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더욱더 변해야 산다
박효종(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한나라당은 10·26 국회의원재선거에서 승리함으로 지난 4월의 재보선에 이어 불패신화를 이어갔다. 분명 의미있고 값진 승리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성공은 일구어냈지만, 작은 성공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한나라당은 ‘실패학’을 쓰고 있는 중이다. 특히 두 번에 걸쳐 대선에서 실패했다는 열패감은 한나라당이 풀어가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잠시 쉬어가며 열패감을 만회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기분과 입장은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거기에 취해서는 곤란하다.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우쭐거리는 나머지 ‘여당 같은 야당’이 되거나 ‘웰빙야당’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사람이 몰리고 돈이 몰린다고 ‘대세론’을 필 때가 아니다. 또 “표정관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하며 걱정한다면, 걱정도 팔자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성공보다 더 큰 실패”는 없다는 준칙을 상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의 보선승리를 내년 지방선거와 연결시키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더욱이 2007년 대선과 연결시킬 수는 없다. 지금의 승리는 ‘에피소딕’한 것일 뿐, 미래에 대한 ‘솔리드’한 지표는 아니다.
물론 인간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존재다. 또 현재를 통하여 미래를 조망하기도 한다. 정당도 마찬가지이다. 정당도 과거와 현재 및 미래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미래를 정확하게 내다보기 위해서는 근거 없는 낙관론보다는 신중한 비관론이 요구된다. 비관론의 근거는 최소극대화를 의미하는 ‘맥시민(maximin)’적 사고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맥시민 전략’의 필요성은 지난 대선전에 한나라당이 “여당같은 야당”행세를 하고 대세론을 개진하다가 일거에 초토화된 경험을 떠 올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재보선에서의 연이은 승리라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참여정부가 추구해온 ‘진보정치 실패’에 대한 반사이익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특히 낙관론이 위험한 것은 “지금 이대로가 좋다”든지 “변할만큼 변했다”는 생각에 함몰될 때 자기최면과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낙관적 멘탈리티는 개혁과 변화를 절체절명의 과제로 삼아야할 한나라당의 상황에서 약보다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이 시점에서 한나라당이 기억해야할 화두가 있다면, 이른바 ‘솔로몬의 반지’다. 이스라엘의 솔로몬왕은 자신이 일생동안 낄 반지를 주조하기를 명하면서 그 안에 새겨넣을 경구를 찾았다. 이 때 한 현인이 매우 인상적인 경구를 제안했다. 그것은 “지금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였다. 이것은 시간의 허무함을 말하기보다 평상심을 유지하면서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상하기 짝이 없는 현재의 감정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화의 근원이 되기 쉽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솔로몬만이 좌우명으로 삼아야할 경구가 아니라 그야말로 대선패배, 총선 패배, 재보선 압승이라는 우여곡절을 겪은 21세기 한나라당이 금과옥조로 삼아야할 경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인기란 바람과 같이 수시로 그 방향이 변하는 것이고 또 세상인심은 조석변(朝夕變)이다. 인기란 인기가수의 빌보드 차트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 몇 10주 동안 계속해서 유권자들의 인기순위 1위를 기록해도 막상 문제가 되는 것은 선거가 있는 주의 인기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인기란 무상하다는 점을 환기시키면서, 한나라당에 대하여 몇 가지 고언을 하고자 한다.
