에 진출해 있던 페르시아 및 동남아시아 상인들과의 지역분할적인 상거래도 주도했다.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것은 나, 당, 일에 거주하는 신라인들을 포괄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재당 신라인사회와 일본 하까다 주변에 자리잡은 신라인들을 청해진에 거점을 둔 국내해상세력과 연계시킴으로써 동북아바다를 포괄하는 네트워크가 완성될 수 있었다.

5.'장보고시대의 동북아무역'관련 토론
강봉룡 木浦大 歷史文化學部 敎授, 島嶼文化硏究所 所長

장보고는 무역을 통해 신라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보고시대’에 신라와 일본에서 외래품을 선호하고 국산품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었으며, 외래품을 사기 위해 가산을 탕진하는 사례도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동북아지역의 무역이 매우 활발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동북아지역에 무역이 크게 일어난 배경은 무엇이고, 동아시아 무역에서 청해진 장보고세력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수행했다고 볼 수 있을까? 참고로 당시 장보고와 직접 교유했던 당의 시인 杜牧은 ‘한 나라에 한 사람만 있으면 망하지 않는다’면서 장보고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극찬한 것으로 보아 장보고가 신라에 기여한 경제적 공적은 지대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또한 장보고는 반역자가 아니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장보고가 거병한 시점을 보면 왕위계승권자 사이(제륭과 균정)의 분쟁에 끼어들었던 것이 아니라, 신하인 김 명이 희강왕(제륭)을 자살하게 만들고 즉위하자(민애왕), 권력투쟁에서 패해 장보고에게 의탁해 지내던 김우징(훗날 신무왕) 등이 반역자를 응징하자고 설득함에 응하여 거병한 것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장보고가 정치적 야망이 있었다면 처음부터 김우징을 도와 희강왕을 제거하였을 것이나, 민애왕 김 명이 반역행위를 일으키자 비로소 거병하였던 것을 주목해야 한다. 왕위에 오른 김우징(신무왕)과 그의 아들(문성왕)은 장보고에게 잇따라 ‘感義軍使’, ‘鎭海將軍’의 특별 작호를 내리고 장보고의 딸을 次妃로 삼으려 했던 것은 장보고의 보호를 받아 權臣의 도발을 막고 왕위유지를하려는 의도로 본다면, 국왕이 장보고를 암살했다는 것은 이해될 수 없다.

아마도 권신 김양의 소행으로 봄이 자연스럽다. 조선시대 최부와 실학자 안정복 등도 이러한 생각을 피력한 바 있으며 근대 역사학에서 엄밀한 고증도 거치지 않고 장보고를 반역자로 보는 편견이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6.'국가발전 전략가로서의 장보고'관련 토론 이승영 동국대학교 교수

일천여년전 한민족을 빛낸 장보고의 일생을 통해 정부와 기업인, 그리고 미래의 장보고가 될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1. 정부는 지금 현재에도 많은 장보고를 실패자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장보고가 활동하던 일천여년전과 현재는 다음의 면에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첫째는 정부와 기업간의 정경유착이다. 신라 왕실은 왕권다툼에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장보고를 지원하였으며, 왕권을 차지한 후에 서로 상생하다가 왕권의 위협이 되자 장보고는 물론 청해진을 무자비하게 멸망시켰다. 제3공화국 이후 지금까지 계속 반복되고 있는 정부와 기업과의 유착은 장보고 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정부와 기업은 항상 협력과 견제의 긴장관계를 유지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는 지나친 제도상의 장벽이다. 장보고 당시에는 신분제도가 큰 장벽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인·허가라는 진입제도, 기존의 지원제도 활용에 대한 제한 등 각종 제도가 장보고와 같은 새로운 인물의 탄생을 가로 막고 있다. 자유시장 경제하에 완벽한 자유경쟁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2. 경영자는 장보고의 실패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장보고의 탄생에는 우리민족 이정기 등이 이루어 놓은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보고의 주된 무대는 당의 양주, 산동성 등 당의 해변지역이다. 당시 이 지역에는 수만 내지 수십만으로 추정되는 신라, 고구려, 백제, 발해의 우리 민족이 살고 있었다. 이러한 우리민족을 결집시킨 자는 당나라 왕실도 통제할 수 없었던 발해에 이어 제 3의 고구려라고 할 수 있는 이정기 정권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정기는 아들, 손자 이사도까지 60여년간 산동성, 강소성 등 5대성의 절도사였다.

