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 ‘이만희 감독 회고전’
1. 의의
올해는 이만희 감독이 세상을 떠난 지 꼭 30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로 제 10회를 맞이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그가 태어난 10월6일에 막을 올린다. 그리고, 이만희 감독은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살아 돌아온다.
이만희 감독의 회고전은 언제 어디서든 충분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만희 감독을 적극적으로 재조명해야 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성 자체의 영역 밖에서 찾을 수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장르영화가 주류를 형성하고, 작가적 상상력 역시 장르영화의 틀 속에서 다듬어지는 현재 한국영화계의 현상은 이만희 감독을 과거로부터 현재로 불러내고 있다. 한 해 영화제작편수가 100편을 초과하면서 영화 산업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구되던 1960년대 초반, 이만희 감독이 등장한다.
이만희 감독의 영화 세계는 독특한 자신만의 영역을 표기하는 작가영화와 대중적인 욕망의 지표를 표현하는 장르영화의 접점에 서 있었다. 그는 유행장르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모든 장르를 섭렵해 나갔다. 영화산업의 규모가 확장되던 시점, 대규모 예산을 투입할 수 있었던 전쟁영화와 새로운 장르로 각광받았던 스릴러 영화의 대가로 떠올랐고, 상업적으로 늘 안정성을 보장해주었던 멜로드라마를 시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문예 영화가 유행이면 문예영화를, 현대적인 멜로드라마가 유행이라면 현대적인 드라마를 시도해 나갔다. 그는 장르영화를 통해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자화상을 자신의 눈을 필터 삼아 재현해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중 몇 편은 ‘짙은 사회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평단의 지지를 받았고 상도 받았지만, 그의 많은 다른 작품들은 ‘상업영화’라는 폄하 속에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 결국 당시의 이러한 평가는 현재까지 이어져 이만희 감독의 작품 세계는 몇 편의 ‘예술영화’로 제한되어 평가되어 왔다. 이제 우리는 장르영화에 열광하는 관객과 장르영화의 영화적 가치와 필요성을 인식하는 평론가가 존재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만희 감독의 대중성을 통해 가장 이만희적인 영화적 언어를 발견할수 있음을, 그리고 그의 정교한 장인적인 테크닉이야말로 그의 작가정신을 그려낼 수 있었던 도구였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2. 프로그램 소개
올해 이만희 감독 회고전에서는 총 10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그리고, 이만희 감독의 작품세계를 깊이 있게 논의하는 세미나, 동료 영화인들과 함께 그의 삶과 영화를 기억할 수 있는 회고전 리셉션이 마련되었다.
이번 이만희 회고전에서는 그의 대표 장르인 전쟁 영화와 스릴러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 전쟁 영화로는 당대 최대 제작 규모를 과시하면서도 인간적인 깊이를 잃지 않았던 한국전쟁영화의 대표작 <돌아오지 않는 해병>과, 북한군 장교와 남한의 유격대 대장으로 만난 형제를 통해 이데올로기의 무의미함을 포착하는 <군번없는 용사>, 그리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날 38선에 위치한 초소에 있었던 5명의 병사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04:00-1950>이 소개된다.
이만희 감독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감독으로 기억된다. 그에게 있어 영화 만들기는 종교적인 소명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화속 인물들에게도 이러한 소명의식을 부여한다. 그의 영화들은 극단적인 한계 속에 버려진 인물들의 이야기이고,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기꺼이 죽음 속으로 걸어 들어갈 준비가 된 인물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만희 감독의 영화들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독립전쟁이던 한국전쟁이던 베트남전이던 간에 상관없이 그는 전쟁이 가져오는 불분명한 도덕적 잣대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매혹을 스크린 속에 투사시켰다. 그리고 그의 창조물들은 한국영화의 미학을 진일보시켰다.
이만희의 작품 목록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스릴러 영화도 다수 소개된다. 자기만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범죄 조직의 보스와 그의 아내의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고리를 엮어나간 <검은 머리>,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소용돌이를 그린 <마의 계단>, 죽음의 덫에 걸린 뒷골목 건달과 그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거리 여자 사이의 심리를 담아낸 <원점>이 상영된다.
또한, 1960년대 초반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만주액션을 재정의하고, 장르적인 유희를 펼치는 후기 대표작 <쇠사슬을 끊어라>가 프로그램에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만희 감독의 미발표작 <휴일>이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다. <휴일>은 이만희 감독의 실험정신과 완숙함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60년대 말 도시를 살아가는 젊은 남녀의 절망과 좌절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 퇴폐적인 정서와 암울함을 그렸다는 이유로 상영 허가를 받지 못했다.
이만희 감독의 대표작 <만추>와 더불어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귀로> 역시 이번 회고전에서 상영된다. 1960년대 말, 강요된 과거의 역사와 국가 주도의 산업화, 도시화 물결에 질식되었던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려낸 이 영화는 이만희 감독 영화 세계의 풍부함을 재확인시켜준다. <만추>의 부재를 달래 줄 또 하나의 작품으로 <물레방아>가 있다. 사운드 일부가 소실되어 일반에 공개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이 작품은 이번 회고전에서 소실 부분이 자막으로 복원되어 상영될 예정이다. 이만희 감독의 전성기를 함께 한 서정민 촬영감독의 아름다운 촬영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한국 문예영화에 새로운 지형도를 형성했다.