한나라당은 ‘인기’보다 ‘신뢰’를 얻는 것이 급선무다
이 상황에서 한나라당이 선택해야할 대안은 무엇인가. 한나라당이 진지하게 권력에 도전할 마음이 있다면, 필요조건으로 반드시 자기 자신을 혁신해야 한다. 지금 한나라당은 영락없이 “머리깍인 삼손”의 모습이다. 권력이 있다가 없어지면, 이른바 금단(禁斷)현상이 벌어진다. 한나라당은 이 금단현상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고 있는가. 보선승리에 마음을 놓고 자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금단현상을 지혜롭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성장체험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권력이 없는, 이른바 ‘권력백수’의 생활에서도 소중한 것을 배우고 얻는 것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물들은 서로가 서로를 결정하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자기 결정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 속에 속물적 인간상, 아니면 품위 있는 인간상, 두 가지 가능성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그 중 어느 것을 실현시키느냐 하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정과 결단에 달려있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속물적 근성을 온존시키면서 ‘웰빙정당’이 될 수 있는가 하면, 새롭게 태어난 ‘개혁정당’이 될 수도 있다. 개혁정당이 될 때 비로소 반사이익이 아닌 비전과 정책적 대안으로 스스로의 정치동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자신의 존재이유를 확인하고 국민들에게 자신의 위상을 인상적으로 각인시키는 데는 세 가지 중요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의미 있는 어떤 일이나 어떤 가치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이며, 둘째는 어떤 것을 직접 체험해보거나 누군가와 진정으로 마주쳐보는 방법이다. 즉 정치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행위 속에서도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젊은이들과 과감하게 마주쳐 보는 방식이 어떨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방법인 ‘자기초월’의 방식일 것이다. 자기 자신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운명에 직면한, 희망 없는 희생양조차도 자기 자신을 뛰어넘고 초월하여 성장할 수 있다. 한나라당은 그렇게 자신을 초월할만한 용기가 있는가.
이와 관련, 한나라당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정권을 빼앗긴 금단현상 때문에, 혹은 정권을 잡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고 해서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쓰는” 황당한 상황처럼, 지금 해야 할 일, 즉 개혁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화는 말한다. 무디어진 낫으로 일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그 이유를 묻자, “할 일도 많은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무딘 연장을 가는 건 절대 시간낭비가 아니라고 충고했다. 준비운동 없이 마라톤에 임하면 부상을 얻기 쉽다. 마라톤에도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면, 정권을 잡겠다는 포부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준비의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시대정신을 읽고 변신할 수 있는 일련의 필수과정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지금 자신들이 들고 있는 낫이 “예리한 낫”이 아니라 “무딘 낫”임을 깨달을 수 있는가. 그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 낫으로 더 이상 풀을 베지 말고 낫을 갈아야 한다. 그것은 혁신을 통해 환골탈태한 정당으로 태어나는 길이다.
한나라당이 원대한 목표와 비전을 세우고 이를 자나 깨나 상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물론 정권교체일 것이다. 하지만 정권교체라는 원대한 목표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나머지 지금 자신이 맡은 역할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흔히 목표를 잊지 않고 상기할 때 자신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학생들은 지금 해야 할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벼락출세하는 꿈만 꾼다. 위대한 사람이 되는 꿈, 부자가 되는 꿈, 성공하는 꿈등등…. 그러나 그것은 백일몽에 안주하는 꿈쟁이의 게으름을 말할 뿐, 투철한 실용주의자의 현실감수성은 아니다. 우리가 이 때 할 수 있는 충고는 “꿈깨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나라당은 권력을 다시 찾겠다는 꿈에 부푼 나머지 할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칼레의 시민』을 보면, “나는 살아있다. 나는 오늘에서 내일로 걸어간다”는 명구가 나온다. 출발이란 어느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자체가 목적이며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의미이다. 한나라당이 권력쟁취라는 목표를 향해 나가기보다 지금 당장해야 할 출발은 무엇인가. ‘속물근성’을 가진 정당이 아닌 ‘진정성’을 가진 정당으로 새로 태어나는 일이다.
