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안녕하십니까? 유종필입니다. 평소 저희 민주당에 관심을 가지고 아껴주신 데 대해 대변인으로서 늘 감사의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소수야당 민주당이 이 정도나마 존재의의를 갖는 것은 임의 관심과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저의 개인 홈피(www.yoojp.com)에 올린 개인의견을 보내드립니다. 사실은 지난 2000년 16대 총선 공천에 실패한 후 공직도 버리고 1년 넘게 산야를 떠돌면서 독서와 사색, 한편으로는 방황의 세월을 보낼 때 삼봉 정도전에 몰두한 적이 있습니다. 견디기 힘든 고독 속에서 삼봉의 성공은 큰 위안이 되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저는 늘 동서양의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 애쓰는 편입니다. 요즘 삼봉과 정암 조광조의 대조적인 면모를 줄곧 생각해 보다 최근의 상황과 연결하여 칼럼을 한번 써보았습니다. 졸고지만 참고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5년 6월 12일 柳 鍾 珌 (민주당 대변인) 드림

노무현 개혁은 조광조식 실패모델

이상주의와 경륜 부족, 당파성과 조급증 등 비슷한 점 많아
정도전식 성공모델로 전환하여 합리적 현실주의적 개혁해야
당파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초당적 국정운영 고려해보아야

조선시대 대표적 개혁가로서 여러모로 대조적인 정도전(1337~1398)과 조광조(1482~1519)를 비교해보면 정도전은 김대중과, 조광조는 노무현과 비슷한 점이 많다. 바꿔 말하면 노무현식 국정운영은 조광조식 실패모델이고 정도전식 성공모델과는 너무나 다르다.

정도전은 고려말의 부패한 지배체제를 개혁하고자 했던 신진사대부로서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해서는 무력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여 신흥무인세력의 대표격인 이성계를 멀리 함경도까지 찾아가 그의 막료가 되었다. 당시로서는 은퇴할 나이인 46세 때 유배에서 풀린 직후의 일이다.

그는 이성계의 무력을 앞세워 구세력을 몰아내고 전제개혁으로 과전법을 실시하여 조선개국의 정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는 등 조선건국의 주역이 되었다. 한양 천도 때는 궁궐의 위치, 모든 전각과 궁성문의 명칭, 도성의 설계까지 도맡고, 조선정부 법제의 기본 틀인 조선경국전과 고려사를 펴냈다. 조선건국의 이론적 토대와 사회개혁 이념, 향후 국정운영의 기본 설계도를 모두 그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정치는 물론 경제와 법제, 사상, 심지어는 병법까지도 통달한, 준비된 개혁가이자 중년기에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대기만성형의 성공한 개혁가였다.

조선건국의 아버지이자 설계자인 그는 이방원의 손에 죽음을 당한 후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우선 이방원의 후손이 쭉 집권을 한데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의 역성혁명론이 더 이상 왕조의 환영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조선건국의 논리인 역성혁명론은 이제 거꾸로 조선왕조 자신을 겨누는 반역의 논리가 되기 때문에 이제는 폐기되어야 했다. 조선왕조 내내 고려의 충신 정몽주의 절개가 숭상받은 만큼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은 천대받았다. 이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사리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인간사는 다면적이고 오묘한 것이다.

조광조 역시 강한 개혁의지를 가진 사림파였다. 그는 일찍이 알성시에 장원급제하여 조정에서 두각을 나타내다 33세에 사간원에 발탁되었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한 공신들이 권력을 나눠먹느라 정신이 없던 당시 그는 젊은 나이에 대사헌의 중책을 맡았다. 그의 이상주의에 입각한 개혁의지가 공신들의 기득권과 부딪힌 것은 예정된 코스였다. 그는 사림파의 의기를 모아 국가기강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된다.