이만희 회고전은 대표작 상영 외에도 10월 13일 <한국영화 회고전 세미나: 이만희 감독의 삶과 영화>를 통해 이만희 감독을 재조명한다. 한국영화학회와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 세미나에서는 그의 영화 세계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며, 그의 영화들이 한국영화사에 차지하는 의미를 재확인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같은 날 저녁에 올해로 5년째 한국영화 회고전을 후원해 온 에르메스 코리아가 주최하는 ‘한국영화 회고전의 밤’이 열린다. 이 자리에서는 영화학자들이 지난 3년 동안 이만희 감독의 영화 세계를 기념하기 위해 준비해온 책자를 소개하고,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영화인과 후배 영화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이만희 감독의 삶과 영화를 기억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3. 약력
이만희 감독은 1931년 10월 6일 서울의 하왕십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연극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연극계에서 활동하다가 1956년 안종화 감독의 조수로 일하게 되면서 영화계에 입문한다. 안종화 감독에 이어 박구, 김명제 감독에게서 연출 수업을 받던 그는 임원직 감독의 <인력거>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면서 이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김승호의 추천을 받아 1961년 <주마등>으로 감독 데뷔를 하게 된다. 그는 영화계 주변 동료들로부터 연출 능력은 인정받았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감독이었다. 그러나, 1962년에 <다이알 112를 돌려라>를 발표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얻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가져온 또 다른 행운은 촬영감독 서정민과의 만남이었다. 박력 넘치며 깔끔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이만희 감독은 서정민 촬영감독을 만나면서 정교하면서도 짜임새 있는 자신만의 영상 세계를 펼치는데 성공하며 전성시대를 열어간다.
두 사람의 전성시대는 1963년 <돌아오지 않는 해병>으로 포문을 연다. 당시 최대 규모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는 전쟁 영화로는 최초로 20만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우며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만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당시 감독으로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연출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의 기쁨도 잠시, 이만희 감독은 <7인의 여포로>로 영화 감독으로는 최초로 ‘반공법위반’이라는 죄목으로 구속되기에 이른다. 1964년 말에 필름압수와 구속영장 신청으로 시작한 <7인의 여포로>의 법적 공방은 다음 해에 구속되었던 그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면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영화는 <돌아온 여군>으로 개명되어 개봉되지만 흥행에는 실패하고 만다. 반공영화를 만들고도 반공법위반이라는 시련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만희 감독은 고집스럽게 다시 전쟁영화와 ‘반공영화’로 되돌아간다. 1966년 <군번없는 용사>와 1967년 <싸리골의 신화>는 이러한 그의 고집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힘든 시련을 겪고 난 1966년, 이만희는 생애 최고의 해를 창조해낸다. 주변사람들에게 "정말 다양한 영화들을 다 해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그는 보란듯이 다양한 장르를 누빈다.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잊을 수 없는 여인>과 나도향의 원작을 영화화한 문예영화 <물레방아>,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전쟁영화 <군번없는 용사> 그리고 그의 대표작인 <만추>가 모두 이 해에 탄생했다. 그의 기세는 1967년까지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다양하면서도 완성도를 잃지않는 탁월한 연출력을 과시라도 하듯 자그마치 11편의 영화를 쏟아놓았다. <만추>의 뒤를 잇는 또 하나의 대표작 <귀로>와 <방콕의 하리마오>와 같은 대중적인 작품을 섞어놓으며 이만희 전성시대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계에 한파가 불어닥치기 시작한 60년대 말, 이만희 역시 이 어두운 그림자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매해 꾸준히 서너편의 영화를 만들던 그는 1969년 홀연히 영화계를 떠나 버린다. 그리고 2년 후, 그는 <쇠사슬을 끊어라>로 돌아온다. 만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영화 <쇠사슬을 끊어라>는 영화에 대해 변화된 그의 태도를 반영하듯 보다 더 유희적이며, 냉소적인 유머감각을 선보인다. 다시 영화계로 돌아온 이만희는 영화만들기에 집요하게 매달리지만 그의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고 있었다. 결국 1975년 4월 3일 <삼포가는 길>의 편집실에서 쓰러진 그는 열흘간 병마와 싸우다 4월 13일 45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4. 상영작
1)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2) <군번없는 용사>(1966)
3) <04:00-1950>(1972)
4) <검은 머리>(1964)
5) <마의 계단>(1964)
6) <원점>(1967)
7) <쇠사슬을 끊어라>(1971)
8) <휴일>(1968 추정)
9) <귀로>(1967)
10) <물레방아>(1966)
웹사이트: http://www.pif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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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도자료는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가(이) 작성해 뉴스와이어 서비스를 통해 배포한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