한나라당은 권력욕을 한 단계 넘어서서 보다 넓은 관심과 지평을 가져야한다. 또 작은 관심과 호기심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국민들에게 무엇이 더 필요한지,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젊은이들의 욕구가 무엇인지, 또 나라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더 유익한지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새롭고 놀라운 혁신과 개혁들이 가능해질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에게 필요한 것은 “안풍·병풍·총풍등 공작정치로 민심을 도둑질한 당시 여권에 진 것”에 대하여 회한에 젖을 것이 아니라 “시대에 지고”, “젊은이들에 졌다”는 화두의 의미를 겸손하고 정확하게 판독하는 일이다. 이 화두판독에 성공할 때 ‘시대 친화적’이고 ‘젊음 친화적’이며 또 시대와 젊음을 앞서가는 매력적인 철학과 비전, 어젠다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한나라당은 정치 어젠다나 정책 어젠다에만 골몰하지 말고 뜨거운 사랑도 실천할 줄 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권력이나 정책, 혹은 돈이 아니라 마음이고 사랑, 그것도 진정성이 깃든 사랑이다. 무엇을 사랑할 것인가. 노년층과 장년층만 사랑하지 말고 젊은이들을 사랑하고 가까이 해라. 시장에서 성공한 사람도 사랑하지만, 시장에서 실패한 사람도 보살펴라. 또 이 땅을 사랑하되, 생명복원의 상징으로 떠들썩한 청계천만 사랑하지 말고 이 땅의 보잘 것 없는 풀 한포기도 사랑하라. 일본으로부터 끊임없이 도전을 받는 독도도 사랑해야 하겠지만, 국토 최남단 마라도도 사랑해야한다.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지만, 앞으로 태어날 모든 것도 사랑해야한다. 개발의 열기를 간직하면서도 환경의 소중함도 마음속에 아로새겨야 한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과거도 사랑하지만, 그 과거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라.
국가의 정체성을 소중히 하면서도 국가가 고쳐나가야 할 부분에 대하여도 과감히 마음을 열어야 한다. 영남만 사랑하지 말고 호남도 사랑하라. 보수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보수주의를 비판하는 사람, 합리적인 반미주의자, 합리적인 진보주의자들도 포용하라. 그래야 진정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표가 되지 않겠는가. 또 그 사랑을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과거에 나라를 지키는데 애썼다는 말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자신의 자녀를 군대에 보냄으로써 애국심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론적으로는 작은 정부와 시장경제의 활성화를 외쳐야 하고 또 감세정책도 추구해야 하겠지만, 당원 개인적으로는 자선을 행해야 한다. 정부에 의한 강제적 복지는 반대하더라도 자발적인 복지는 스스로 실천해야 한다. 차가운 시장주의자는 금물이다. 기업가들의 힘을 북돋우는데 진력하면서도 서민들이 힘겨워하거나 외로워 할 때, 또 눈물을 흘릴 때 언제나 곁에 있는 ‘따뜻한 정당’이 되어야 한다.
물론 진정성의 사랑을 보이더라도 유권자들로부터 ‘인기’를 얻는데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기를 못 얻더라도 ‘신뢰’를 얻을 것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인기’가 삽화적이고 찰나적인 것이라면, ‘신뢰’는 장기적으로 축적된 도덕 자본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즉 안정적이거나 변덕스럽지 않은 것이다. 또 인기가 단기의 '베스트셀러(best seller)'라면, 신뢰는 '스테디셀러(steady seller)'가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한나라당은 기득권 벗기, 특권 내주기, 벗어주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벌써 ‘천막당사’와 그 시절을 잊었다면 유감이다. 지금이야말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결의를 보여주었던 ‘천막당사정신’을 상기할 때이다. 지난 4월 위기의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차떼기’의 오명과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훌훌 벗었다. 그랬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또 바로 그것이 자기초월정신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도 ‘차떼기정당’의 이미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한다. 천막당사정신이 ‘공갈빵’이 아닌 것을 행동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입증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당사를 헌납하겠다던 약속을 지킨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잊고 죽을 각오를 하라. 자신을 잊고 죽음을 각오할수록, 한나라당은 더욱 더 개혁정당의 정체성을 갖게 되며, 또한 자기 자신의 가능성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다. 바로 이것이 필사즉생(必死卽生)의 원리일 것이다.
