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기 첫시집 ‘먹염바다’
우선, 이 시집은 작은 어업사전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어업노동에 관련한 우리말이 너무나 풍성하다. 갱물, 아홉무날, 무쉬날, 두무날, 갯티, 굴구적, 게통배, 조새, 돌중게, 선새미, 깐팽이, 팔랭이 등등……. 또한 이 시집에는 섬사람들의 생활에 아로새긴 무늬로 빛나는 지명들이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먹염, 어루뿌리, 어루너머, 호망너머, 긴뿌리, 해주 까마개, 동막, 굴업도, 이작도, 새섬, 할미염뿌리, 당섬, 소야도 등 인천 앞바다에 점점이 흩어진 섬들의 성좌도(星座圖)가 아름답다.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이후, 한국 현대시사에서 바다는 닫힌 대륙을 쇄신할 소통의 공간이었다. 일련의 카프 계열부터 모더니즘 시, 특히 정지용의 일련의 바다 시편들에서도 빛나는 감각으로 포착된 바다는 매혹적이다. 바다의 공포가 처음으로 드러난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도 날카로운 이미지와 제휴한 지적 우수(憂愁)로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그런데 이세기 시인의 바다는 다르다. 그의 바다를 통해 우리는 이전의 바다들이 하나의 관념적 바다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거니와, 이세기의 바다는 이를 터전으로 살아갔던 사람들의 내음으로 리얼하다. 예를 들어 이 시집의 여는 시 「밤 물때」를 보자.
밤바다/밤 물때 이는 소리//밀려오고/밀려오는//이 밤 여기 서 있으면//멀리/가까이/무엇인가 울고/무엇인가 흐느끼는/숨소리//오렴/오렴/어서 오렴//밤바다/슬프고 아름다운//밤 물때/이는 소리(「밤 물때」 전문)
이 시는 절제된 단순성으로 우리를 매혹한다. 1연을 변주한 연을 마지막 부분에 두어 앞과 뒤가 서로를 머금은 순환적 형태를 취한 이 시는 짧은 시행들을 촘촘히 행갈이하면서, 그리고 가벼운 연들을 성글게 배치함으로써 밤바다의 조수가 밀고 써는 모양을 시각적으로 모방한다. 또한 이 시를 가만히 읊조리다 보면 음보(音步)의 조직이 심장 박동을 닮은 조수의 2박자를 미묘하게 재현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이 시는 그야말로 육체적인 ‘음성예술’(a vocal art)에 핍진하고 있는 것이다. 반란하는 바다, 다시 침묵에 빠진 바다, 그럼에도 때로 응답 없는 암호로 웅얼거리는 바다. 시인은 바다가 송출하는 소리의 상형문자를 골똘히 독해한다. 이렇게 시인이 독해한 ‘먹염바다’에 대한 첫 보고서로서 이 시집은 탄생됐다.
‘한갓 미물에게도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범부의 말씀을 받들어 살아왔다는 시인은, 경건한 경의로 고기 잡는 노동의 원초성을 전달하고, 가난한 섬사람들의 울음소리, 뱃사람들의 숨소리를 아로새기며 바다의 노래를 써내려갔다. 시인의 언어 속에서 낡고 잊혀져가던 바다와 바다 주변의 삶의 풍경은 시적 새로움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신인다운 새로움과 신인답지 않은 진중함으로 한국시단에 첫 발을 내딛은 이 세기의 시집은 올해의 주목할 만한 시적성과로 자리매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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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0일 0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