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김인규 교사 사건 원심파기에 대한 민예총의 입장
사법부가 예술적 상상력에 대한 무지몽매함을 고백해버렸다. 지난 10여년간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했고 문화예술적 표현에 대한 사회적 시각과 기준 역시 눈에 띄게 진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기준은 ‘그때 그 수준’에 머물러있다.
대법원 3부(주심 박재윤 대법관)는 27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음란물을 게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기소된 태안 안면중 미술교사 김인규 작가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던 원심을 파기하고 일부 유죄 취지로 대전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음란(淫亂)’이란 보통사람의 성욕을 자극해 성적 흥분을 유발하고 정상적인 성적 수치심을 해쳐 성적 도의관념에 반하는 것"이라 규정하며 "음란물 여부는 표현물 제작자의 주관적 의도가 아닌,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의 건전한 통념에 따라 객관적ㆍ규범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는 재판을 진행한 대법원 재판부 측이 김인규 작가의 작품에서 성적 흥분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김 작가의 작품이 물론 성기를 묘사한 것이기는 하나 대상을 다루는 방식에서 결코 포르노그라피의 선정적인 표현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성적 흥분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대중들보다 훨씬 앞서나가는 성적 상상력이라 평가할 수밖에 없겠다.
재판부가 이 판결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이 10년전 마광수 교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를 음란물로 규정했던 판례에 따른 것이라 한다. 재판부는 이 판례에 따라 김인규 교사의 게시물 6점 중 ‘여성성기 묘사’, ‘김인규 교사 부부의 맨몸 사진’, ‘정액을 분출하는 남성성기 그림’ 등 3점을 음란물로 규정했다. 여기서 진지하게 재판부에게 묻고 싶다. 앵그르의 ‘터키탕’ 같은 작품이나 조지아 오키프의 대부분의 그림들, 그리고 우리의 고전 작가인 신윤복의 작품들에서는 성적흥분을 느끼지 않는지 말이다. 짐작컨대 대법원 재판부가 이번에 보여준 놀라운 성적 상상력이라면 이 작품들에서는 더욱 강렬한 성적 흥분을 느낄 것이라 추정된다.
한마디로 이번 대법원 결정이 보여주는 것은 한국의 사법부가 갖고 있는 예술적 표현에 대한 사회적 허용의 기준이 여전히 대중들의 수준에 훨씬 못미쳐 있으며 일정치도 않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한 셈이다. 게다가 예술계를 공공연하게 무시하고 있다는 것도 고백해버린 것이다. 만일 사법부가 제대로 이 작품들의 음란성 여부를 판단하길 원했다면 예술계의 전문화된 미학적 감식안과 시민사회의 잠정적 합의수준에 공개적인 자문을 구했어야 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제대로 된 의견수렴 절차도 없이 딱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음란성 여부를 재단해버렸다! 이런 행태는 공권력에 의한 폭력일 따름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분명히 ‘표현의 자유’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사법부가 예술적 표현물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하는 순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하는 명제다. 우리 민족예술인들은 대법원의 구태의연한 판결을 결코 용인할 수 없으며 예술계에 대한 공공연한 불신과 비하도 용납할 수 없다. 이에 예술을 진정 예술답게 만드는 표현의 자유가 관철된 법적 결론을 내릴 때까지 모든 예술적 방법을 동원하여 투쟁할 것을 선언한다.
2005년 7월 28일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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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25일 1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