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성명-시대를 역행하는 대법원의 반문화적 판결을 규탄한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의 근거로 10년전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규정하며 확립한 판례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판례에 따르면 김인규 교사의 게시물 6점 중 ‘환자용 변기에 놓인 남성성기 그림’, ‘성기가 발기된 청소년 그림’, ‘고속편집 된 동영상’ 등 3점은 음란물이 아니지만 ‘여성성기 묘사’, ‘김인규 교사 부부의 맨몸 사진’, ‘정액을 분출하는 남성성기 그림’ 등 3점은 음란물이라고 판결하였다.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한국의 재판부의 윤리의식이 여전히 구태의연한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참담한 결정이며, 동시대의 가치와 방향을 전혀 가늠하지 못하는 대법원의 반문화적 법리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다. 대법원 판결의 심각성은 아래와 같다.
1. 판사가 창작물의 성격을 판단한다?
이번 판결의 가장 심각한 문제중 하나는 사법권력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때 그사람들’에 대한 일부 장면 삭제 판결, ‘안기부 X파일’ 관련 일부 방송 금지 판정 등 창작물이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될때마다 사법부는 독단적으로 창작물의 성격을 규정하고 장면삭제, 방송금지 등의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또한 김인규 교사에 대한 이번 판결문에서도 밝힌 바 있듯이 판결의 근거를 ‘사회적 평균인’이라는 애매모호한 집단정서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평균인’ 누구도 판사에게 창작물에 대한 판단을 위임한 적이 없으며, 나아가 그 판단을 근거로 창작물에 절대적 권력을 행사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법권력은 정녕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최후의 권력이 되기를 원하는 것인가! 창작물은 지속적인 소통의 과정을 경유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사회적 생물이다. 다양한 창작물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여 다양한 소통이 가능한 사회만이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이다. 김인규 교사의 작품에 대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민주주의 방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폭력적인 판결이다.
2. 음란물과 예술작품을 누가,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나눌 수 있는가?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음란’이라는 개념의 정의를 ‘보통사람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쳐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음란의 여부는 표현물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닌,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건전한 통념에 따라 객과적이고 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개개인 혹은 집단간에서 발생하는 철학의 차이는 언제라도 존중할 수 있으며, 음란물은 무엇보다 나쁜 절대악임을 전제로 하는 재판부의 낡은 발상에 대한 평가는 차치한다. 그러나 음란물의 여부에 대한 판단은 대법원 역시 밝힌 바, 사회적 평균을 반영하는 입장에서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해야지 재판부가 음란물과 예술작품을 구별하는 근거를 제시하는 방식은 결코 사회적 평균의 입장을 반영할 수 없는 방법이다. 또한 창작물이 음란물인가 예술작품인가에 대한 판단을 결코 도덕적 잣대로만 이뤄질 수 없으며, 도덕적 잣대를 근거로 처벌하는 것은 더더욱 곤란하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재판부의 이번 판결이 생명현상 자체로서 사회 유지의 원초적 동력인 ‘성’을 부정하는 ‘음란’의 규정에만 초점을 맞춘 유아적 해석이라는 점이다. 과연 김인규 교사의 작품의 무엇이 재판부에서 제시한 ‘음란’의 기준에 어떻게 부합하는 것인가? 재판부 스스로 답해햐 할 것이다.
3. ‘음란성 여부’과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보다 중요한 것인가?
우리 사회에서 ‘음란하다’는 딱지가 붙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한계이자 굴레이고 속박이다. 우리는 김인규 교사에 대한 사회적 억압의 핵심은 문화적·예술적·교육적 맥락에 대한 검토보다는 ‘청소년성보호’라는 명분으로 예술·창작의 자유를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려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작가의 창작품이 설령 음란하다 하더라도 그 창작의 자유만큼은 철저히 보장되어야 하며 사회와 소통 가능해야 한다. ‘음란’함을 이유로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문화연대는 ‘자유로운 상상’이라는 아주 타당한 권리를 박탈당한 김인규 교사의 권리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다. 이것은 민주사회의 기본적인 권리를 지켜내는 투쟁이며, 표현의 자유 근간을 흔드는 사법권력의 시대착오적 권한 행사에 맞서는 투쟁이다. 진정 유죄 판결을 받아야 할 곳은 대법원과 사법권력이다.
문화연대
2005.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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