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전당 ‘하늘천 따지 - 천자문과 조선인의 생각·공부·예술’ 개최

서울--(뉴스와이어)--예술의전당은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 작고 400주년 기념으로 2005년 8월 16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서예박물관에서 <하늘천 따지 - 千字文과 조선인의 생각·공부·예술>을 개최한다.

천자문은 어린 아이들이 글자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할아버지나 서당 훈장님이 가르쳤던 문자[漢字]학습 교재로서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천저문은 단순한 글자 암기가 아니라 1000자 250구 125절의 방대한 서사시 안에는 중국 고사를 담은 구절이 있는가 하면 사계절의 생겨남과 농사짓기,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기강을 가르친다. 마지막은 어조사를 바로 쓸 줄 알아야 문장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한 인간으로 성숙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끝난다. 자연, 역사, 예절, 철학 등 종합 교재로서의 천자문 역할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조 500년과 개회기· 일제세대 만들어진 100여종의 서로 다른 천자문을 가지고 그 유래와 내용은 물론 천자문과 결부된 인쇄문화와 글씨예술, 한자 구성원리, 한글변천과정, 전통교육제도, 일제시대 민족교육 등을 집중적으로 밝혀낸다.

그리고 현대적 감각으로 천자문을 재해석해보는 다양한 시도들도 동시에 전시되는데, 고전작품 감상은 물론 다양한 체험공간을 통해 전문가 뿐 아니라 온 가족이 다함께 관람할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이다.


① 전시명 : 하늘천 따지 - 千字文과 조선인의 생각·공부·글씨
② 기 간 : 2005. 8. 16 - 9. 19
③ 장 소 :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
④ 주 최 : 예술의전당
⑤ 협 력 : 모두윈
⑥ 협 찬 : 비씨카드·삼성전자·씨지아이·코리아나화장박물관·우일출판사
⑦ 관람시간 : 11:00 - 18:00(매주 월요일 휴관, 단 추석연휴는 개관)
⑧ 입장권 : 일반·대학생 5천원, 초·중·고생 4천원, 유치원 단체 1천원
단체 20명 이상, 예술의전당 회원 1천원 할인
부모님 동반 유치원생, 국가유공자, 장애인 무료
* 비씨카드 소지자 무료 및 동반 3인까지 3,000원(8. 16 - 9. 3)
⑩ 문 의 : 02-580-1282·1283 http://www.sac.or.kr

중국의 한자학습교재는 전통적으로 ‘삼백천(三百千)’ 즉『三字經(삼자경)』『百家姓(백가성)』『千字文(천자문)』이 유명하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6세기에 중국의 주흥사(周興嗣,470? - 521)가 양(梁) 무제(武帝)의 명에 따라 만든『천자문』인데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칭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재미나는 고사가 하나있다.『상서고실(尙書故實)』과 조선시대 숙종(肅宗)이 쓴『천자문』어제서(御製序)에 의하면, 양나라 무제가 은철석(殷鐵石)에게 명하여 여러 왕들에게 가르칠 서로 다른 1000개의 문자들을 위(魏)나라 종요(鍾繇,151- 230)와 동진(東晋)의 왕희지(王羲之, 307-365) 글씨에서 탁본해 오게 하였으나 순서가 번잡하였다.
그래서 이를 다시 문학시종인 주흥사에게 압운(押韻)을 해 엮게 하였는데, 그가 사언고체시(四言古體詩)로 하룻밤 만에 편집을 완성하니 백발(白髮)이 되었다는 것이다. 좌우지간 이 책은 남북조(南北朝)시대부터 청말(淸末)까지 줄잡아 1,400여 년 동안 통용되어 왔으니 현존 한자 학습교재로서는 가장 오래되고 영향력이 큰 책임은 분명하다.

