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2막 도전기! 취미를 살려 창업으로…운동처방연구소 민찬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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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구루
2011-09-06 18:10
서울--(뉴스와이어)--저는 2003년 7월 IMF 금융위기 여파로 근 30년간 열심히 일했던 OO은행에서 구조조정으로 인한 비자발적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지만, 직장 내의 서열과 어린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퇴직을 받아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저의 형제들은 불과 1년 사이에 4형제 중 막내만 직장 생활을 유지하고 3형제가 모두 퇴직을 하게 된 힘든 시기였습니다. 게다가 부모님의 병환 치료비와 성장하는 자녀의 사교육비의 부담은 저를 더욱 힘들게 하였습니다.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하고 맞이한 퇴직은 그야말로 하루하루가 고통스럽고 근심의 나날이었습니다. 가족들의 눈치, 약속 이행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주변, 비열할 정도의 밥그릇 싸움, 나이 어린 친구들과의 세대차이, 무조건적인 금전에 대한 욕심 등... 전혀 딴 세상에 내동댕이쳐 진 기분이었습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밑바닥 영업이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구직 사이트 및 일자리 신문을 찾아 구직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연락이 오는 곳은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하는 제품판매, 다단계판매, 보험영업 또는 저를 역이용 하려는 도산 위기 직전의 중소기업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제가 은행원 출신이기에 자기가 아는 회사에 자금담당 상무이사로 자리를 마련해 주었었습니다. 허나 결국 자본 출자 쪽으로 계속 부담을 주는 바람에 결국 퇴사하고 말았습니다. 친구까지도 저를 이용해 보려는 숨은 심보가 있었지요. 주변은 온통 믿을 수가 없었고, 빨리 돈벌이를 해야 할텐데...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다 2004년에 우연히 대학 친구가 경영하는 물탱크 제조 회사에서 직접 영업을 배우기로 작정하고, 새벽 6시부터 직접 운전, 실무적 서류 준비, 공사도면 및 시방 견적, 물품 납품 준비, 차량 수배, 납품 시공, 공사완료 후 준공 검사, 대금 청구 등을 혼자의 힘으로 직접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은행원 시절 꿈꿔보지도 않았던 모습이지만, 약 2년 동안 경험을 해 보며 밑바닥 정보가 가장 값지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비록 임금 수준이 기대 이하여서 가정생활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요.

2006년부터 2년간은, 한 지인분의 무조건적 대표이사직 위임으로 인해 아스팔트 재포장 공사를 하는 중소기업을 경영하기도 했었습니다. 기업 매출 향상을 위해 노력했지만 기대했던 이익 실현은 어려웠고, 결국 M&A로 회사를 매매하면서 대표이사직도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대표이사로 있으면서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다시 조직에서 나와 혼자가 된 저는, 중견 고용 센터나 구직 사이트를 통해 재취업을 하려고 노력했으나 특별한 기술도 없고 은행원이라는 저의 경력은 팔리지 않는 재고 상품과 같았습니다. 재취업에 급급하여 정신없이 일하고보니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버렸더군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많았지만 직장 생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80~90세까지 장수하는 고령화 시대에 적응해 나가려면 지금 당장 수입에 눈이 어두워 접근하기 보다는 20~30년 후의 장기적인 안정을 찾아야 되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기 분석에 들어가 저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행 관련 업무 외에 제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운동’ 이었습니다. 직장생활 초기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휘트니스 원리, 역학, 물리학 등에 깊이 관찰하는 습성이 있었고 한때는 휘트니스 산업 부문으로 재취업 노력도 했었습니다. 관련 전문가를 꿈꾸며 이곳저곳 정보를 알아보던 중, 무역협회 중견 고용 센터 직원 한 분이 중기청 주최 소상공인진흥원 주관의 시니어창업스쿨(업종전문 컨설턴트 양성과정)을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과정 내용을 보니 순간 ‘이것이다!’ 하는 불빛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며칠 동안 깊이 생각 해 보았습니다. 재취업의 미련은 가정생활 형편상 미련이 남아있었지만 직장생활은 저의 생각에서 지워버리고 나의 정체성을 살릴 수 있는 1인 창업 쪽으로 결심하고 시니어창업스쿨에 입과 하게 되었습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 되는 과정이었지만 모든 일이 본인이 어떠한 각오로 열심히 몰입하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입과한 몇몇 동료들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 보였습니다. 대부분 100%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것을 발판으로 삼고 본인의 노력 하에 삶의 잉태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라는 생각에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한꺼번에 겹쳤습니다. 우선은 수입보다 직업(일거리)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육 내용은 각자의 과거 직장경험의 업무를 토대로 핵심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로 지식상품 후보를 도출하고 그 내용을 구체화하여 발표와 피드백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각자의 독특한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독자 상품을 개발 해내는 과정은 그야말로 가느다란 한 가닥의 실을 실타래에서 뽑아서 제품으로 생산 해내는 과정과 다름없었습니다. 전문가의 지도 없이는 혼자서 접근 해 보기 어려웠을 일이었습니다. 저만의 지식상품을 개발하고 제안서를 작성하여 발표하고 코칭 받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하루하루가 호기심과 새로움으로 넘쳐났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근심과 걱정이 앞서기도 했음을 이 지면을 통하여 고백합니다.

