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9월의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 전시
조소앙 선생은 1887년 4월 30일 경기도 양주군 월롱면에서 함안 조씨 정규와 박필양 여사 사이의 6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조부에게 한학을 배우고 1902년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904년 황실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메이지 대학 법학과 등에서 8년간 공부하였다. 이때 재일본유학생 단체를 조직하며 국권회복의지를 표출하는 한편 정치 ·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실천적 지식인으로 성장하였다.
1913년 상해로 망명하며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한 선생은 동제사, 박달학원 등을 조직하였다. 또한‘대동단결선언’과‘대한독립선언서’를 발표하며 자주독립의 민주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등 독립운동세력의 대동단결을 촉구하였다.
1919년 4월 임시정부에 참여한 선생은 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하여 임시정부의 헌법인 임시헌장 및 임시의정원법을 기초하는 등 초기 임시정부 수립에 산파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이후 국무원 비서장 · 외무부장 · 임시의정원 의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1919년부터 2년간 유럽지역을 순방하며 국제회의에서 최초로 한국의 독립을 승인받는 등 외교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선생은 독립운동 세력의 대립과 분열이 심해지자 각 단체의 단결과 통일을 위해서 정치 · 경제 · 교육의 균등을 핵심으로,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간, 국가간에 균등한 생활을 이루자는 ‘삼균주의’를 창안하였다. 이는 1930년 창당된 한국독립당의 당의 · 당강으로 채택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1930년대 이후 좌우익 독립운동단체의 주요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한국독립당, 민족혁명당, 재건한국독립당 등을 창당하며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주도한 선생은 1940년 중경 한국독립당 창당위원 및 부위원장을 맡아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후원하였다. 또한 삼균주의에 입각하여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작성하는 등 임시정부의 지도이념과 광복 후 민족국가 건설론을 정립하며 독립운동계의 이론가 및 사상가로 활동하였다.
광복을 맞이하여 1945년 12월에 귀국한 선생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과 남북분단이 가시화되자 민족문제의 주체적 해결 및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며 김구 · 김규식 등과 남북협상에 참여하였다. 또한 삼균주의의 정책적인 실현을 목표로 삼균주의청년동맹, 삼균주의학생동맹 등을 조직하고 사회당을 창당하였다. 1950년 9월 납북된 후 1958년에 서거하였다.
조소앙호 선생 공적내용 요약
○ 1917 대동단결선언 발표
○ 1919 대한독립선언 발표, 임시정부 임시헌장 기초
○ 1930 한국독립당 창당, 임정지도이념으로 삼균주의 채택
○ 1941 삼균주의에 의거하여 대한민국건국강령 기초
○ 1919~45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장, 외무부장, 임시의정원 의장 역임
○ 1989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독립기념관 개요
독립기념관은 외침을 극복하고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 보존, 전시, 조사, 연구함으로써 민족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국민의 투철한 민족정신을 북돋우며 올바른 국가관을 정립하는데 이바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민이 즐겨찾는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이라는 경영비전을 설정하고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이용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국민이 즐겨찾는 기관, 고객 눈높이에 맞는 핵심사업 활성화를 통해 이용자 중심의 나라사랑 정신함양의 중심기관을 지향하며, 운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한다. (설립근거 : 독립기념관법 제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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