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코리아포커스>는 12월 출범 예정인 ‘진실과 화해위원회’ 위원장으로 유력시되는 송기인 신부를 지난 5일 선상 인터뷰했다. 송 신부는 부산광복60주년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하는 ‘평화와 희망의 뱃길-평화사절단’ 단장을 맡아 항해중이다. 송 신부에게 과거사 문제에 대한 생각과 입장을 들어보았다.

“예정에 없던 독도 순례 흐뭇해”

예정에 없던 독도 순례로 배 안이 한바탕 잔치를 벌이듯 흥겨웠던 항해 5일째, 독도의 감흥으로 아직 흐뭇함이 가시지 않은 송기인 신부(평화사절단장)를 만났다.

송기인 신부는 “애초 공지와 다른 배로 바뀌는 바람에 초기에 불만도 많았고 지금도 불편하긴 할 것”이라며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예상 밖의 큰 환대를 받은 데다 오늘 예정에 없던 독도 순례로 배 안의 분위기가 좋아져 기분 좋다”고 항해 소감을 밝혔다.

항해 내내 배 안 여기저기를 누비며 인자한 할아버지처럼 사절단들의 불편함을 챙기던 모습이 떠올랐다. 송 신부는 “국무총리실에서 원래 17억원을 지원하기로 했으나 예산에 차질이 빚어져 5억원으로 줄어드는 바람에 선박을 제대로 구하지 못했다”며 “약속한 예산이 왔다면 더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못내 아쉬워했다.

송 신부는 그러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행사지만 기획을 치밀하게 한 덕분에 현재까지 잘 되고 있다”며 “열심히 일하는 실무진을 보면 어느새 저렇게 든든하게 자랐나 싶어 참 흐뭇하다”고 후진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외압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정확한 과거사 정리 필요”

화제를 돌려 송 신부에게 부산민주화항쟁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또 부산광복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서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과거사 문제, 특히 친일 문제는 우리사회가 60여 년 간 안고 있는 ‘암’과 같은 존재”라는게 그의 첫마디였다. 그는 “과거사 청산은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듯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회귀가 아니라 올바른 역사로 나아가기 위한 ‘희망’의 문제”라고 말을 이었다. “영토적으로는 해방됐으나 정신사적 통치이념으로는 친일파가 통치를 계승하는 바람에 미완의 해방이 됐다”는 얘기다.

송 신부는 “과거사 기본법이 통과돼 이제 정당성과 국민적 대표성을 갖고 과거사 청산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며 “일각에서는 반발도 만만치 않겠으나 그런 정쟁은 결국 국민과 역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리될 것”이라고 확신을 보였다. 그는 아울러 “흔들림 없는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며 인적구성도 매우 중요할 것”이라며 신중함도 내비쳤다.

과거사 정리의 의의에 대해서는 “후대가 떳떳한 삶을 살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왜곡된 역사에 대한 바른 해석으로 대한민국의 법적, 역사적 정통성을 회복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송 신부는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할 과거사로 친일문제를 꼽았으나, 그 밖에도 부일장학회, 장준하 의문사, 독재 잔재 청산, 각종 의문사 등 해결해야 할 과거사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일례로 “특히 쿠데타 주동자들의 계급정리가 불확실한 것도 문제”라며 “불명예제대일 경우 병장으로 강등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과거사들을 청산하기 위해 그가 내세운 원칙은 두 가지다.

“외압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는 정확한 정리, 그리고 개인적 보복이나 과거 회귀가 아니라 역사적 접근을 통한 정통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는 “단순히 묵은 때를 캐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이 나아가기 위한 미래적 가치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과거사 정리가 뒤를 돌아보는 과정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이어야 함을 거듭 강조했다.

송 신부는 “남아공의 ‘진실과화해위원회’는 포용과 관용으로 국론 분열을 피할 수 있음을 보여준 좋은 예”라며 “(과거사 정리의) 과정 없이는 국론이 단단히 뭉쳐지지 않는다”고 과거사 정리의 필요성을 한마디로 간추렸다.

“후배들에게 다 물려주고 촌로로 살고 싶어”

송 신부는 올해 고희를 맞아 지난 6월 천주교 신부직을 퇴임했다. 신부의 몸으로 인권운동에 힘을 쏟았던 지난날이 어땠는지 묻자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지 말자는 생각으로 힘이 미치는 한 열심히 살려고 했을 뿐”이라며 “신부라는 직업이 근본적으로 자신보다 남을 위한 일인 만큼 나보다 이웃이, 겨레가 잘 살도록 애를 썼으나 이뤄낸 것도 별로 없고 자랑스럽지도 않다”고 겸허한 대답이 돌아왔다.

엄혹한 세월을 종교인으로, 사회운동가로 살아오는데 어려움이 없었을 리 없다. 유신 때는 신부가 무슨 인권운동을 하느냐는 공격도 많이 받았고, 신부들을 관할하는 주교 등 내부와의 갈등도 많이 있었다는 것이 송 신부의 설명이다.

그는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당연히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며 “신부는 신도나 교회만을 위해 서약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인데 사회 불의나 부정부패, 인권이 유린되는 현장을 보고서도 방치한다면 신부 옷을 벗어야 한다”고 신념있는 운동가다운 결연한 의지를 보였다.

그렇다면 이제 신부직을 은퇴했으니 순수 사회운동가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의 모습을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 송 신부는 뜻밖에 “오히려 사회운동가로서의 직함들도 벗어나고 싶어 그동안 맡았던 이사직도 임기가 다하면 하나씩 그만두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사회가 신부님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말에 그는 “정말 꼭 내가 있어야 하는 일이라면 뭐 어쩔 수 없지만”이라고 답했다. 자신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궂은일도 마다 않고 달려갈 마음의 자세가 아직 사그러들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이내 “이미 후배들이 훌륭하게 성장했고 사회적 여건이나 사회운동의 환경도 성숙했으므로 그들에게 다 물려주고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바램을 밝혔다.

그는 현재 부산에서 한시간 반 떨어진 산골인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에 산다. 모두 합해 40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 노인들과 소주도 마시고 장기도 두고 그렇게 살고 있다. 이제 하나둘 씩 사회활동을 접고 남은 시간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송 신부는 말했다.

신부나 운동가가 아니라 자연인으로서 아쉬운 점은 없을까. 그는 “개인적인 인생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다만 인도나 아프리카 등지에 가서 그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잃지 않는 확고한 가치관을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아직 기회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송 신부는 평화사절단 크루즈의 여독이 풀리기도 전인 오는 15일부터 보름 간 로마 바티칸시를 방문한다. 이번이 네 번째 바티칸 방문이다. 바티칸 대사로 가 있는 후배가 초청한 ‘일종의 작은 동창회’ 행사라는 설명이다.

고희의 나이는 그의 결연한 사회개혁 의지나 왕성한 활동력을 조금도 꺾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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