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더 많이 알면 더 많이 용서하게 된다’ 라는 명언으로도 유명한 캐서린 대제는 표트르 1세인 피터 대제와 함께 러시아 황제 중에서 대제 칭호가 붙는 두 명의 황제 중 하나이다.

표트르 1세의 딸 엘리자베타 여왕은 통치 당시 후손이 없어 프로이센 출신의 카를 울리히를 황태자로 지명한다. 러시아 황실과 왕권의 안정을 꾀한 엘리자베타 여왕은 훗날 예카테리나 여제(캐서린 대제)가 되는 소피 프리데리케 오귀스트를 황태자비로 간택한다. 캐서린 대제는 남편보다 영리했고, 인격적으로도 많은 신망을 얻고 있어 모든 사람이 그녀의 유능한 정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 표트르 3세는 즉위 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외교적인 실수로 신의를 잃어 갔고 그에 대해 적의감을 표현하는 귀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762년 7월 러시아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쿠테타 군이 표트르 3세를 폐위시키고 그의 아내를 황제의 자리에 올렸다.

캐서린 대제는 표트르 1세의 러시아 개정을 이어나갔고, 지방에 중앙통제를 증가시켰다. 계몽사상에 경도된 캐서린 대제는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러시아 농민들을 위한 경제 개혁을 단행했으며, 대외 팽창정책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어 크리미아 반도까지 합병했다. 캐서린 대제는 러시아를 유럽, 특히 프랑스를 모델로 하여 개혁하려고 했다. 1773년, 가을 캐서린 대제는 프랑스 철학자 데니스 디드로를 초청했다. 캐서린 대제는 디드로에게 매일 두 시간씩 시간을 내주어 그로부터 강연을 들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시작과 함께 캐서린은 현저하게 보수적으로 변했고, 자신을 비판하는 정치 비평가들을 점점 적대했다. 또 1789년으로부터는 초기 통치의 자유로운 개정을 뒤엎기 시작했다. 이 반전 중의 주목할 만한 효과는 피터 대제와 마찬가지로 캐서린은 러시아에 있는 소작농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대제라는 칭호를 받은 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러시아 국토를 확장시킴과 더불어 문예부흥 시대를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캐서린은 열렬한 예술가들의 보호자였다. 그녀는 예르미짜쥬 박물관을 건설하고 학원, 저널, 도서관을 설립하고 볼테르와 디데롯을 포함하는 프랑스의 백과사전 편집자들과 서신을 교환했다.

그레고리 장군을 비롯해서 여러 명의 애인을 두었던 캐서린 대제에겐 늘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계몽주의에 영향을 받은 그녀는 황실 발레 학교를 세워 수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또, 외국의 유명한 예술가들을 러시아로 초청하고 프랑스의 시인 볼테르와도 특별한 우정을 나누었다. 캐서린 대제의 예술진흥 정책은 후일 푸쉬킨과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차이코프스키를 비롯한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배출시키는 주춧돌이 됐다.

이렇듯 동전의 양면처럼 이상과 현실 속에 고뇌하던 캐서린 대제는 여자로써 황제의 자리에 올라 대제의 칭호를 받은 그녀는 여걸임에 틀림없다. 러시아의 여걸 캐서린 대제를 중앙방송(대표 김문연) 케이블·위성(ch401)인 히스토리채널에서 만나보자. 방송은 18일(월) 오전 11시와 밤10시에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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