그러면 天地玄黃(천지현황)에서 시작하여 焉哉乎也(언재호야)로 끝나는『천자문』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우리가 입버릇처럼 ‘하늘 천 따지’라고 쉽게 시작은 하지만 구절구절 따라 돌며 끝을 보기란 쉽지 않은 것이 천자문이다. 한마디로 주흥사『천자문』은 서로 다른 한자 1,000자를 가지고 4자 250구[125개 대구(對句)]로 만들어진 하나의 대 서사시이다.
주요 내용을 보면 ① 天文(1-5) 自然(6-9) 王業(10-18) ② 修身(19-30) 忠孝(31-34) 德行(35-40) 和睦(41-46) 仁義(47-51) ③ 宮殿(52-59) 功臣(60-71) 諸候(72-76) ④ 地勢(77-81) 農事(82-84) ⑤ 修養(85-89) 閑居(90-98) 愼獨(99-100) ⑥ 食事(101-103) 安樂(104-108) ⑦ 祭祀(109-110) 雜事(111-114) 技巧(115-117) 警戒(118-125)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요컨대 『천자문』은 1000자의 상용한자가 사언대구라는 시적구성으로 말미암아 강송(講誦)과 문자학습에 매우 용이한 책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동아시아 문(文) 사(史) 철(哲) 고전의 주요테마인 역사 천문 지리 인물은 물론 윤리 도덕 처세 등의 덕목들이 망라되어 있어 언어와 문자습득을 위한 동몽교재, 수신(修身)을 위한 윤리교재, 역사 철학교재로서 종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천자문』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명확하지는 않다. 258년에 백제의 왕인(王仁) 박사가 일본에 전적을 전했다는 기록이『일본서기(日本書紀)』(권10,응신천황(應身天皇)에 보이고,『천자문』1권과 『논어』10권을 일본에 가져갔다는『고사기(古事記)』의 기록을 보면 삼국시대에 이미 천자문이 중국에서 전래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것은 시기적으로 볼 때 주흥사가 만든 것은 아니다.
현존 자료로 볼 때 우리나라, 특히 조선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천자문』은 주흥사가 지은 것으로 수(隋)나라 지영선사와 원(元)나라 조맹부가 쓴『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 그리고 당(唐)나라 회소가 쓴『초천자문(草千字文)』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초학자의 한자 학습용보다 서예수련 교재로 더 많이 활용되었다. 『고려사』(권 125, 열전38)에 의하면 충목왕(忠穆王,1344 - 1348 재위)이 천자문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천자문』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은 물론 문인사대부나 민간에 이르기 까지 많은『천자문』유물과 관련 자료가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서도 많은 기록들이 보이는데, 이 중『천자문』의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실증하는 몇 가지 일화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예조(禮曹)에 전하여 지시하기를 ‘내가 법첩(法帖)을 많이 인쇄하여 나라 안에 널리 반포하려고 하니 , 만약 조학사(趙學士)의 진필(眞筆)인『진초천자문(眞草千字文)』등의 서책을 바치는 사람은 소원대로 후하게 상을 줄 것이고...” (세조 / 법첩을 만드는데 조맹부의 서책을 바치는 사람 등에게 상줄 것을 명하다)

“원자(元子)가.....기질이 침중하여 경솔하게 말을 하지 않고,『천자문』과『류합(類合)』을 모두 환하게 익혔다. 임금이 책을 들고 묻자, 따라 외되 한자도 틀리지 않으니, 임금이 가상히 여겨 감탄하기를 마지않았고......”( 중종 / 원자가 기질이 침중하고『천자문』을 익혔다. 유온에게 상을 주고 계잠(誡箴)을 써주었다)

“행장(行狀)에 이르기를........4세 때에 처음으로 주흥사의『천자문』을 배웠는데, 숙종(肅宗)께서 친히 서문(序文)을 지어주며 힘쓰도록 하였고....”( 경종 / 경종대왕 행장)

“임금이 양정합(養正閤)에서 옥당(玉堂)과 춘방(春坊)의 관원을 인견하였는데 왕세자가 시좌(侍坐)하였다.........홍상한이 받들어 펴보니 곧 왕세자의 예필(睿筆)로 ‘효당갈력(孝當竭力) 충즉진명(忠則盡命) 입신양면지도야(立身揚名之道也)[효도는 힘을 다해서 하고, 충성은 목숨을 바쳐서 하는 것이 입신양명하는 길이다]’라고 한 열다섯 글자를 써 놓은 것이다. 임금이 말하기를 ‘상단의 글은 주흥사의『천자문』에 있는 것이고, 하단의 것은 곧 『효경(孝敬)』의 글인데 합쳐서 문장을 만든 것이다’고 하니 여러 신하들이 일어나 절하고 칭송하였다....” (영조 / 세자의 예필을 필사 후 춘방에 보관하고 관원들에게 아울러 반사케 하다)