그는 개혁의 시범사업격으로 왕실에서 일월성신에 제사지내는 소격서의 폐지에 전력투구했다. 9년 동안 무려 265 차례나 소격서 폐지 상소문을 올릴 정도로 이 문제에 집착했다. 바꿔 말하면 이런 구습이나 전통을 없애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반증이다. 그는 또 중종반정으로 임금을 세운 정국공신 76명의 훈작을 삭탈하려는 대모험을 감행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당시 상황에서 얼마나 무모한 도전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3년이면 묵은 폐단을 척결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고 하니 그의 기개가 얼마나 하늘을 찔렀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사헌부와 사간원 책임자의 파직 요구 상소를 1년 사이에 7번이나 올렸고 생의 마지막 4년 동안 개혁을 요구하는 상소를 무려 300번이나 올렸다. 현실의 세력관계를 무시한 이런 무모함과 조급증은 공신들과 왕실 전체를 적으로 돌렸을 뿐만 아니라 그를 총애하여 중용했던 중종의 분노까지 사게 되었다. 결국 임금도 그를 더 이상 지켜줄 수 없는 상황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조광조는 열정과 의지로 똘똘 뭉친 이상주의적 개혁가였지만 결국 실패한 개혁가로 그치고 말았다. 37세의 아까운 나이에 임금의 사약을 받고 죽기까지 오로지 개혁 한 길로 매진했다.

조광조 사후 16년에 탄생한 율곡은 이를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그에 대해 다음과 같은 요지의 의미심장한 평가를 남겼다. “아깝도다. 학문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세상을 바로잡으려고 하다가 세상을 바로잡지도 못하고 임금을 피곤하게 하고 자기 자신도 망치고 말았다.” 참으로 냉정하고도 정확한 평가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권력핵심들의 국정운영 방식을 보면 조광조와 닮은꼴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나친 이상주의와 넘치는 기개, 경륜의 부족, 조급증, 무모함, 기득권에 대한 적대의식, 당파성, 공격적 성향, 무엇보다도 인격과 능력의 미숙성 등등 비슷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불길한 느낌이지만 사실이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조광조는 도덕성에 관한한 어느 누구로부터도 의심받지 않았다. 반면 노무현 정권은 각종 부패스캔들로 그것마저 무너지고 있으니 더욱더 심각한 상황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도전과 비슷한 점은 합리주의와 준비성, 민본주의, 무엇보다도 탄탄한 실력, 게다가 중년기 고난 끝의 대기만성까지 닮은꼴이다. 김대중이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고 금융개혁 등 각종 개혁으로 IMF 관리체제에 빠진 나라경제를 구한 것은 정도전이 역성혁명과 전제개혁에 성공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의 삶을 개선시킨 것과 비견될만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정권은 포기하기에는 임기가 너무 많이 남아 있다. 노 대통령은 지금 임기 2년 반의 대통령에 새로 취임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최우선적인 일은 종래의 조광조식 실패모델의 국정운영 방식을 버리고 정도전식 성공모델의 국정운영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다.

지나친 이상주의는 현실을 망친다. 밤하늘의 별만 쳐다보고 걷다가는 발 아래 구렁텅이에 빠지기 쉽다.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개혁열정은 성냥처럼 자신만 태울 뿐 세상을 밝힐 수 없다. 지금은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 대통령은 동서화합 국민통합이라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파성을 초월하여 중도적인 입장에서 대다수 국민과 함께 가는 합리적 개혁의 길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하여 노 대통령은 우선 열린우리당의 당적을 떠나서 초당적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문제를 심사숙고 해보기를 권한다. 당 출신의 총리와 장관들의 내각철수는 당연하다. 대통령이 당파적 입장을 견지하는 한국민의 50% 이상을 보듬고 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어차피 국회 과반수가 무너진 마당에 다수 의석이 무슨 소용인가? 게다가 열린당은 향후 대권 지망생들이 인기관리를 위해 필요할 경우 언제라도 경쟁적으로 노 대통령에게 시비를 걸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보여주었다. 열린당은 노 대통령에게 이미 힘이 아니라 짐이 되어 버렸다. 당적을 버리고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그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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