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앤 리우 국경없는의사회 국제 회장, 유엔 안보리서 ‘분쟁지역 병원 보호’ 연설
유엔 안보리 결의안 만장일치 통과
이날 투표에 앞서 조앤 리우 국경없는의사회(MSF) 국제 회장은 안보리 회원국들 앞에서 연설하며 인권 보호를 위해 나설 것을 촉구했다.
◇연설문 전문
각국 대사 여러분, 그리고 신사 숙녀 여러분, 지난 수요일, 알레포에서 공습이 일어나 현지의 알 쿠드스 병원을 완전히 파괴시켰습니다. 이 공습은 남성, 여성, 아동 등 적어도 50명을 산산조각 냈습니다. 그리고 시내에 남아 있던 마지막 소아과 의사 중 1명의 생명도 앗아갔습니다. 살인적인 공습이었습니다.
최근 10여 일간 알레포에서는 거의 300차례의 공습이 일어났습니다. 종종 무리를 지어 모이곤 하는 민간인들, 무고한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오늘날 전쟁 속 개인이란 무엇입니까? 산 자든 죽은 자든 그저 소모품에 불과합니다. 환자들과 의사들은 합법적인 공격 목표가 됐습니다. 여성, 아동, 아픈 사람, 부상자와 간병인, 이들은 모두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 공격들을 멈춰 주십시오.
저는 2015년 10월 3일, 우리(국경없는의사회) 외상 센터가 미국의 공격을 받은 이후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에 갔습니다. 생존자 중 한 명인 국경없는의사회 간호사를 만났는데, 당시 무자비한 공습 속에 그의 왼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에게 들은 이야기가 날마다 저를 괴롭힙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쿤두즈에서 교전이 발발했을 때 국경없는의사회는 직원들에게 이 외상 센터는 안전한 곳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폭격을 당할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그의 말이었습니다. 10월 3일까지는 저도 그 병원이 안전한 장소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고 그에게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최전선에 있는 그 어떤 의료 시설들에 대해서도 더 이상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수단, 수단, 시리아, 우크라이나, 예멘 등지에서 병원들은 일상적으로 폭격, 습격, 약탈을 당하고 때로는 방화를 당해 전소되기도 합니다. 의료진은 위협을 당합니다. 환자들은 병상에서 총에 맞습니다.
지역사회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 의료 시설을 겨냥한 정확한 공격에 대해서는 실수였다고도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부인하기도 하며, 어떤 때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실체는, 도시 지역에서 대규모로 무차별적이고 불균형적으로 민간인을 겨냥한 것이며, 최악의 경우 테러 행위라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의료 시설을 겨냥한 공격의 여파는 그로 인한 직접적인 사망과 부상을 너머 훨씬 더 멀리까지 나타납니다. 이 공격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일상적인 구명 의료 지원을 파괴합니다. 삶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종지부를 찍게 합니다.
2015년 10월 26일, 사우디 주도 동맹군이 벌인 공습이 예멘 북부 하이단에 있는 국경없는의사회 병원을 타격해 최소 20만 명의 사람들이 구명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은 이후 3개월 사이 예멘에서 부분적으로 혹은 완전히 파괴된 국경없는의사회 시설 3곳 중 첫 번째 시설이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시설에 대한 공격들은 잔혹한 전쟁의 일면을 보여줄 뿐입니다. 다른 병원들과 진료소들에 대한 공격, 그리고 학교, 시장, 예배당을 겨냥한 공격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현지 의료진들은 이 학대의 직격탄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치명적인 교착 상태에 와 있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제 기능을 하고 있는 병원들이—그 안에서는 환자들이 목숨을 지키려고 병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안전한 영역에 있다고 가정할 수 없습니다. 병원들과 환자들이 전쟁터 속으로 끌려 들어왔습니다.
시리아 남부 도시 자심(Jasim)에서 병원 활동 재개를 막으려고 시민들이 병원 문 앞에서 시위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병원이 운영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들은 알고 있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지금 의료 시설 공격이라는 전염병 앞에 직면해 있고, 이 때문에 우리의 핵심 활동 수행 능력이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독립 수사를 의뢰한 우리의 요청에는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책임 규명은 독립적이고 공정한 진상 조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해자들이 조사관, 판사, 배심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 지원에 대한 공격을 가차없이 비난할 것입니다. 현장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에 대해 소리를 드높여 강력하게 말할 것입니다. 의료인은 죽음에 이르는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환자들이 병상에 누워 공격을 받거나 학살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의사인 우리들은 의료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 서약을 합니다. 우리는 출신, 종교, 인종, 혹은 그 사람이 어느 편에 속해 싸우는지에 관계없이 모든 개인을 치료합니다. 심지어 부상을 입은 전투원들, 혹은 범죄자나 테러리스트라고 불리는 사람들까지도 치료합니다.