“.....그해 가을에 비로소 사부와의 상견례를 거행하였다.『천자문』을 읽다가 ‘사치할 치[侈]’ 자에 이러러 서는, 입고 있던 반소매 옷과 자줏빛 비단으로 만든 구슬 꾸미개를 장식한 모자를 가리키면서 ‘이것이 사치한 것이다’하고는 즉시 벗어버렸다....(정조 / 어제 장헌대왕 지문①)

여기서 적시한 기록에서 조선왕실의 제왕교육의 시작, 즉 원자나 세자의 공부에서도 가장 먼저『천자문』이 교재로 채택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조선시대 『천자문』은 어떤 종류가 있을까.『천자문』은 크게 필사여부에 따라 육필본(肉筆本)과 간인(刊印本)으로 나눌 수도 있고, 용도에 따라 대자나 초서, 전예(篆隸)중심의 서체학습용 『천자문』, 문자[한자]학습용『천자문』, 내용학습 중심의 주해『천자문』으로도 나눌 수 있다.
판종(版種)에 있어서는 금속활자본, 목판본, 석판본, 등이 있고 간인주체에 따라서는 관판본과 사판본이 있다. 관판본은 다시 중앙관서본과 지방관서본으로 나누고 사판본은 사가본, 사찰본, 방각본으로 나누어진다. 그러므로 『천자문』에는 조선시대의 출판문화가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도학자나 문인사대부는 물론 사지관이나 서예가들의 다양한 서체와 종류의 뛰어난『천자문』필적이 많이 남아있는데, 이용(李瑢,1418-1453) 박(朴彭年,1417-1456) 이황(李滉, 1501-1570) 김인후(金麟厚,1510-1560) 한호(韓濩,1543-1605) 신위(申緯,1769-1845) 이삼만(李三晩,1770-1845) 조윤형(曹允亨, 1725-1799) 정약용(丁若鏞,1762-1836)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이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보급된 천자문은 단연 석봉 한호가 선조(宣祖)의 어명을 받고 1583년(선조 16년)에 쓴『석봉천자문』을 꼽을 수 있다.『석봉천자문』은 서체로 보면 해서와 대자해서, 초서 등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이후 여러 차례 중간되었다. 그리고 1800년대 이후에는 방각본까지 출간되면서 조선 글씨의 표준이자 기준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학습되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가치가 있다.
특히 간인본(刊印本) 석봉『천자문』은 인쇄문화의 조선적 전개는 물론 국어 변천역사를 밝히는 측면에서 중요한 기준이 되는데, 실물이나 책판(冊版) 목록(目錄)을 통해 볼 때 지역과 시기에 따라 그 수는 많다. 간인본의 경우 중앙관서본(中央官署本) 지방관서본(地方官暑本) 사가본(私家本) 방각본(坊刻本) 등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는 말은 하나이지만 문자는 한자와 한글이 혼용되어왔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간행된『천자문』은 한자뿐만 아니라 그에 따른 우리말 새김[釋]과 자음(字音)이 실려 있다. 이것은『천자문』이 한글교육도 동시에 수행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한글새김『천자문』중 가장 오래된 것은 선조 8년(1575)에 광주(光州)에서 간행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방에서 간행된 것이기 때문에 한글새김과 자음의 표준은 되지 못하였고, 선조 16년(1583)에『석봉천자문』이 왕명으로 간행되어 전국에 반포면서 이것이 비로소 한글 석음의 표준이 되었다.
이 책은 원간본(原刊本)이 나온 이래 중앙과 지방에서 수없이 번각되어 여러 이본(異本)이 국내에 현전되고 있어 한글석음의 시대별 차이는 물론 지역에 따른 방언까지도 나타나는데, 이것을 통해 한글의 변천과정까지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천자문』은 조선시대에 걸쳐서 가장 널리 간인(刊印)되고 필사(筆寫)된 책이었지만 중국과 다른 조선의 주체적인 시각과 비판적 해석이 반영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변용되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그 중『아학편(兒學編)』『동사천자(東史千字)』『종문천자(宗門千字)』『역사천자(歷史千字)』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천자문』의 결점으로는 그 출전이나 문장내용 등의 측면에서 동몽 학습서로서는 매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
최세진(崔世珍, ? - 1542)은『훈몽자회(訓蒙字會)』를 편찬하면서 초학자용 입문서로 부적당한 천자문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는데 “아동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집에서는 반드시 먼저『천자문』을 배우고, 그 다음『유합』을 배우고 비로소 여러 책을 읽기 시작한다.『천자문』은 양나라 주흥사가 편찬한 것으로 고사(故事)를 잘 취하여 배열 하였으므로 문장으로는 매우 좋다. 그러나 아동들이 이를 배움에 겨우 글자만을 익힐 따름이니 어찌 고사와 속문(屬文)의 뜻을 익힐 수 있겠는가....... 지금 배우는 아동들이 『천자문(千字文)』이나『유합(類合)』을 익히고 경사(經史)관한 여러 가지 책에 이르러도 단지 글자는 알지만 글자가 가르치는 물건은 알지 못 한다”고 하였다.
특히 정약용은『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권1의「천문평(天文評))」에서 『천자문』은 『이아(爾雅)』나『급취(急就)』처럼 내용이나 문자별로 분류되지 않아서 학동들의 공부에 적절치 않은 일시적인 희작(戱作) 뿐이라 어린 아동을 가르치는데 취할 바의 책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실학자답게 구체적 경험이 가능한 일상생활의 한자부터 가르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2,000자로 된『아학편(兒學編)』을 스스로 지어 내기도 하였다.
뿐만아니라 일제시대 제도교육, 즉 식민지 교육을 거부한 주체적인 민족 교육은 『대동천자문(大東千字文)』『통학경편(通學徑編)』, 『식자초정(識字初程)』, 『영사속천자문(詠史續千字文)』, 『역대천자문(歷代千字文)』, 『신정천자문(新訂千字文)』, 『성리천자문(性理千字文)』, 『유학자취(幼學字聚)』, 『몽학이천자(蒙學二千字)』 등 한국적으로 재해석된 다양한 『천자문(千字文)』교육을 통해 전개되었다.

