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가을이 깊어가는 11월 첫 주 박스오피스는 지난주 1위 <주홍글씨>가 한 계단 내려서고 그 자리를 개봉작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차지했다. 그 주제나 톤은 판이하지만, 멜러라는 공통점을 가진 동장르 영화 두 편이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한 것.

전통적으로 ‘멜로의 계절’로 불리는 가을,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과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는 사랑, 즉 순애보와 불륜이라는 양극단의 멜러 두 편이 2주차에 걸쳐 *170만명이 넘는 관객들을 불러 모은 셈이다. 가을 극장가는 ‘이루기 힘든 사랑’에 풍덩 빠졌다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 참고 : 11월 7일(일) 현재, 전국 누계 <주홍글씨> 111만명 / <내 머리 속의 지우개> 63만명

먼저 10월 28일 개봉해 2주차를 맞은 <주홍글씨>는 세 여자와 한 남자의 어긋난 사랑과 그 사랑의 대가를 그리는 스릴러풍 멜러. ‘불륜’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가질 수 없는 사랑을 탐내는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으로 인해 치르게 되는 사랑의 대가’를 그린 영화이다. 강렬한 영상과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로 평단과 네티즌들 사이에서 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며 논쟁이 불붙은 영화이다.

금기를 뛰어넘는 사랑 <주홍글씨>의 반대편에는 운명을 뛰어넘는 사랑을 그리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있다.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의 사랑을 그린 영화. 두 남녀의 절박한 사랑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정통 멜러이다. <주홍글씨>가 <정사>, <해피엔드>, <바람난 가족> 등 ‘불륜’을 소재로 하여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들의 계보를 잇는 한편,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편지>, <약속>, <선물>의 뒤를 잇는 정통 멜로라 할 수 있다. 2004년 가을을 휘감고 있는 두 멜로영화의 기운은 ‘이루기 힘든 사랑’, ‘죽음에까지 이를 수도 있는 드라마틱하고 힘든 사랑’으로 흐르고 있다.

<주홍글씨>가 사회에서 금기시 된 사랑에 대한 은밀한 욕망과 그 사랑의 대가를 강렬한 캐릭터와 이미지들로 담아냈다면,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신분의 차이와 불치병으로 인해 이루지 못할 가슴 아픈 사랑을 그리고 있다. 두 영화는 사뭇 달라 보이지만,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사랑의 환상’을 ‘영화라는 환상’을 통해 체험하고자 하는 관객들의 욕구를 반증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 위에 있다. 대중들은 사회적으로 위축된 때에는 특히 불륜이나 순애보처럼 ‘이루기 힘든 사랑’을 다룬 멜러에 호응했다. 이같은 양상은 97년 말~ 98년 IMF 직후 <편지>와 <약속>, <정사>나 <해피엔드> 등이 성공했던 것과도 동일한 맥락. 장기적인 경기침체, 고용률 저하 등 사회적 불안요인으로 인해 다시 사회 분위기가 위축되어 있는 2004년 가을, 11월 첫째 주 박스오피스의 풍경은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해 보인다.

두 영화처럼, 사실상 ‘불륜 멜로’와 ‘불치병 멜로’는 멜로의 기초 소재로서 수없이 변형되면서 재생산되어왔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인간 욕심과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주홍글씨>는 ‘불륜 멜러’의 컨벤션을 교묘하게 뒤집은 작가주의적인 웰메이드 영화라는 평을 받고 있다.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기존 최루멜로가 주로 불치병이나 신분차이로 인한 갈등을 소재로 삼은 데 비해 ‘정신적 죽음’, ‘기억의 상실’로 슬픔의 컨셉을 잡아 세련미를 더했다.

외화 중에서는 <주홍글씨>와 같은 날 개봉한 <이프 온리>가 안타까운 이별을 피할 수 없는 연인의 애절한 사랑을 그린 영화이다. 개봉 주 박스오피스 3위에 이어 2주차인 지난 주말 4위를 기록했다.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 채 자신의 연인을 눈앞에서 잃은 남자가, 다시 기적처럼 주어진 마지막 ‘하루’를 그녀와 함께 보내게 된다는 설정으로,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강조하고 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며 최고의 이슈작으로 떠오른 <주홍글씨>, 그리고 간만에 찾아온 정통멜로로 주목받고 있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그리고 외화 <이프 온리>까지 11월 극장가는 ‘이루기 힘든 사랑’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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