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희망사회당 성명-“법적 요건 갖춘 투표소 하나도 없었다”
중증장애인의 선거투표소에 대한 접근정도 조사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을 위한 편의증진법(2006년 1월 개정)’(이하 편의증진법)에 근거해 총 18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졌다. 조사대상은 부산지역 800여개 투표 예정 장소 중 무작위 추출된 78곳(약 10%)의 투표소였다. 조사방법은 모두 실사조사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번 조사는 부산지방선거장애인연대, 부산자립생활센터, 행동하는의사회 부산지부, 전국노동자회 부산위원회, 부산 사람연대 대학생위원회, 부산 국가인권위원회 등이 함께 진행했다. 이들은 조사에 들어가기 전 부산선관위로부터 ‘모든 투표소를 장애인 접근이 가능한 곳으로 선정했다’는 공식 입장을 들었다.
그러나 조사 결과, 법적 요건에 충족하는 투표소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78개 투표소 중에서 1층인 곳은 전체의 64%인 50개소에 불과했다. 1층 투표소라고 하더라도 전체의 88%가 계단이 있는 1층이라서,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의 이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 1층에 투표소를 설치해야 한다고 권고한 법의 취지를 무색케 했다.
계단 측면에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을 돕는 손잡이가 없는 경우도 59개소(88%)에 달했다. 계단 옆에 장애인의 이동을 돕는 경사로가 없는 투표소도 45개(67%)에 달했으며, 경사로 중에서 편의증진법의 요건(유효폭 1.2m 이상, 기울기 1/12, 혹은 1/8)에 적합한 경사로는 단 1개에 불과했다. 투표소 장소가 2층인 경우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이 설치된 곳도 2개소에 불과했다.
시각장애인이 투표소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유도블럭이 설치된 투표소도 13개소에 불과했으며,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출입문이 비좁은 투표소(법적 기준 너비 0.8m 이상)도 3개소 있었다. 전체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33개소에 출입문 문턱이 있어 ‘문턱이나 높이 차이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편의증진법을 역시 위반하고 있었다.
장애인을 위한 주차장이 설치된 투표소도 22개에 불과했고, 투표소 인근에 장애인전용 화장실이 없는 곳도 68개소에 달했다.
이밖에 여러 항목에서 부산시내 투표소 대부분이 적어도 한 가지 사항 이상, 편의증진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장애인선거연대는 “단 1곳이 장애인전용 화장실이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 법적 기준을 만족하고 있었다. 즉 엄밀히 말해 법적 기준을 만족하는 투표소는 없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 결과에 근거해볼 때, 선관위가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자 유권자인 장애인을 비롯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임산부의 투표권을 제도적으로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선관위가 장애인 유권자의 투표소 접근이 어려운 점을 감안해 주먹구구식으로 도입한 게, 장애인 유권자의 거소투표제도다. 장애인은 집에서 투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많은 제약사항 때문에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 정보접근이 부족한 장애인 유권자를 위한 홍보도 거의 없어 장애인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거소투표제도 도입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 장애인 400만 중에서 거소투표권자에 해당하는 장애인은 44만여 명에 불과하다.
또 거소투표를 할 의향이 있는 장애인도 통장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는 법적 한계 때문에 거소투표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2004년에 ‘통장의 도장 없이도 장애인의 거소투표가 유효함을 인정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관위에서는 여전히 통장의 도장을 요구하고 있어 법원 판결의 실효성도 없다.
무엇보다 거소투표제도가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지 않는 현실을 그냥 인정하는 것을 의미해, 장애인 당사자들로부터 거소투표제도에 대한 반발이 지속되고 있다.
선거 전반의 과정을 통해서 선관위는 장애인을 비롯해 거동이 불편한 노인, 임산부 등의 투표권을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다. 유권자 본인이 투표할 의사가 없어서 투표하지 않는 경우는 유권자의 선택의 몫이지만,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선택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가 성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원칙을 국가가 부정하고 있는 심각한 일이다.
비단 부산의 경우에만 문제가 많은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장애인이 투표권 보장을 요구할 때마다,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 선관위의 말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부산의 사례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부산 선관위가 설치한 투표소의 실태가 이러하다면, 중앙선관위 차원에서 전국의 투표소에 대한 엄격한 실사조사를 해야 할 필요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모든 투표소를 장애인 접근이 가능한 곳으로 선정했다’고 큰소리치던 부산 선관위는 조사 결과가 나온 즉시, 지적된 부분들을 시정하겠다고 했다. 말 바꾸기 식 행정이 또 문제가 됐다. 하지만 더 문제인 것은 투표소 장애인 편의시설에 대한 성의 있는 고민 없이, ‘모든 투표소를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곳으로 선정했다’고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 선관위의 태도다. 장애인 유권자의 당연한 권리를 보장할 의지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기에 더욱 분노하게 되는 것이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를 위한 편의증진법’에 명시된 내용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노력하고 있다’는 헛소리만 되풀이 한 선관위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를 비롯한 전체 유권자에 대해 공식 사과해야 한다. 더불어 부산 지역 이외의 모든 투표소에 대해, 부산시 장애인 당사자들이 실시한 것과 같은 투표소 실사조사를 실시하고 문제점을 당장 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번 5 31 지방선거도, 국가가 적어도 국민의 10%에 달하는 유권자들의 투표권을 제도적으로 박탈한 채 치렀다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 조사 결과를 접하는 우리 당은 선관위를 비롯한 정부 기관의 국민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장애인을 국민으로 인정하지도 않으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책 운운하는 태도는 분명 국민에 대한 기만이다.
우리 당은 부산시의 투표소 실사조사 결과를 접하며, 531 지방선거에서 장애인 참정권 실현의 목소리를 더 높여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다. 장애인도 사람이며 유권자라는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상식을 존중할 것을 선관위와 정부관료, 공무원들에게 똑똑히 인식시키는 선거운동을 벌여낼 것이다. 말뿐인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06년 5월 23일(화)
희망사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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