전시구성과 해당 작품

Ⅰ천자문과 조선시대 교육 [주요서당 교육교재]
천자문 → 사자소학 → 명심보감·동몽선습 → 통감 → 소학

Ⅱ_천자문과 인쇄문화[刊印本]
- 중앙관서본(中央官署本)
- 지방관서본(地方官暑本)
- 사찰본(寺刹本)
- 사가본(私家本)
- 방각본(坊刻本)

Ⅲ_천자문과 서체·도상천자문
- 해서
- 초서
- 전서
- 예서
- 4체천자문
- 10체천자문
- 도상천자문

Ⅳ_천자문과 한글
- 시기별 [ 중기·후기·근대] 한글별천 과정
- 중국과 다른 뜻의 훈 [가차의자(假借意字)]
- 한국 훈이 하나로 대체된 글자
- 방언

Ⅴ_문인·도학자 및 천인천자문
박팽년(朴彭年, 1417-1456)
이황(李滉, 1501-1570)
김인후(金麟厚, 1510-1560)
한호(韓濩, 1543-1605)
엄한명(嚴漢朋, 1685-1759)
조윤형(曹允亨, 1725-1799)
신위(申緯, 1769-1845)
이삼만(李三晩, 1770-1845)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

Ⅵ_중국천자문
당(唐)대 : 안진경(顔眞卿, 707-785), 회소(懷素, 737-799)
송(宋)대 : 휘종(徽宗, 1082-1135),
원(元)대 : 조맹부(趙孟頫, 1254-1322)
명(明)대 :문징명(文徵明, 1470-1559)

Ⅶ_석봉천자문
- 1583년(선조 16) 교서관 간인(중앙관서본) 원간본
- 1650년(효종 1) 교서관 증보본,
- 1691년(숙종 17) 교서관 간인의 중간본
- 1754년(영조30) 교서관 간인의 중간본
- 『초천자문(草千字文)』
- 『대자 해서 천자문(大字楷書千字文)』
- 1800년대 이후 방각본

Ⅷ_천자문 속편
『아학편(兒學編)』
『대동천자문(大東千字文)』
『종문천자(宗門千字)』
『통학경편(通學徑編)』
『식자초정(識字初程)』
『영사속천자문(詠史續千字文)』
『역대천자문(歷代千字文)』
『신정천자문(新訂千字文)』
『성리천자문(性理千字文)』
『유학자취(幼學字聚)』
『몽학이천자(蒙學二千字)』
『진리편독삼자경(眞理便讀三字經)』

주요 전시작품

① 1691년(숙종 17) 교서관 간인의 중간본 등(관인본_중앙관서본)
1583년(선조 16) 교서관 간인의 원간본은 이후 여러 차례 중간되어 1650년(효종1) 교서관 간인의 중보본, 1691년(숙종 17) 교서관 간인의 중간본, 1754년(영조30) 교서관 간인의 중간본 등 여러 판본이 현전하고 있다.