만약 장보고가 고구려 이정기 시대를 계승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목표를 설정하였다면 서해바다를 사이에 두고 제 3의 고구려가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오늘의 경영자는 자신의 사리사욕에 우선하여 국민의 기업을 죽이고 있지 않는지 자문해 봄은 의미 있을 것이다.

3. 학생들은 글로벌 리더로서의 준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장보고가 선박제조나 항해 또는 무역에서 왕이 된 것처럼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1인자가 될 수 있도록 전문지식을 익히며, 발전 지향적으로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불굴의 정신을 불태우는지 그리고 항상 진실성, 포용력 및 인간적 매력을 풍기려고 노력하는지를 수시로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는 학생 개개인의 실력과 인품이 바로 한국경제의 경쟁력이자 이 사회의 건강의 척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화의 다양성을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오직 준비된 사람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00년 전 당시 세계의 전부인 동북아 해상의 주인공이었던 장보고의 글로벌 정신이 21세기 세계의 중심으로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젊은이들의 가슴에 살아있어야만 한다.

7.'장보고시대의 해양실크로드'관련토론
강정모 경희대 테크노경영대학원 원장

장보고 대사가 다닌 신라, 일본, 남-북 중국의 길은 바로 청자와 금은보화를 실어 나르던 우리 선조들의 “바다의 비단길”이었으며, 그가 다스린 중국 산동반도, 하남성, 강소성, 절강성 일대의 신라방(新羅坊)과 신라인촌(新羅所)은 고대로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에 이르기까지 우리 선조들이 활약하였던 생활 영역인 동시에 첨단상품 공급기지로 오늘날의 경제자유구역이라 할 수 있다.

장보고가 활동하던 당시의 서양세계는 전반적인 문화 및 경제수준이 동양 3국에 비하여 크게 낙후되었었으며, 해적 바이킹족의 출몰로 전전긍긍했던 사실에 비추어볼 때, 해적을 소탕하고 해양질서를 수호했던 장보고 대사는 世界史에 빛나는 國際經營人이었다.

청해진을 거점으로 한 장보고의 활동은 단순히 한·중·일을 연결하는 국제 3각 무역에 그치지 않고, 중국 내의 남북 중계무역뿐 만아니라, 절강성, 복건성, 광주성 및 양자강 일대에 진출해 있던 페르시아 및 동남아시아 상인들과의 상거래도 주도한 우리나라 국제무역상의 효시이었다.

청해진은 범선시대에 한·중·일 항로를 장악하고 왕래하는데 천혜의 요새로 오늘날의 홍콩과 싱가폴과 같은 독립적인 국제무역 및 서비스의 중계기지이며 자유항이었고, 굴지의 국제항구로써 동남아 물류기능을 자임하고 나선 원형(原型)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신라방, 신라소, 신라인촌은 산동반도(황해 橫斷항로)와 강소성(京抗대운하), 절강성, 복건성(南中國항로), 日本의 하까다 태재부(太宰府) 등 동북아시아의 해운 및 수운의 교통요충지 및 상업도시에 분포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 샴 등 서방 무역세력을 한·중·일에 중계하는 역할을 수행하여 오늘날 국제물류, 해운·조선업 및 중계무역의 효시이었다.