권력의 자리를 특권의 자리보다 자원봉사의 자리로 생각하라. 따라서 권력에 도전하려 할 때의 마음가짐은 개선장군이 되겠다는 생각 보다는 국민들의 발을 씻기겠다는, 이른바 ‘세족자(洗足者)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또 한나라당이 진정한 ‘자기초월’을 하려면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손해보고 싶지 않다는 것은 편해지고 싶다는 것과 통하는 생각이다. 지저분한 일은 하고 싶지 않다, 앉고 싶다, 빨리 자고 싶다, 불평은 듣고 싶지 않다, 사람이라면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겠지만, 개중에는 자기가 손해를 본다는 걸 알면서도 “잘 알겠습니다”라고 하며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그런 방안이 있는가. 한나라당은 마음을 비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과거에 마음을 비우는 순수함의 모습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났으나, 지금 ‘눈물정치’는 시효를 다했다. 마음을 비우는 모습이라면 ‘살아야 한다’는 준칙보다 ‘죽어야 한다’는 준칙을 실천하는 길이다.
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죽는 것에도 공공재적인 성격이 있다. “우리 모두 죽자”고 하면서 자신만은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은밀하게 한다면, ‘무임승차적(free rider) 사고’다. 한나라당이 마음을 비우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나’부터 마음을 비우고 죽어야한다는 ‘우선승차적(first rider) 사고’를 가져야 한다.
나는 서울시장선거에 나오지 않아도 되고 혹은 대선주자로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어야 한다.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중차대한 공직을 맡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겠는가. 지금 한나라당은 ‘한사람의 영웅’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웅들의 공동체’를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한나라당 유력인사들은 “왜 내가 아니면 안되는가”가 아니라 “왜 한나라당이 아니면 안되는가”를 국민들 앞에 보여주어야 한다.
‘영웅들의 공동체’를 만드는 길 가운데 하나는 당적을 가진 사람이 아닌 유능한 외부인사들에게도 문호를 과감하게 개방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진정으로 개혁주의자의 모습을 보이려면 기득권을 포기하고 전국의 인재들을 끌어드리는데 정성과 열정을 보여야 한다. 외부인사를 받아들이는 것을 찬성하는 정도가 아니라 열정적이어야 한다. 나라의 인재로 판단되는 사람들이라면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데려 와야하고 또 그럴만한 메커니즘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도 필요하다. 누구든지 당내경선을 통해야 한다고 경직되게 주장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당내경선이 동네잔치나 마을잔치가 되어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은 독선과 오만함이요, 혹은 “그 친구도 나서는데 내가 나서지 못할 것이 무엇인가”하며 출전을 서두른다면, 난쟁이들의 다툼과 다르지 않다. 공당의 경선이 난쟁이들의 키재기와 같은 상황이 되서야 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시대정신을 읽는 것이다. 그것도 20세기의 낡은 시대정신이 아니라 새로운 21세기의 시대정신을 읽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정당의 목표를 권력을 잡는데 있다고 말한다. 다운즈(A. Downs)가 공공선택론자의 입장에서 평범하게 말한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에서는 규범적 금과옥조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권위주의시대에 정부여당에 순응하는 야당의 정체성을 비판하기 위하여 원용된 개념에 불과할 뿐, 정상화된 정치적 상황에서는 잘못된 목표이다. ‘권력을 위한 권력다툼’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권력에 관한 한, 권력을 잡는다는 사실보다 무엇을 위한 권력인가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참여정부가 이 사실을 경시했기 때문에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이 물음에 답변할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답변하고자 한다면, 한나라당도 이악스럽게 살기보다는 손해를 보겠다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웰빙’이나 찾고 명망이나 명예를 추구한다면, 결국에는 그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공과 성과를 일구어내는 것이 이 시대의 놀라운 성공담으로 꼽히고 있다. 또 그것이 효율의 극대화로 칭송받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그런 유행적 사조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최대한의 땀과 수고로움을 통하여 최소의 성공을 도모해야 한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그 자체로 감동스러운 일 일뿐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또 조그만 성공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조그만 성공은 상대방의 실패에 반사이익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성공보다 더 큰 실패는 없다”는 점에 유의한다면, 한나라당은 모름지기 ‘성공처럼 보이는 실패’보다 ‘실패처럼 보이는 성공’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인재를 발굴하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해야한다
한나라당은 두 번에 걸친 대실패를 거울삼아 쓰디쓴 쓸개를 씹는 심정으로 ‘실패학’에 전념해야한다. ‘실패학’에 정통하다면, ‘성공학’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실패와 성공은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성공학’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진보의 늦깎이 행태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보수를 표방하는 한나라당에게 “권력을 잡으라”고 채근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다. 그러나 권력이란 얻으려고 애쓴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결과로서 생기는 어떤 것일지언정, 유일무이한 목표로 삼을만한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이건 대권이건, 권력을 잡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어야 한다. 또 그 목표나 이유는 절박해야 한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권력을 잡고 싶다면 “나는 왜 권력을 잡아야 하는가” 하는 성찰적 질문부터 먼저 해야 한다.