② 1718년(숙종 44) 제주 간인의 전천자문(관인본_지방관서본)
이 책의 정식서명은 『옥당이정자의운율해편심경 ; 대전서의진한전문(玉堂釐正字義韻律海篇心鏡 ; 大篆書義秦漢篆文)』로 매우 긴 편이다. 책의 권말 간기에 “康熙五十七年戊戌 五月日 濟州開刊”이란 기록과『누판고』의 “제주목 장(藏) 완결(刓缺) 인지(印紙) 1첩1장”이란 기록을 고려한다면 이 책은 1718년 제주에서 간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표제지 서명은 ‘백수문(白首文’)이라 되어 있다. 형태적인 특징은 사주 단변이고 반곽이 14.0 × 13.7㎝, 행자수가 6행6자이며 어미는 내향흑어미이다. 본문은 상하 2단으로 나누어 각 자마다 3자씩을 예서체, 소전서체, 대전서체 순으로 차례로 나열하고 있다.

③ 1734년(영조 10) 성주 간인의 백사 이항복 천자문(관인본_지방관서본)
이 책은 권말 간기에 “丁未首夏書與孫兒 … 右白沙先生書 甲寅刊于星州牧”이라 하여 정미(1607년)에 이항복이 그 손자에게 주려고 쓴 것을 갑인(1734년)에 성주목에서 목판본으로 간인한 책이다.
종래 이 책의 간인시기에 대하여 등재본을 필사한 때와 간행년도가 간지만로 나와 있어 갑인년의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다고 하였으나 책판목록 가운데 가장 신빙성있는 『누판고』(1796년)를 보면 “성주 쌍계사 장(藏) 인지(印紙) 1첩11장”이라 하여 자세한 간인처를 밝히고 있다. 인지수 또한 이 책과 일치함으로 여기서의 갑인년은 1734년에 해당한다. 따라서 성주목은 이항복이 쓴 『천자문』을 쌍계사의 각승에 의뢰하여 1734년에 판각하고 그것을 유판(留板)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누판고』의 기록에 “쌍계사 장(藏)”이라 되어 있어 이를 사찰본이라고 하나 그 간인 주체는 성주목이므로 지방관서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④ 1471년(성종 2) 봉선사 간인의 천자문(사판본_사찰본)
이 책은 권말 간기에 “成化七年辛卯 八月日奉先寺開板”이란 기록에 따라 1471년 봉선사에서 간인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말에 조그마한 글씨로 “오흥조맹부서(吳興趙孟頫書)”라고 필사되어 있다. 이 『천자문』은 한석봉 이전의 『천자문』으로 본문 내용은 열자본(烈字本) 계열이다. 이 책의 형태적 특징을 보면, 불분권(不分卷) 1책(10장)이고, 사주 단변에 반곽이 19.0×13.2㎝인 조그마한 책이다. 계선은 없고 한 면에 6행씩, 한 행에 10자씩을 나열하고 있다. 어미는 무어미(無魚尾)이다. 이 『천자문』은 한글 석음이 없는 해서체 『천자문』으로 판본의 상태는 좋지 못한 편이다. 이 책의 원 소장자는 고 안춘근이나, 현재는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⑤ 1450년(문종 즉위년) 간인의 안평대군 진초천자문 (사판본_사가본)
이 책의 권말 간기를 보면 “愛其筆法 命工刻石 各具同志者共之 淸之”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청지(淸之)’란 안평대군(141~1453)의 자(字)을 말한다. 안평대군은 권말 말미에서 “그 필법을 좋아하여 이름난 석공에게 각하게 하고 아울러 동지들과 함께 즐기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평소 안평대군이 조맹부의 송설체를 좋아하여 사가에서 사사로이 새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천자문』의 간인시기에 대하여 문종 즉위년 11월10일 경술에 “안평대군 용(瑢)이 조자앙의 초천자를 올렸다”는 기록과 복창군 정(楨)이 모간(模刊)한 석각탁본에 “景泰統悵紀元秋七月下澣 琅玗居士安平大君淸之”란 기록에 따라. 이 책을 1450년으로 추정하였으나 좀 더 자세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⑥ 17세기 나주 간인의 박팽년 초천자문(사판본_사가본)
이 책은 권말 발문에 “後學 宋時烈跋”이란 기록과『송자대전』 권148에 “書平壤朴彭年所寫千字文後”라는 기록이 있을 뿐 간인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이 책의 간행 경위를 적은 그의 발문에서 이 『천자문』은 박팽년(1417~1456)이 그 사위인 종실 영풍군을 위해서 쓴 것이라고 하고 공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천자문』을 만드니, 공을 따르는 후학들은 그것을 보고 公의 뜻을 숭상하라고 하였다. 이에 성삼문의 외손자 조세환이 장차 『천자문』을 개간(改刊)하고자 하여 후기에 붙인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발문의 기록을 통하여 이 『천자문』은 개간본(改刊本)임을 알 수 있다.
이 『천자문』의 이전 본은 성암고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의 발문에 “황명만력삼십일년월일 통정대부행나주목사근지(皇明萬曆三十日年月日 通政大夫行羅州牧使謹誌)”라 되어 있어 1603년 나주에서 간인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천자문』은 위의 기록과 송시열 발문을 참고한다면 17세기 나주에서 간인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책의 첫 장에는 ‘영풍(永豊)’, ‘취금지헌영풍(醉琴之軒永豊)’이란 인장이 있는데 이것은 박팽년의 호이다.