병원은 공격을 받아서도 안 되며, 무장한 사람들이 환자를 수색하거나 사로잡는 등 여러 이유로 강압적으로 병원에 들어와서도 안 됩니다. 이 기본적인 원칙에 등을 돌리는 것은 곧 의료 윤리의 근간에 등을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전쟁 때문에 의료 윤리가 묻혀서는 안 됩니다.
국가의 주권이나 국내법으로 인해 전시 의료 지원의 중립성이 외면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이리저리 동맹을 바꾸고 교전 규칙도 애매한 특징을 보이는 대(對) 테러, 대(對) 반란의 시대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전쟁의 성격은 달라졌으나, 전쟁의 규칙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평화와 치안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사회의 5개 상임이사국 중 4개국이, 각기 다른 정도에서, 지난 1년간 의료 시설 공격에 책임이 있는 동맹군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이중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주도하는 동맹군, 예멘에서 사우디가 주도하는 동맹군, 그리고 러시아의 지원 속에 시리아가 주도하는 동맹군도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특별한 책임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하며, 모든 회원국 앞에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이 공격들을 멈춰 주십시오.
오늘 이 자리에서 나누는 논의가 공허한 미사여구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번 결의안은, 최근 5년간 시리아에 관해 통과시킨 것들을 포함한 다른 수많은 결의안들처럼, 아무런 처벌도 없이 수시로 침해되는 결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의료 지원이 체계적으로 공격 목표가 되고 있는 시리아와 여러 포위 지역에서는 의료 지원이 차갑게 배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의무를 이행해 주십시오. 공정한 의료 지원이 분쟁 속에서 보호를 받도록 보장해 주십시오. 나아가, 모든 환자와 부상자들을 차별 없이 치료해야 하는 의료진의 의무를 지지해 주십시오.
지난주 알레포에서 살해당한 소아과 의사 마즈(Maaz) 박사는 생명을 살린다는 이유로 목숨을 빼앗겼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의 인류애와 용기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는 분쟁 지역에 사로잡힌 수많은 환자, 간호사, 의사, 지역사회, 국경없는의사회 직원들이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이번 결의안을 행동에 옮겨 주십시오. 전쟁 행위를 좌우하는 그 기준들을 다시금 확실하게 지켜 주십시오. 이번 결의안은 모든 회원국들과 비회원 단체들이 대학살을 멈추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분쟁 지역에서 의료 시설과 지역민들을 겨냥한 공격을 멈추도록 여러분의 동맹국들에게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우리는 환자들을 저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입니다. 의료 지원을 찾거나 제공하는 일이 사형 선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오늘 여러분이 내놓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의 행동을 바탕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일은 이제 막 시작된 것에 불과합니다. 이번 결의안이 생명을 살리도록 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배경 설명
가장 최근 일어난 병원 폭격은 지난달 27일 시리아 알레포 알쿠즈 병원에서 발생한 것으로, 해당 병원은 국경없는의사회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고 있었다. 알쿠즈 병원 폭격으로 인해 14명이 사망했으며, 이 가운데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의료진 및 관계자 6명이 포함돼 있다.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폭격은 지난해 9월 미군 공격으로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소재 국경없는의사회 병원 폭격이다. 이로 인해 총 42명이 사망했으며,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의료진 14명이 여기에 포함됐다. 미군은 ‘오폭’이었다고 해명하며 군인 16명을 징계 처분했는데, 솜방망이 처벌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고 있다. 또한 지난달 29일 사건 관련 수사보고서를 발표했으나 국경없는의사회는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IHFFC(국제인도주의사실조사위원회)의 독립 수사를 요구하는 바이다.
더불어 국경없는의사회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해시태크 캠페인 ‘#NotATarget’을 통해 병원, 의료진, 부상자들은 ‘공격 대상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개요
국경없는의사회(Medecins Sans Frontieres / Doctors Without Borders)는 세계 70개 이상의 나라에서 분쟁, 전염병, 영양실조, 자연재해로 고통 받거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긴급 구호를 하는 국제 인도주의 의료 구호 단체이다. 1971년에 의사와 기자들에 의해 설립되어 현재 세계 28개국에 사무소를 둔 국제 단체이며, 한국 사무소는 2012년에 문을 열었다. 국경없는의사회는 그 동안의 인도주의 의료 활동을 인정받아 1996년에는 서울평화상을, 1999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웹사이트: http://www.msf.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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