장보고의 선단은 동북아 중요 항로인 한반도와 산동반도를 잇는 노철산(老鐵山)수로와 황해(黃海)횡단항로를 포함하는 북중국(北中國)항로와 한반도 서남부와 절강성 영파 또는 강소성의 양주를 잇는 南中國항로(일명 동중국해 斜斷항로) 등 새 항로의 개척자이며 최대 수혜자였다.

장보고 선단이 동양 3국의 무역왕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북경과 항주를 잇는 경항(京杭)대운하가 개통되어 중국의 중요 수운(水運)교통요지에 진출해 있던 재당신라인(고구려, 백제 유망민)들의 활약과 황해, 동지나해, 일본해 등의 해류, 조류 및 풍향에 능통한 백제계 신라인들에 크게 힘입었다.

8.'천년전의 글로벌 CEO, 해상왕 장보고'관련 토론 황상석 세계닷컴 사장

글로벌 CEO는 국가발전과 국부창출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다. 장보고 대사가 글로벌 CEO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한다. 우리 후손들이 글로벌시대를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지혜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교훈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기업들이 실력과 능력을 갖춘 글로벌 CEO를 양성하려면, 실럭을 중시하는 공정한 인사제도를 운영해야 한다.장보고는 미천한 신분으로 신라에서의 활동에 한계를 느껴 당나라로 건너가 무령군 군중소장으로 진급하고 실력과 능력, 리더십을 갖춘 국제지도자로 성장했다. 이러한 국제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신라로 귀국한 후 청해진 대사로 부임할 수 있었다.

글로벌기업들은 학벌이 아니라 실력을 중시하는데 반해 국내 기업은 아직도 학연과 지연, 혈연 등 연고주의를 우선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도 실력과 능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 양성에 역점을 둬야 한다. 상당수 글로벌 CEO들은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으로 ‘공정한 인사제도’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평가제도가 있기 때문에 직원들은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학연과 지연, 혈연에 얽매일 필요도 없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글로벌 리더십을 갖춘 CEO 양성을 위해 다양한 해외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해외문화체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장보고 대사가 글로벌 전략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당나라로 건너가 다양한 이국문화를 체험하고 습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무역에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무역을 하고자하는 국가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야 할뿐 아니라 해외 바이어들과 무역을 할 수 있는 ‘살아있는 비즈니스 문화’를 터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렸을때부터 해외문화를 주체적으로 습득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학계와 무역업계 등이 협력하여 <장보고 사이버무역아카데미> 개설을 제안한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고 60-70년대 해외에 진출한 재외동포들이 은퇴할 나이가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들의 기업을 인수, 해외진출할 수 있는 기반을 모색하자는 뜻에서 제안한 것이다. 나의 제안은 국내에서 6개월 정도 IT기술과 사이버무역 및 진출희망 국가의 언어를 습득한 뒤 해외에서 성공한 재외동포 기업에 1~2년기간 연수를 보내서 해외비즈니스와 해당 국가의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제 2의 장보고 대사를 양성하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셋째,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들을 하나로 묶어 국제무역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인적-물적 정보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장보고 대사는 교통과 통신이 거의 발달되지 않았던 당시 상황에서 당나라와 일본, 신라 등 3국을 잇는 인적- 물적 네트워크를 구축함으로써 각종 고급정보를 수집하여 단기간내에 이들 국가를 잇는 민간무역을 전개, 해상무역망을 장악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처럼 정보화시대에 국제무역을 통한 국부창출을 위해서는 해외 정보(예: 원유 가격 및 테러, 기상 등 다양함)를 실시간 수집할 수 있는 인적-물적 정보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보고 대사가 재외신라인 공동체를 구축했듯이 현재 142개국에 살고 있는 600만명의 재외동포를 묶어 ‘한민족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단순히 재외동포들을 초청, 식사하고 명함을 나누는 그런 모임이 아니라 글로벌 전략가인 장보고 대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모국 기업과 재외동포가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네트워크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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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 장보고심포지엄 사무국 6000-5069/5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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