⑦ 1735년(영조 11) 간인의 이무실 천자문(사판본_사가본)
이무실(李茂實)이 쓴 『천자문』은 초간본부터 사간본까지 간인되었는데 이 『천자문』은 그 중 초간본에 해당한다. 이 책의 간인 내력에 대한 기록은 사간본의 권말 간기에 자세히 나타난다. 즉 "雍正十三年乙卯三月日 月城李茂實書 道光十年庚寅四月日 孫基大曾孫孟新重刊 咸豊七年丁巳三月日 五代孫芝秀三刊 光緖二十年甲午五月日 五代孫東珍四刊"이란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통해서 1735년 이무실이 『천자문』을 쓰고 1830년 손자 기대(基大)와 증손자 맹신(孟新)이 중간하였으며 그 후 27년만인 1857년 5대손인 지수(芝秀)가 삼간하고 다시 1894년에 5대손인 동진(東珍)이 사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초간본은 발견 당시 권말 간기가 찢어진 상태로 발견되었기 때문에 초간본인지 중간본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필자가 이 책이 가진 여러 가지 특징과 이본조사를 하여 초간본임을 밝힌바 있다.
이 『천자문』은 32장이 1책이고 판식은 사주단변에 반곽의 크기는 23.0×20.5㎝이고, 한 면이 4줄, 1줄에 4자씩을 배열하고 있다. 판심은 상하백구, 상하 내향2엽화문어미이고 판심제는 생략되어 있다. 본문은 석봉 천자문과 같은 열자본(烈字本) 형태이고 글자체는 구양순체를 모방한 필치로 획의 태세가 분명하다. 책의 첫 장에는 ‘월성이씨세보(月城李氏世寶)’라는 인장이 있다.
이 책의 중간본은 현재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삼간본은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데 원본이 아니라 축소 복사본이다. 사간본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는 『천자문』으로 삼간본과의 한글석음을 조사해 보면 매우 많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한글변천과정을 살펴보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⑧ 1804(순조 4) 경성 광통방 간인의 주해천자문(사판본_방각본)
이 책은 1804년 광통방에서 신간한『주해천자문』이다. 권말 간기에 “南陽洪泰運書 崇禎百七十七年甲子秋 京城廣通坊新刊”이라 되어 있어 이 『천자문』의 판서자가 홍태운(1762~1790)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판본은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고, 판본의 상태는 한결같이 깨끗한 편이다. 본문에는 본 자의 우상(右上)에는 소전을, 본 자의 좌상(左上)에는 자음 청탁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전청은 ○로 표시, 차청은 D로 표시, 불청 불탁은 ◑로 표시, 전탁은 ●로 표시하고 있다. 그리고 한 한자가 뜻에 따라 청탁을 달리하는 경우의 표시법에 대해서는 권말 간기 바로 앞 행 하단에 자세한 설명이 있다. 한편 이 책은 각 한자의 사성(四聲)을 그 한글석음에 표시하였다. 동일자라도 뜻에 따라 사성이 다른 예가 많으므로 상성을 ‘ㅇ’으로 거성을 ‘‵’으로 표시하였고, 평성과 입성은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석봉천자문의 전례에 따른 것이다.