일단 그 이유가 정립되고 공론의 장에서 검증된다면, 그 다음에는 권력을 잡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권력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권력중독자나 ‘권력에의 의지’를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 드러나지 않고 있는 사회·정치적 필요, 혹은 시대적 요구를 발굴하고 실현시킴으로써 권력을 장악할 이유를 찾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권력쟁취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 이 필요성은 인간만이 특별히 가지고 있는 또 다른 현상, 즉 웃음과 비슷하다. 만일 당신이 누군가를 웃기고 싶다면 그에게 ‘개그’를 한다든가 해서 웃을만한 이유와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 웃어야할 이유를 대지 않고 막무가내로 웃으라고 채근을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진정으로 웃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김치”하고 말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중에 사진을 보면 인위적인 미소 속에 그들의 얼굴 표정이 굳어있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제시할 수 있는 이유란 무엇일까. 어떤 이유가 설득력이 있고 감동적이어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산업화만능이나 민주화과잉을 넘어서는 어떤 의미 있는 화두(話頭)를 말해야 하지 않을까. 또 시장이냐 정부냐의 무미건조한 논쟁을 넘어서서 인간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깔린 휴머니즘적 자유주의를 말해야 하지 않을까. 진보주의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할 때 진보주의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과거에 대하여 자학적이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과거의 자랑스러움에만 매몰되지 말고 현재의 개선책과 더 나은 미래상을 말하라. 야당으로서 권력에 대한 비판 등, ‘칼의 노래’를 부르기도 해야 하겠지만, ‘희망과 비전의 노래’도 아울러 불러야한다. 대권을 움켜잡겠다고 말하기보다 봉사에 전념하겠다고 말하라. 승리에 목말라하기보다 봉사에 목말라하는 마음을 전하고 승리자가 되기보다는 봉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라. 그런가하면 단순한 평준화의 비판보다 수월성의 의미를 강조해야 할 것이다.
또 정의와 도덕을 외치기보다 화해와 협력, 평화를 외쳐야 하지 않을까. 민주주의만 말하지 말고 자유주의도 말하라. 우리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국가임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마추어리즘이 서투르다”고 말하지 말고 “프로페셔널리즘이 중후하다”고 말하라.
중요한 것은 이러한 메시지를 진정으로 국민들에게 말하고 또 국민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다. 지금은 특히 ‘메시지 불신’ 못지않게 ‘메신저 불신’이 팽배한 시대이다.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이를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국민들은 믿고 믿지 않고의 문제를 결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나라당의 의미 있는 개혁 ‘메시지’를 전달할 진정한 ‘메신저’를 찾는 일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을 찾는 일은 우리가 어린시절 소풍갔을 때의 ‘보물찾기’처럼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숨어 있을 수 있고 또 정치에 뜻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찾는 것이 당면한 한나라당의 소명(召命)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안팎을 차별할 필요가 없다. 또 그들을 찾는데 진정성을 보이려면 절차를 고집함으로 걸림돌을 만들어서도 안된다. “밖에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는 서운한 생각보다는 무소유(無所有)의 정신으로 “나보다 훌륭한 사람을 보고 배우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항상 새술이 새부대에 담기는 것은 아니며 헌부대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때로는 오직 새부대만이 새술을 담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은 한나라당이 허기진 사람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며 권력을 잡겠다고 소리치기보다 기도하는 심정으로 국민들을 향하여 호소해야 할 때다. 벼랑 끝에서 기도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지금 한국은 벼랑 끝에 서있다. 시간도 많이 없다. 이것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지금 집권층은 21세기 시대정신을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할뿐더러, 헌법정신조차 때로는 잊어버리고 있다. 20세기의 낡은 패러다임에 “흔들리지 말자”를 합창하고 있는가하면, 대한민국이 피땀 흘려 일구어놓은 정체성을 가볍게 치부하기도 한다.
