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스와이어)--1945년 8월 22일, 일제의 폭압에도 귀향의 꿈을 포기하지 못해 모진 목숨을 부지하여 마침내 귀국선에 올랐던 조선인 강제동원피해자들 5,000여명(일본에서 인정하는 사망자만 해도 524명), 그들이 이틀 후 알 수 없는 폭발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짜가운 바닷물에 휩쓸려간 날이다. 그리고 이날을 기념하여, 올해에도 어김없이 마이쯔루 만에서 이 희생자들을 위한 61번째 위령제가 거행이 될 예정이다.

동료들의 원혼을 지푸라기 삼아 죽음의 바다를 살아나와 모진 생을 이어왔던 생존자들, 그리고 희생자 유족 80명이 과오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법정에 서서 진상조사, 공식사죄, 배상을 촉구하던 12년 재판이 2004년 11월 30일 마지막 기각 판결을 받고 다시 한번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간 지도 1년이 되어간다. 일본정부는 “손해배상 청구권 시효가 지났고, 1965년 한일협정으로 원고의 청구권은 소멸했다.”고 주장했고, 일본의 법정은 피해자들에게 과감히 “안전수송 의무 없다.”며 기각을 최종선고했던 것이다.

한일협정에 따르면 우키시마마루 건은 협상내역에 포함이 되지 않았다. 정부는 한일협정 교섭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억류자, 원폭피해자와 함께 우키시마마루 희생자에 대해서는 일본과의 재협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재협상에 대한 정부의 움직임은 가시화되고 있지 않다. 일례로 외교통상부의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외교통상부의 태도는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기 전과 같이 “개인적으로 청구할 권리는 모두 막아놨으니, 노력해봤자 헛수고다.”라고 되새김질하던 모습에서 하등 진전이 없고, 그렇기에 우키시마마루 희생자에 대한 재협상도 소원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오늘 8월 23일, 우키시마마루 폭침사건 원고 대표인 전승렬 씨와, 이 재판을 제기하였던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 회장 이금주 씨는 오전 일찍 마이쯔루만에서 거행될 우키시마마루 폭침희생자를 위한 위령제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전승렬 원고대표의 일본행은 이번이 38번째이고, 이금주 회장의 일본행은 70여회가 넘어간다. 전승렬 원고대표는 지난 2004년 8월 24일 외교통상부 앞에서 거행하였던 제사의 제문에서 “아버님을 죽게 만든 전쟁광들을 재판정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게 만드는 그날까지 차라리 잠들지 마옵소서.”라고 하였다. 자국민을 돌같이 여기는 외교통상부 앞에서 유골 대신 밀가루를 뿌려가며 외쳤던 제문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묘소도 없이 밀가루를 뿌리며 제를 지내는 그의 목소리에 한국의 외교통상부의 가슴은 일말의 고동도 하지 않았던 듯 하다.

배가 폭침이 된 후 마이쯔루 만에 떠밀려온 시신은 말 그대로 “산더미 같았다.”라고 현지인들은 증언한다. 이들은 큰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거기에 모두 던져 넣은 다음 소이탄 두개를 사용하여 불사르고, 뼈를 분쇄하여 항아리에 나눠넣고 승선사망자 이름을 적어 우천사에 보관하게 되었다. 전승렬 원고는 우천사에서 아버지의 함자가 적힌 유골단지를 발견하고 호랑이 울 듯 울며 쓰러졌다고 한다. 평소 조용한 인품의 전승렬 원고가 그처럼 울었다면, 그의 심적 고통은 필설로는 차라리 표현하지 않는 편이 무례를 범하지 않는 것이 될 듯 하다.

현재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에서는 유골에 관련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 미사일 발사 후 돌변한 일본의 태도 때문에 잠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진상규명위의 역할수행은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전승렬 원고대표도 진상규명위로부터 “유골을 봉환받겠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2001년 1월 유골재판에서 "유골 가져가라는 허가(인탁)를 해준다."라는 판결을 받고 밝혔던 것처럼, 전승렬 원고대표는 “누구의 뼈인지도 모르는 것을 일본놈들의 사죄도 배상도, 진상조사도 없이 받아올 수 없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유골봉환에 대하여 강제동원진상규명시민연대의 유족들 또한, 개인적인 입장을 존중하되, 시민연대 전체의 입장은 전승렬 씨와 같은 방향으로 정리한 바 있다.

유골봉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진상규명위의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는 수고로운 작업에는 피해자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해방 후 61년, 우키시마마루가 폭침된 지 61년, 귀향을 꿈꾸며,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학수고대 하며 승선하였다가 일본의 짜가운 바닷물에 무참히 내동댕이쳐진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서러운 고통을 기억한다면, 마이쯔루만에 던져진 원고들의 슬픈 추모의 꽃을 기억하고, 우천사에서 아버지 함자가 적힌 유골단지를 들고 호랑이처럼 울부짖던 전승렬 원고대표의 눈물을 기억한다면, 일본정부의 폭침관련 진상조사가 분명히 이뤄져야 하고, 이에 뒤따르는 공식사죄와 배상을 통한 인권 회복, 그리고 한국정부의 재협상이 기어이 실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 때마침 원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정부의 “기뢰사고”라는 주장이 위증임을 증명하는 자료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된 이 시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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