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춘천박물관 ‘석우 박민일 박사 기증문화재 특별전’ 개최

춘천--(뉴스와이어)--국립춘천박물관(관장 정종수)은 2006년 첫 특별전으로 3월 23일(목)부터 4월 16일(일)까지 ‘석우(石于) 박민일(朴敏一) 박사 기증문화재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아리랑 박사로 유명한 박민일 박사(전 강원대 국문학과 교수)께서 30여 년간 수집해 온 강원도 관련 역사 자료 및 문화재 113점을 박물관에 기증하신 높은 뜻을 기려 마련하였다.

전시품은 근세 이후 강원도의 역사자료가 대부분으로, 이 밖에 도내에서 제작되었던 도자기들과 놋기류, 동전 등이 있으며 강원도와 인연있는 인사들이 남긴 간찰, 글씨와 그림, 각종 문서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중에 일제강점기 이후 춘천, 강릉, 영월 등의 옛모습과 금강산, 그리고 문화재들을 살펴볼 수 있는 사진엽서는 기증자가 다른 것보다 애정을 갖고 수집한 것들이다.

이 기증문화재 중 소남(少南) 이희수의 그림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이 별로 없는 가운데 부채그림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된다. 또한 ‘사선(司膳)’명백자접시조각이나 양구 방산에서 생산되었으리라 여겨지는 백자와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자기들도 해당 시기의 공예기법과 기념품으로 도자기를 만들었던 유행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료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이 문화재들은 기증자께서 강원도의 역사자료만을 고집해서 모으신 것으로 이제는 내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보고 관련 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선뜻 국립춘천박물관에 기증하신 것이다. 여러 가지 어려운 가운데서 애써 모으신 문화재를 선뜻 기증해 주신 박민일 박사의 수집 열정과 강원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 국립춘천박물관은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문화재를 기증함으로써 우리 문화유산을 다같이 공유도기를 바라고 있다.

□ 석우 박민일 박사 기증문화재 특별전

개막식 : 2006년 3월 23일(목) 오후 3시
장 소 : 국립춘천박물관 기획전시실
기 간 : 2006년 3월 23일(목) - 4월 16일(일)
전시품 : 소남 이희수필 선면산수화 등 113점

□ 기증자 약력

박민일(朴敏一)
호(號) : 석우(石牛), 하성(夏星)
1937년 6월 1일 生

<학 력>

○ 춘천고등학교 <제27회, 1955>
○ 고려대 국문학과 <1959>
○ 고려대 대학원 국문학과 <1971> - 문학석사
○ 경희대 대학원 국문학과 <1989> - 문학박사

속칭 <아리랑 박사>

<경 력>

○ 강원일보 편집국 기자
○ 화촌중/춘여중/양구농고/춘천고 교사
○ 강원도 교육위원회 비서실
○ 춘천간호전문대학 교수
○ 국립 강원대 사대 국어교육과 교수 <1982~2002>
○ 춘천 MBC 방송자문 위원/ 시청자 위원/시청자 위원장 <1980~1998>
○ 강원대 초대 홍보부장 <1985>
○ 강원대 강원문화연구소장 <1986>
○ 강원대 박물관장 <1990>
○ 강원도 문화상(학술상) <1990>
○ 강원대 사대학장, 교육대학원장 <1995>
○ 춘천 KBS 시청자 위원 <2002>

<현 재>

○ 강원도 문화재 위원
○ 한민족 아리랑 연합회 고문
○ 춘천 분재회 회원-고문, 전 춘천 수석회장
○ 전 예맥 고미술회 회원/총무/부회장
○ 전 평통자문위원(제1기)

□ 주요 전시품

1. 엽서 : 영월 창절사(葉書 : 寧越 彰節祠)
1962년(年), 9.0×14.1

Postcard : Changjeolsa at Yeongwol, dated 1962

창절사(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7호)의 전신은 육신사(六臣祠)로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육신(死六臣)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1685년 강원감사(江原監司) 홍만종과 군수(郡守) 조이한의 발의로 노산묘 아래에 세웠는데, 노산묘가 장릉으로 추증된 후에 1705년 육신사를 장릉 밖으로 옮겨 지으면서 명칭을 창절사로 개칭하였다. 이후 생육신(生六臣) 중 김시습, 남효온, 박심문과 단종의 시신을 수습했던 엄흥도를 추가로 배향하였고, 1823년에 창절사를 ‘창절서원(彰節書院)’으로 개칭하였다.

