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두의원, “통합과 정체성 논쟁에 부쳐”
부정적 평가는 낙인으로 갈수 있다. 낙인이론에 의하면 낙인찍힐 경우 헤어날 수 없다. 한나라당은 집권 36년의 결과 독재·부패세력으로 낙인찍혔다. 여기서 헤어나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다. 스스로 헤어나온 것은 아니고 김대중대통령의 집권과 노무현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수사 등 개혁을 통해, 외부적 강제에 의해 벗어나기 시작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한 것은 없다. 선진화를 국가목표와 시대정신으로 내걸었지만 구체적 정책으로 희망을 주고 있는 수준은 아니다. 발전적 보수나 개혁적 보수라는 표방도 정체성 논쟁제기 등 일관성 부족으로 인해 한나라당의 이미지로 압축, 상징화되는 수준까지 가고 있지 못하다. 현재 한나라당의 높은 지지도는 인기있는 대권주자와 우리당의 부정적 모습으로 인한 반사이익에 의존하고 있는 측면이 강하다.
우리당은 정체성 찾기의 어려움에 빠져있다. 정체성을 바로 세우자고 말하는 많은 이들조차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상품성있는 정책을 곧바로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정체성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이라는 좌표가 다소 산문적이고, 과거 정권에서 사용했던 용어라 신선감이 떨어진다고 지적하며 중산층의 부활(양극화의 해소와 극복은 그 귀결이 중산층의 부활이다)과 같은 시적표현을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본질은 차이가 없을 것이다.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생활밀착형 개혁정책과 관련해 대표상품을 개발하고 홍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의 모든 개혁정책은 보수 수구파에 의해 분열주의적이거나 계급주의적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른바 낙인찍기다. 그 낙인찍기는 상당한 정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나는 우리의 개혁노선에 대해 일정한 수정과 포장과 네이밍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령 ‘통합의 개혁’은 어떨까. 이것은 상생과는 다르다. 통합은 양극화의 극복을 의미하기도 하며, 개혁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통합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하는 개혁’ ‘능력있는 개혁’ ‘희망의 개혁’ 같은 화두도 검토해볼만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통합의 개혁’ 정책을 사용하고 홍보해야 한다고 본다. 가령 부동산정책과 관련해서 한나라당은 상위 2%를 위한 정당,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98%를 위한 정당이라는 논리를 갖고 대중과 접한다. 실제로 그런 것이냐에 관계없이 우리당의 이런 홍보논리 접근논리는 분열주의적으로 보인다.
가령 미국의 부자들은 정부가 상속세를 폐지하려고 했을 때 이를 반대했다. 그리고 항상 번돈의 일정 부분을 사회적으로 기부한다. 부자들의 의무를 생각하고,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공존하는 지속가능한 사회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부동산정책이나 각종 세금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때, 부자와 기업이 명예로운 사회, 그리고 가난한자가 패자부활하는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접근논리, 홍보논리를 사용한다면 어떨까. 이런 것이 ‘통합의 개혁’이다.
지난 번에도 한번 지적한 바 있지만 참여정부는 문화와 감동을 통해 정권을 창출했다. 요즘 열린우리당의 홍보에는 문화와 감동이 없다. 죽은 문자와 언어만이 있다. 이런 정당은 화석이 되어버릴 수 있다.
요즘 우리당에서 통합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크게 보면 전국정당화라는 목표를 실현하는 것을 두고 크게 두가지 방법론이 있다. 호남기반을 해체하는 동진전략론자와 호남기반을 유지한 채 동진전략을 추진하자는 것으로 나뉘어진다. 전자는 호남기반을 해체해야만 영남에도 진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집토끼도 잃고 산토끼도 잃어버리고 있는 상황에 대해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호남기반해체형 동진전략에 비해 호남기반유지형 동진전략론자들은 ‘도로 민주당’이 될 수 밖에 없다는 비판에 대해 답을 주어야 한다.
세력재편론에 있어 핵심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최소화하고 아측을 최대화 하냐이다. 우리가 기계적으로 민주당 나아가 국민중심당과의 통합을 거론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본다. 그렇게 되면 지역연합이 되고 87년 지역주의 체제로의 복귀를 선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2007년 시대의 요구와 변화를 읽고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어떤 성격과 지향을 띌 것이고 그 외연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내다보고 우리의 연대를 형성해야 한다.