⑨ 1809년(순조 9) 동현 개간의 석봉초천자문(사판본_방각본)
이 책은 1809년 동현(현, 을지로 입구)에서 개간한 석봉 초천자문이다. 권말 간기에 “萬曆丁酉季冬石峯書 嘉慶己巳年季秋”라 되어 있고, 또 권수제의 윗부분에 동현신간(銅峴新刊)”이란 간기가 있어 간인처와 간인시기를 자세히 알 수 있다.
본문 구성은 본문 윗부분을 1/4로 나누어 각 해당 한자를 전서체로 표시하고 있다. 나머지 3/4은 초서체로 음각하고 그 옆 둥근 여백에는 해서체로 양각하여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초천자문과 본문 구성이 다른 초천자문이 있어 주목된다. 즉 천지현황(天地玄黃)…시제문자(始制文字)까지는 양각된 해서체 천자가 없고, 또 동현신간본 (銅峴新刊本) 이하 석봉중간본에 흔히 나타나는 전천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또 권말에는 “萬曆丁酉季冬石峯書”이란 간기와 더불어 ‘석봉(石峯)’이란 백문방인(白文方印)과 한호의 낙관이 새겨져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동현신간본 이전에 전천자가 없는 초천자문이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전천자가 언제부터 추가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가 되어야 할 부분이다.
석봉의 초천자문은 이밖에도 유동 중간(1847), 완산 중간(1861), 무교 중간(1864), 완산 중간(1899) 등 여러 간인처에서 중간되었다.

⑩ 1905년 창녕 화림재 신간의 주해천자문 (사판본_방각본)
이 책은 창녕 화림재에서 새로 간인한 『천자문』이다. 책의 권말 간기에 “光武乙巳秋新刊 昌寧華林齋藏板”이란 기록이 있어 간인처와 간인시기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이 책의 후기를 쓴 성돈호는 간인취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천자문』은 비록 많지만 이 주해본과 같이 자세한 책은 없으며 그 초간은 지금부터 102년 전 서울 광통방에서 간행했는데 그 판본이 지금까지 완전한지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먼 곳에 있는 사숙에는 주해가 없는 천자로 자제들을 가르치므로 글자도 알고 자구도 알지만 글 뜻은 통하지 못하므로 약간의 비용을 내어 간행하는 것이니 어린이들을 가르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이 『주해천자문』은 7번이나 간인되었는데 창녕 화림재장판은 그 중 5번째 간인한 것에 해당한다. 이 책은 『천자문』 250구에 대한 통해(通解)를 각 어귀 뒤에 한문으로 적고 있어 『천자문』의 결점을 잘 보완하고 있다.

⑪ 임방울·정정열·이화중선·김소희, <춘향전 - 천자뒤푸리>, 테이코쿠 그라모폰(나라, 일본)

이번 전시는 고전 작품으로서의 천자문 뿐 아니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 해보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그동안 서예 전시에서는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면 이번에는 천인천자문, 탁본하기 등으로 입체적이고도 능동적인 체험 활동과 애니메이션, 무용, 게임 등 아이들에게 어려운 한자를 친숙한 볼거리로 제공한다.

① <천인천자문>
관람객이 직접 작가로 참여하는 ‘천인천자문(千人千字文)’은 전시장 벽면에 움직이고 변화하는 글자를 직접 붓으로 따라 써 보는 코너이다. 전시장을 방문하는 관람객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써 내려간 글자들로 종이가 채워지면 천 명의 사람이 천 개의 글자로 천 개의 표정을 담는 것이 되며 결과물보다는 작품 제작 과정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로 행해지게 된다.

② 국경진의 수묵애니메이션
천자문의 내용을 <자연의 이치> <가족> <우애, 군신간의 도리> <농사와 수확물의 바침 : 제의>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의 소주제로 하여 제작한 ‘수묵애니메이션’을 상영한다. 애니메이터 국경진의 작품으로 한자들이 그림에서 글자로 바뀌고 또 그것들이 결합하여 또 다른 글자로 변화하는 과정을 따뜻한 배경과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표현하였다.

③ 여울목 무용단 창작 공연 <묵비사염>
우리의 몸짓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구성 해 온 ‘여울목무용단’은 이번 전시에서 천자문 중 <묵비사염(墨悲絲染)>을 테마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인간이 지닌 본래의 색(흰색)이 자꾸 혼탁해져 가는 것을 슬퍼하지만 아직 완전히 검게 물들지 않았음을 깨닫는 것도 중요하다는 내용으로 화선지에 먹으로 글씨를 쓰듯 온몸으로 표현하는 천자문을 만날 수 있다.