엽서 사진 앞에서부터 서원의 문루(門樓)이 배견루(拜鵳樓), 창절서원이 있고 그 뒤쪽에 창절사의 지붕이 보인다. 배견루의 현판은 6.25 전쟁 때 없어져 사진에 없다. 사진 아래에 창절사의 유래를 설명한 글이 있고, 엽서 뒷면에 ‘검열, 62. 7. 4, 정희주’라고 적힌 도장이 찍혀 있다.

2. 선면산수화(扇面山水畵)

이희수(李喜秀 1836-1909), 19세기(世紀) 후반(後半), 종이에 먹(紙本水墨), 18.2×54.9
Landscapes, I Hui-soo(1836-1909), Ink on Paper, Late 19th century

이희수의 자(字)는 상옥(尙玉) 또는 지삼(芝三)이며 호(號)는 소남(少南)이다. 조광진(曺匡振1772-1840)에게 글씨를 배워 7세 때 능히 글을 여러 서체에 두루 뛰어났고 더불어 난과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렸다. 또한 이희수는 해강 김규진(海岡 金圭鎭 1868-1933)의 외숙이자 선생으로, 김규진이 7세부터 1885년 가을 청(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인 18세까지 김규진에게 서화(書畵)를 가르쳤다. 1916년 김규진은 「소남선생전예첩(少南先生篆隸帖)」과 「소남선생행초첩(少南先生行草帖)」을 간행하는데, 이 첩의 앞부분에 언급한 이희수에 대한 상술에 의하면, 이희수가 5세에 붓을 잡어 9세에 이름을 떨쳐 마치 왕희지(王羲之 307-365)와 우세남(虞世男 558-638)이 되살아난 듯하다고 하였으며, 당시 그의 글씨를 세상에 드문 보배[稀世之寶]로 여겨 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림은 19세기 주류를 이룬 화본풍(畵本風)의 남종화(南宗畵)이다. 우측 상단에 쓰인 제(題)의 끝에 ‘소남 사(少南 寫)’라는 묵서墨書)가 있어 이희수의 시임이 확인된다. 그림은 시상(詩想)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는 다음과 같다.

島外風煙古寺迴(도외풍연고사회) 섬으로 부는 바람에 연기 실려 옛 절을 돌아나가고
茅帆倂掛夕陽來(모범병괘석양래) 돗단배가 저녁 노을 비끼며 돌아오네
江天物色無人管(강천물색무인관) 세상은 한 색으로 물들고 인적없이 피리 소리만 들리는데
處處野棠花自開(처처야당화자개) 들에는 곳곳에 해당화가 피었다

3. 백자항아리(白磁大壺)

조선 후기(朝鮮後期), 높이(H) 34.1
Jar, Late Joseon period

17세기 이후 전체적으로 둥글고 큰 항아리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달처럼 둥글어 ‘달항아리’라고 부른다. 위와 아래 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였기 때문에 접합 부분이 드러나기도 하고 좌우의 형태가 비대칭을 이루어 완전한 원형이 아닌 풍만하고 여유로운 조형이 가지고 있다. 순백자로 아무 문양을 베풀지 않은 것도 있지만 청화나 철화로 운룡문(雲龍文)을 베풀어 왕실용으로 제작한 것도 있다.

이 백자항아리는 ‘달항아리’를 만드는 제작 기술이 떨어져 원형보다는 타원형에 가까운 모양이 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유약이 고르게 퍼져 있고 태토의 질도 비교적 좋은 편이라 할 수 있다. 즉 이 항아리는 광주 분원(分院)의 장인들이 제작한 것보다는 형태적으로 수준이 떨어졌지만, 지방 가마에도 비교적 수준급의 자기를 생산했음을 보여준다.



웹사이트: http://chuncheon.museum.go.kr

연락처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사 김동우 033-260-1524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실 전지영 033)260-1525 011-9490-0230 fax 260-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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