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농업은 상품이 아니다

지난 1995년 전면적인 무역자유화를 내걸고 UR/WTO체제가 출범한 이래 세계의 농업문제는 악화일로에 있다. 1996~2004년 동안 세계 곡물생산은 경지감소와 용수부족으로 약 19억톤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다. 단위 생산성 증가에도 불구하고 총생산량이 정체된 것은 기상이변과 더불어 세계 각처에서 중소농과 가족농이 강제로 퇴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인구의 12%에 달하는 8억명이 영양부족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UR/WTO체제 출범 이후에 기아인구가 더욱 증가하였다.

게다가 농산물 수출이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소수의 국가로 점점 더 집중되면서 농산물 수출국과 수입국의 양극화가 심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진국과 개도국을 막론하고 개별 국가에서는 소수의 대규모 기업농으로 집중화 현상이 발생하면서 다수의 중소 가족농이 급격히 몰락하는 양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어 왔다.

한국 역시 UR/WTO체제에 편입된 10년 동안 농가인구가 약 650만명에서 340만명으로 절반가량 줄어들고, 농가부채는 약 800만원에서 약 2,700만원으로 3배 이상 늘어나고, 식량자급률은 약 34%에서 25%로 떨어졌다. 정부는 농업구조조정을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농정을 통해 경쟁력이라는 미명하에 대다수 중소 가족농의 퇴출을 강요하면서 소규모 전업농에 대한 선별적인 지원과 육성에 집중해 왔다.

WTO 농업협상, 농업문제의 대안이 아니다

홍콩각료회의에 제출될 WTO 농업협상의 초안(Falconer Draft)은 결코 세계 농업문제의 대안이 될 수 없다. UR을 계승하여 농산물의 무역자유화를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기조가 잡혀 있는 WTO/DDA 농업협상은 기아와 빈곤을 확산시키고, 양극화를 확대시켜 농업문제를 더욱 더 악화시키는 주범이 될 것이다.

UN 식량농업기구(FAO)는 1999년 6월 식량정상회의를 통해 2025년까지 식량생산량이 75% 증가되어야 식량부족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게다가 잇따른 기상이변은 식량의 생산·공급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면서 식량위기의 가능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식량생산이 소수의 농산물 수출국과 대규모 기업농으로 집중이 강화되도록 만들고, 다수의 중소 가족농에 대해서는 탈농을 강요하는 현행 WTO 농업협상은 농업부문에서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동시에 사상최악의 식량위기를 현실화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난 12월 4일 LA타임즈에 보도된 온두라스의 농촌 실상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무역자유화에 따라 쌀시장을 개방한 지 15년만에 쌀농민이 1/12로 줄어들고, 생산량은 87%가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쌀값은 폭등하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한다. 극소수의 쌀수입상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들은 기아와 빈곤 그리고 실업문제가 더욱 악화되었다고 한다. WTO 농업협상은 온두라스의 이 상황을 전 세계로 확산시키는 첨병이 될 것이다.

농업은 상품이 아니다, WTO/DDA에서 농업을 제외해야

농업은 상품이 아니다. 농업은 식량주권, 환경보전, 양극화해소, 지역사회유지, 전통문화보존 등과 같은 다원적 기능을 갖고 있다. 이러한 다원적 기능은 상품 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공공적 가치를 담고 있으며, 소위 비교역적 관심사항(NTC)으로서 무역자유화를 통해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 가치들이다. 따라서 WTO/DDA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인정하고 무역자유화의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식량주권을 포함하여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내 소비용 농산물에 대해서는 개별 국가의 완전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반면 초국적 농업기업과 곡물메이저의 독과점적 무역횡포를 규제하기 위해 수출 농산물에 대한 국제적인 무역관리체제를 도입하고 무역왜곡의 주범인 덤핑수출에 대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

한국정부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에 집중해야

한국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농업분야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이중적 태도 때문에 스스로 자기 발목을 잡는 협상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비농업분야에서는 선진국의 입장을 관철시키는데 앞장서면서 농업분야에서 개도국 지위를 확보하겠다는 갈짓자 행보는 오히려 개도국 지위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정부는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중심으로 농산물 수입국 그룹과 개발도상국 그룹의 광범위한 공조를 구축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APEC 정상회담에서 WTO/DDA 관련 특별성명을 발표하는데 앞장서면서 미국 등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과 같은 태도는 국제사회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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