④ 이상호의 <게임을 이용한 漢子 여행>
터치스크린을 눌러 보며 한자 컴퓨터놀이를 해 볼 수 있는 코너가 있다. 작가 이상호의 작품인 영상으로 이해하는 천자문 <3D WordsArt>, 그림을 통한 한자의 이해 <색칠공부>, 글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한자 더하기>, <한자 퍼즐 맞추기> <한자 블록 놀이> 등 어린이들이 전시장에서 스스로 한자와 친해 질 수 있는 신나는 시간이 될 것이다.

⑤ <천자문 탁본 찍기>
관람객이 직접 탁본을 찍어 볼 수 있는 코너. 천자문 중 한 구절을 찍어보며 살아있는 글자의 숨결을 느껴본다.

세미나 : 천자문을 통해 본 동양인의 학문·예술·세계관
서울서예박물관 4층 문화사랑방 / 참가비 무료(선착순 입장)

2005. 8. 20. 토
① 14시 천자문의 내용 분석 / 김근(서강대 중국문화과 교수)
② 15시 조선시대 천자문 판본 연구 / 안미경(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전문원)
③ 16시 천자문에 나타난 국어사 연구 / 홍윤표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05. 9. 10. 토
① 14시 천자문과 조선시대 교육 / 정순우(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관장)
② 15시 석봉 한호와 천자문 / 이완우(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
③ 16시 천자문의 한국적 수용 전개 / 김상환(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어린이박물관체험교실Ⅳ - 내가 만든 천자문
서예박물관 기획전과 함께 하는 어린이박물관체험교실 4번째로 이번에는 ‘내가 만든 천자문’에 참여할 수 있다. 선생님의 설명으로 <하늘천 따지전>을 감상한 후 책에 들어갈 내용 구성부터 책을 엮는 마무리까지 우리나라 전통 인쇄문화를 알아보는 기회이다.
6세부터 10세까지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시기간 중 매주 금·토요일 11시·14시이며, 참가비는 10,000원으로 각반 30명 선착순 마감이다.

금요일
쌍구가묵(雙鉤加墨) - 본 떠 쓰기
명필들의 글씨본을 뜨는 과정을 통하여 글자의 조형이나 획의 움직임을 배운다. 비치는 종이나 먹지를 대고 윤곽선을 그린 후 그 안에 먹이나 물감으로 칠한다.
석봉 천자문 - 해서 탁본 찍기와 한글 쓰기
조선시대에 한자와 한글을 동시에 배우는 교과서로서의 석봉천자문을 알아보고, 전통 인쇄 방식을 체험해 본다. 『석봉천자문』을 새긴 목판에 먹물을 바르고 찍은 후 글자의 훈과 음을 한글로 쓴다.
은은한 여름 난초 - 사군자 찍기
해강 김규진(1868-1933)이 ‘난과 대나무 그리는 법’을 소개한 책 <해강난죽보>를 보고 난을 판화로 만들어 본다. 그림본에 여러 가지 고무줄을 잘라 풀로 붙여 판화를 만들고 여러 가지 색지에 찍어 본다.

토요일
그림과 글씨 사이 - 전각 찍기
상형문자에서부터 초서까지 한자의 변천과정을 알아본다. 금문, 전서, 예서, 행서, 해서, 초서를 새긴 전각을 골라서 찍어 본다.
하서 천자문 - 초서 만들기
쓰기 어려운 초서를 여러 가지 재료로 구성해 가면서 글자의 조형미를 찾아본다. OHP 필름 위에 나무, 돌, 단추, 끈 등으로 꼬불꼬불한 하서 김인후(1510-1560)의 초서를 꼴라쥬로 재현해 본다.
강직한 겨울 대나무 - 사군자 찍기
<해강난죽보>를 보고 대나무를 판화로 만들어 본다. 그림본에 여러 가지 고무줄을 잘라 풀로 붙여 판화를 만들고 여러 가지 색지에 찍어 본다.

금·토요일 공통
내가 만든 천자문 - 책 만들기
수업의 결과물을 모아 전통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 봄으로써 책이 완성되기까지 과정이 주는 수고로움과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그릇인 책이 주는 소중함을 느낀다. 능화판으로 표지를 찍고, 속지를 접어 天地玄黃 등 천자문 순으로 차례를 매긴 후, 실로 꿰매어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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