지난 20여년은 민주화와 개혁의 시대였다. 이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87년 체제 이후 보수정권이 집권을 했어도 민주화와 개혁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 흐름으로 인해 우리는 끊임없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충원의 구조를 가질 수 있었다. 87년과 92년에는 재야민주화세력을 영입했고 97년과 2000년에는 386세대를 영입했다. 김대중전대통령은 그때마다 이들 집단을 상품화시키고 주목을 받게 한 뒤 영입했고 활력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운동권세대가 있었고, 전교조세대가 있어서 바탕으로 동원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우리의 충원구조에 단절이 생겼다. 시대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X세대와 포스트디지털세대(싸이세대)의 사고와 문화는 확연히 달라졌다. 더 이상 우리의 확고한 지지자가 아니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나름의 충원구조를 가지게 됐다. 이른바 뉴라이트다. 나는 이들을 한나라당의 유정회이자 학도호국단이고 홍위병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일면 그런 측면이 있다. 하지만 보수교단과 보수적지식인의 행동이라는 점에서 볼 때는 분명 충원인 것도 사실이다. 이들이 X세대와 포스트디지털세대(싸이세대)같은 감성세대를 대변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그런 연대의 한나라당과 보수교단 그리고 보수적지식인의 연대라는 틀에 대해서 우리가 주목할 필요는 있다.
우리가 한나라당 포위전략을 구사할 때는 이런 연대전선의 이동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우선 영남민주화세력을 집단화하고 상징화해야 한다. 그리고 상품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영남민주화세력과 확실한 연대를 갖고 전국정당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둘째 노동·시민세력과의 연대이다. 노동·시민세력과 우리의 전통적 유대관계는 거의 상실되다시피 했다. 이들과 연대할 수 있는 매개고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셋째 전통적 재야민주화세력과의 연대이다. 이들은 상당히 고령화되어 있지만 이들과의 연대는 전통적 지지세력의 복원이라는 의미가 있다.
넷째 X세대 포스트디지털세대(싸이세대)와의 연대이다. 1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이 연령세대의 문화코드를 읽어내고 이들이 지지하고 환호할 수 있는 세력을 개발, 집단화하고 상품화해야 한다.
이런 제세력과의 연대를 만들어내면서 민주당이나 중부권신당에 물어보아야 한다. 이런 시대적 대의를 읽는 세력연대가 형성되고 있는데도 당신들은 한나라당과 우리 사이에서 좌고우면할 것인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그럴때만 기계적 지역연대의 틀을 넘어서 새로운 세대연대, 문화연대, 철학연대가 가능해지고 민주당이나 중부권신당의 견인도 가능해질 것이다.
오른쪽에서의 전선을 이렇게 구축한다면 왼쪽에서의 전선도 분명히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의 정책연대는 가능하지만 선거연대는 불가능하다. 민주노동당은 87년 백기완대통령후보추대 이후 수많은 선거연대의 압박을 돌파하고 지금 원내정당의 진출에 성공했다. 극적인 상황(가령 대통령 결선투표제)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이들이 우리와 선거연대를 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해도 된다.
그렇다면 강정구교수의 발언이나 전교조좌파, 민주노총좌파의 행동같은 것에 대해서는 단연코 금을 그어야 한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좌파정당에 위임해야 한다.
끝으로 정책정당의 문제에 대해서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기간당원제를 갖고 논쟁을 벌이고 정체성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정책정당이 이 모든 것을 돌파할 수 있는 근간이다. 좋은 정책이 있어야 기간당원이 확보되어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 수 있다. 정체선 논란도 실체가 있는 것이 되려면 정책이 있어야 한다. 중앙당과 원내와 정책연구원을 정책중심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다음은 온라인 중심당이 되어야 한다. 최초로 디지털정당을 표방한 우리당이 디지털세계에서 밀리고 있는 이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당의 상당한 역량을 디지털로 전환해야 한다.
또 홍보중심 정당이 되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사무총장과 홍보총장 복수총장체제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홍보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현대정치전쟁의 핵심은 홍보다. 부시도 블레어도 홍보로 승리했다. 고이즈미도 정책과 홍보, 이미지로 승리했다.
이 글이 당의 여러 논쟁에서 참고자료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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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두의원실 02-788-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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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6일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