이 한국의 위기를 구하려면 한나라당은 ‘유권자들의 표심’에 호소하지 말고 ‘유권자들의 영혼’에 호소해야 한다. ‘유권자의 표심’을 얻기보다 ‘유권자의 영혼’을 얻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영혼에 다가가는 한나라당의 호소라면, “돌아온 각설이” 타령처럼 선거 때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간헐적이고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적인 호소’나 현 정권의 정치행태를 답습하는 ‘포퓰리즘적 호소’라기보다는 개혁정신에 입각한 헌신의 마음과 정성 및 의미가 담겨있는 ‘세만틱(semantic)한 호소’라야 한다.
당연히 이런 호소력을 가진 인재들을 발굴하는 것이 급선무다. 권력은 무인들의 총구에서 나오는 것도, ‘데마고그’나 ‘포퓰리스트’의 구호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입신양명하려는 정치가의 야망에서 나오는 것도 아님을 알아야 한다. 권력은 국민과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국가인(statesman)’의 진정성에서 나오는 것이 순리다. 이런 진정성을 가진 인재들이 포진한다면, 개혁과 변화의 의미도 살아 꿈틀거리며, 한나라당도 비로소 멋진 ‘성공학’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에피소딕한’ 정당이 아니라 ‘세만틱한’ 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환골탈태하고 스스로를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하며, 이런 관점에서 새사람들에게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주제발표
한나라당의 발전방향과 인재영입
이두아 (변호사)
1. 한나라당의 변화의 필요성
○ 수구정당의 이미지 탈피
○ 정책정당으로의 전환
○ 지지층의 결집 내지 확대 도모
○ 정권창출을 위한 환골탈태
○ 작은 승리에 안주하지 않고 정권창출을 위한 노력이 필요
2. 변화의 수단
○ 적극적인 외부 인사의 영입
○ 기득권의 포기
○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당의 발전 전략으로서 외부 인사의 영입 필요성
- 과거 외부 인사 영입이 한나라당의 변화를 유도하였는지 의문
- 일시적 이미지 제고 효과
-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당의 발전 전략으로서 외부 인사 영입이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
○ 청년 조직의 필요성
○ 청년 조직의 구축을 위한 실제적 방안
○ 대학생 조직의 활성화를 통한 당의 청년화
- 지속가능한 외부 인사 영입의 방법
- 역량있는 청년들의 등용문
- 새로운 지지기반의 확대
- 당과 시민사회 연결고리
- 당과 청년 조직의 역할 분담
3. 영입 외부 인사에 대한 역할 부여
○ 외부 인사를 통하여 지지층 결속 내지 확대
○ 정체성 확립
○ 정책정당으로의 전환
○ 시민단체와의 결속 내지 연대
○ 청년조직의 구축 및 발전
4. 인재영입위원회의 역할
○ 당의 정체성에 맞는 인재를 영입
○ 인재 영입을 통하여 당의 혁신 달성
○ 인재영입위원회 구성의 중요성
- 사회 원로 내지 명망가를 위원으로 위촉
○ 인재영입과정의 투명성 확보
5. 한나라당의 정체성 확립
○ 당의 최우선 과제는 정체성 확립
-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정당이므로 과거 색채를 벗어나지 못하고 수구 정당으로 비난받음
- 인적 연계성으로 공격받고 있는 현실
○ 인재영입 기준과 당의 정체성 문제
○ 당 정체성 확립을 위한 구체적 노력
○ 외부인사 영입이 장기적 효과를 발휘하기 위한 전제 조건
○ AGENDA, VALUE의 문제
○ 국가는 미래의 이미지를 공유하는 사람들인 국민의 집합체
⇒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국가의 이미지 확립
웹사이트: http://www.hannar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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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대변인실 김용진 차장 02-3786-34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