하루 이틀 계속 집중, 몰입하면서 입과 동료들의 찬탄과 교육기관의 진정한 사랑의 에너지를 받은 결과로 비록 낡은 노트북이지만 제안서 작성, PPT 장표 작성은 물론 프레젠테이션까지도 수준 있는 단계까지 실력을 향상 시킬 수 있었고, 동료들과 교육기관의 호평에 전문가로서 큰 길을 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전문 컨설턴트. 즉, 본인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전문가로서의 자기 철학을 실행에 옮긴다는 것은 대단한 변화였습니다. 마치 비행기로부터 시작하여 달나라까지 갔다 오는 우주왕복선을 만드는 과정과 같았습니다. 시간도 부족하고, 준비하고 연구해야 할 과제와 범위가 너무 깊고 넓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구상했던 여러 가지 내용들이 막상 구체적인 콘텐츠로 개발하려고 보니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한 가닥의 불빛도 없는 캄캄한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 나 홀로 허우적거리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좌표를 잡고 육지로 나오거나, 운이 좋아 지나가는 배를 만나는 길 뿐이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극복해야 했습니다. 살아서 숨을 쉬어야만 했습니다. 살아서 저의 정체성을 펴고 싶었습니다. 한 발자국만 밀려가도 나이아가라 폭포였습니다. 자연의 귀찮은 존재인 젖은 낙엽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정신의 혼을 잡고 밤을 지새워 가며 강의 콘텐츠를 하나하나 준비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지속적인 운동을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다.’
‘올바른 운동법을 잘 모르고 있다.’
‘마음의 근력운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각자의 신체 스타일을 감안한 운동법을 모르고 있다.’
‘각자의 생태적 자기 분석을 못하고 있다.’ 등의 진단을 내려 약 60쪽 분량의 강의 자료를 1차로 생산했습니다.

용기가 생겼습니다. 계속해서 발상하고 구상하는 모든 생각들은 메모하며 강의 자료를 계속 추가해 갔습니다. 저의 재산이 두 배로 계속 불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날을 세워가며 작업하면서도 전혀 지치지도 않고 힘이 넘쳐났습니다. 상당한 TIP자료를 포함하여 콘텐츠 4개를 완성하고, 운동각을 산출하는 도구, 창작물 저작권 등록 2건, 전립선 운동기구 개발까지 추진하였으며, 시니어창업스쿨 수료 후 곧바로 2010년 12월 1일자로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사업자등록증도 내었습니다.

GFC(Good Feel Cleaning:좋은 느낌의 세탁) 강의 콘텐츠를 중심으로 2011년도 4월부터 보훈교육원, 무역협회, 마이구루, 한국 관광 콘텐츠 개발 협회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성공적인 재취업을 위한 운동과 건강관리’ 란 콘텐츠로 전직지원 센터, 기업은행, 서울 시내 구청 등에서도 강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활동으로 많은 돈은 아니지만 매월 약 2백여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청소년의 건강을 위한 강의 콘텐츠도 제작하여 서울시 교육청의 재능기부를 통해 학무모, 청소년, 교사에게 무료로 강의를 하는 활동도 겸하고 있을 정도로 요새 많이 바빠졌습니다.

6월 초에는 마포 비즈플라자에 입주하여 연구 활동을 하면서 운동 관련 책 집필도 준비하고 있으며, 7월초에는 입주자 이종 기업 간 교류를 위하여 발기인 모임을 갖고 마퓨지경회(마포 퓨전 지식경제경영자 연구회)를 개최하여 7월부터 회장으로서의 임무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향후 지하철 중심 역세권에 미니 휘트니스 스튜디오(사무실)를 5곳을 개설하여 국민들의 건강한 삶에 계속적으로 일조하면서 후진양성을 하는 것이 앞으로의 저의 계획입니다.

베이비부머 세대 시니어의 한 사람으로서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오늘 저와 같은 성실한 열정의 꽃망울이 맺히게끔 정책을 펴 주신데 대하여 관련 부처에 마음 속 깊은 무언의 감사를 일하는 내내 느끼고 간직하고 있습니다.

다른 시니어 분들도 이러한 현실적이고 좋은 정부의 시행 정책을 100% 의지하려 하지 말고, 땅을 일구고, 땀을 흘리고,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자기만의 가치를 만들어 낼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현실적 진리를 직시하고 올바른 노력을 경주하면 좋겠습니다.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 소장 민찬기
(2010년도 시니어창업스쿨 수료생(업종전문 컨설턴트 양성과정), 2010년 12월 1일 민찬기 운동처방연구소 창업)

(본 창업수기는 2011년도 시니어창업 경진대회(소상공인진흥원 주관)에 창업성공수기로 장려상을 받은 민찬기 소장의 창업 스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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