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의원, “한(恨)과 혼(魂)을 넘어서”
미래는 분석하는 자보다 예측하는 자의 것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자보다 상상하고 창조하는 자의 것이다.
정치인들은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상상한다. 4~5년, 길게는 10-20년후 정치의 쟁점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전선이 형성될 것인가를 고민한다. 미래의 쟁점을 만들어야 자기가 도전해야 할 시대에 시대의 중심이 되고 전선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대통령도 통일이라는 의제를 자신의 상표로 만들었다. 탈냉전시대가 도래하자 민주화 이상의 브랜드가치, 즉 통일방법론과 집념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시대를 만들 수 있었다. 그는 교도소에서도 매일 ‘통일장기’를 두며 미래를 예측하고 상상했다.
노무현대통령도 3김이후시대를 예측하고 준비하고 상상했다. 정치입문시절부터 지역구도극복과 보스정치타파,깨끗한 정치를 자신의 의제이자 상표로 만들었다.
2007년을 앞두고 여러 정치세력이 움직이고 있다. 여러 주자들도 이미지를 창출하고, 브랜드 가치를 제고시키고 있다.
지난 세번의 대선에서 승패를 가른 요인은 여러 가지 있다. 최대한 단순화해서 키워드 중심으로 분석을 해보면 앞으로를 전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수(數)의 정치’를 했다. 전형적인 공학적 정치다. 3당통합과 호남고립이라는 작전이 주효했다. 수(數)에는 열광이 없다. 수(數)의 정치라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김영삼 전대통령은 포퓰리즘의 길을 걷는다. 인기를 얻지만 그 인기는 철학적 한계로 인해 금세 시들어졌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한(恨)의 정치’로 권좌에 올랐다. 한(恨)맺힌 호남이 있었기에, 생업을 포기하고서라도 그를 대통령으로 앉히려는 수십만의 열성적 지지자가 있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DJP연합도 한(恨)이 그 중심에 있었기에 권력의 교체를 가능케 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모자라는 2%를 DJP연합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노무현대통령은 ‘혼(魂)의 정치’로 승부했다. 노무현식의 혼(魂)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수십만명의 노사모가 거리를 배회하고 열정적으로 움직인 것도 과거의 정치인들에게는 없었던 ‘혼(魂)의 정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후보단일화가 선거전날 결렬되었을 때 대중들이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선거참여를 독려한 것도 혼(魂)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행정수도 공약은 모자라는 2%를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2007년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우리의 입장에서는 수(數)의 정치로 정권을 창출하는 것은 어치피 불가능하다. 한나라당은 그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고 싶겠지만 이미 지역구도의 장벽이라는 것이 과거만큼 강고하지 않기 때문에 수(數)의 정치는 가능하지도 않고, 그것에 의존하는 순간 퇴행적으로 보일 것이다.
한(恨)의 정치는 어떨까. 김대중 전대통령처럼 한(恨)을 풀어줄 수 있는 상징으로 압축될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 호남의 한(恨)도 과거 같지 않다. 반대로 영남의 한(恨)은 있을까. 정권을 10년간 놓친 아쉬움은 있어도 한(恨)이라고 까지 할 수는 없다. 반면 극우수구세력의 한(恨)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을 지금 ‘운동권’이라고 칭한다. 거리에서 집회를 조직화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낡아 보이고 대중적 동력을 받을 수 없다. 박근혜 한나라당대표가 수시로 국가정체성 운운 하는 것은 ‘수(數)의 정치’ + ‘한(恨)의 정치(극우보수)’를 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덧셈정치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경우는 ‘힘(力)의 정치’를 하고 있다. 능력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 ‘힘(力)의 정치’는 일정정도 힘을 발휘하고 있다. 지지율은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한(恨)의 정치’와 ‘혼(魂)의 정치’에서 보여주는 것만큼의 응집력과 파괴력이 없다. 그 결과 지지율 상승이 벽에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대표식의 과거 키워드를 덧셈식으로 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키워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볼 수 있다.
손학규 경기도지사가 부상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키워드를 만들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數)도 없고 한(恨)도 없고 혼(魂)도 없다. 힘(力)에서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비교된다.
오늘 뉴라이트 전국연합이 출범했다. 한(恨), 혼(魂), 그 어느 것이든 한나라당에 부족한 2%이다. 그 2%를 채워주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이라면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한나라당을 왼쪽으로 한 클릭 이동 시켜주는 뉴라이트라면 앞으로 정국을 움직이는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정체성논쟁 제기 때 보듯이 결국은 한나라당의 홍위병, 유정회, 학도호국단식 역할을 하는데 그쳤다. 결국 운동권을 자칭한 극우수구세력이 거리에서 움직였다면 이들은 교실이나, 신문 칼럼지면, TV토론, 헌법재판소 등으로 활동무대를 옮겼을 뿐 한나라당과의 차이를 두지 못했다. 부족한 2%가 되기를 포기한 것이다.
고건 전국무총리는 ‘합(合)의 정치’를 하고 있다. 그 스스로 키워드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지만 ‘합(合의) 정치’의 화신으로 비쳐지고 있다. 분열이 심한만큼 ‘합(合)의 정치’에 대한 기대는 커지고 있다. 하지만 ‘합(合)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선진국에서도 ‘합(合)의 정치’는 요원하다. 故정주영현대회장, 이인제의원, 정몽준의원 등 과거 제3후보는 이미지와 인기에 의존했다. 이미지와 인기는 대결구도가 심화되면 될 수록, 선거전이 종반으로 치달을 수록 한계에 부딪힌다. ‘왜 그인가’라는 유권자의 물음에 답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진영에서도 여러 후보가 있다. 국민의 관점에서 ‘왜 그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키워드를 생산해야 한다. 우리 측의 후보들은 각각 자신의 키워드에 부합하는 정치역정을 살았고, 일정한 역량을 보여왔다. 그것을 하나의 키워드로 외화하고 집중시켜야 한다.
내 나름대로는 이 문제에 관해서 대안 마련을 위해 오랜 고민을 해왔다. 이제 공론화와 공동의 토론을 통해서 보다 조직적으로 논의를 발전시켰으면 한다.
‘흥의 정치’ ‘신명의 정치’로 다시 대중을 모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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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두의원실 02-788-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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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6일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