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12월의 독립운동가 원심창 선생 선정 및 특별전 개최

- 한․중․일 삼국에서 적의 심장을 겨눈 아나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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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2013-12-01 10:29
천안--(뉴스와이어)--독립기념관(관장 김능진)은 국가보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원심창(元心昌, 1906. 12. 1 ~ 1971. 7. 4) 선생을 2013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12월 한 달 간 야외특별기획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선생은 1906년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하였고, 3·1만세운동을 계기로 민족의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 1923년 일본 도쿄의 니혼(日本)대학 사회과에 입학하였으나, 학비 조달의 어려움으로 자퇴하고 독학으로 아나키즘을 배우고, 수용하였다. 선생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대학살과 박열의 일왕폭살기도 사건에 영향을 받아 아나키스트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선생은 1924년 일본의 유학생과 함께 흑우회를 재건하고, 1927년 흑풍회로 개칭, 이듬해 흑우연맹으로 확대·개편하며 항일투쟁을 벌였다. 이외에도 반공산주의 활동과 노동운동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선생은 1930년 중국으로 망명, 이듬해 5월 상하이에서 한인 아나키스트들의 총 본부인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하였다. 또한 흑색공포단의 대원으로 천진에 있는 일본영사관에 폭탄을 투척하는 활동을 지원하는 등 의열투쟁에도 참여하였다.

1933년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 아키라는 국민당 정부에게 만주 포기를 종용하는 교섭을 위해 국민당 주요 인사를 매수하려는 연회를 개최하였다. 선생은 주중일본공사 처단 및 일본의 계획을 방해하고자 백정기, 이강훈의사와 함께 육삼정의거(1933.3.17)를 일으켰으나, 안타깝게 거사 직전 피체되어 거행하지 못하였다.

비록 의거는 실패하였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일제와 친일국민당파의 계략이 알려지면서, 만주를 중국 본토에서 분리하려는 일제의 공작은 실패하게 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당당하게 일제의 죄악상과 야만적 행패를 꾸짖은 선생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광복할 때까지 옥고를 치렀다. 1977년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로를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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