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한강 노들섬에 민간자본을 유치해 연면적 6-12만의 초대형 문화콤플렉스를 건립하기로 했다. 한강에 랜드 마크의 구실을 하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언제나 사람들이 인용하고 싶어하는 대도시의 대표적 상징물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파리의 에펠탑은 각각의 조형물들이 만들어지게 된 역사 속의 계기와 그 조형물들이 도시민들과 함께 빚어낸 이야기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랜드마크로 자리 잡게 된 것이지, 처음부터 랜드마크용으로 만들어진 조형물이 아니다.
울울창창한 600년 고도의 흔적을 곳곳에 아로새기고 있으며, 현란한 고층건물들 사이로 기암괴석이 솟은 산들을 품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 이 도시를 가로지는 저 풍성한 한강은 그 자체로 이 도시를 상징한다. 그 위에 억지스런 초대형 건물을 설립, 랜드마크로 삼아야 한다는 전·현직 서울시장의 대를 이은 강박증은 문화의 깊이를 가늠할 줄 모르는 촌스런 겉치레 근성이거나, 대형건축물을 통한 업적주의를 포장하기 위한 궁색한 변명일 뿐이다.
스스로를 뼈 속까지 녹색이 배어있는 사람이라며 핵심공약으로 세계 일류 환경도시 건설을 내세웠던 오세훈 후보, 한강의 생태환경 보존에 대한 위협을 이유로 환경단체들이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 건립계획을 반대하자, 이 사업의 재고를 소견으로 밝힌 바 있다. 그러던 그가 선거포스터 떼 낸 자국이 사라지기도 전에 후보시절 약속을 도가 지나치게 뒤집고 있다. 며칠 전 서울시가 발표한 계획은 이명박의 오페라하우스 보다 한 술 더 뜨는 문화의 탈을 쓴 대형 건설사업이다. 규모만으로도 논란이 되었던 오페라하우스 보다 4-8배이며, 용도에 있어서도 전시, 미술, 박물관, 실험극장, 오페라하우스, 연구 공간, 컨벤션센터 뿐 아니라 쇼핑센터나 호텔 등이 포함될 수도 있는 본격적 상업공간이다. 이 복잡한 상업시설들이 한강 한복판에 지어질 때 돌이킬 수 없는 환경오염이 자행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럼 이런 위험을 무릅쓰면서 이 공간이 수행하고자 하는 기능은 무엇일까? 부족한 문화공간의 확충? 시민들에게 문화의 휴식처 제공? 이미 예술의 전당을 비롯한 국공립 공연장에서도 돈 되는 상업적 뮤지컬들이 주된 장기 레파토리로 자리잡고 있고, 10만원 안팎을 호가하는 입장권은 이미 예사로운 일이 되었다. 더욱이 신자유주의적 운영체계를 요구하는 책임운영기관으로 변신한 국립극장은 재정자립도를 예술행정의 주요한 잣대로 삼으며, 그 안에서 공공성과 예술성, 다양성 등을 추구하는 것이 요원해진 상황이다. 국공립 공연장들이 이렇게 평범한 소시민들에게 점점 더 높은 담장을 쌓아가고 있는 중에 100% 민간자본을 들여 만드는 공연장이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는 명약관화하다. 투자된 민간자본 환수를 위해 완전한 상업공간으로 운명지워질 노들섬엔 시민 아닌 소수의 고객들만이 드나들 것이다.
문화부(2004)에 따르면 전국 463개 공연장중 111개가 서울에 있으며, 이 중 11개는 객석 1천석이 넘는 종합공연장이다. 300석 이상 중극장도 59개나 된다. 문제는 공연장의 지역 편차이다. 서초구는 객석 중극장 이상의 공연장이 5개 있으며 종로구, 중구에는 각각 8개, 11개의 공연장이 있으나, 금천구, 은평구, 성북구 등에는 전혀 없다. 굳이 공연장을 추가로 지어야 한다면 없는 지역에 중소규모로 짓는 것이 합당한 일이며, 보다 바람직한 일은 건물수를 늘이기보다 공연장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여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보다 폭넓은 관객들이 공연을 부담없이 관람하도록 하고, 예술집단들이 작품 창작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하며, 각각의 공연장이 수동적인 임대공간으로 머물지 않고 활기 있는 창작과 도전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전문기획인력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일 것이다.
국내최고의 공연장이라 자임하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도 금년에 개최한 오페라 기획공연의 횟수는 단 8회. 나머지는 날들은 대박 뮤지컬의 재공연으로 채워졌다. 넘쳐나는 임대공간, 부대사업 등으로 80% 이상의 재정자립도를 자랑하는 예술의 전당의 현실이 이러할진대 동양 최대의, 세계 최대의 극장을 하나 더 짓는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 사회의 예술 창작을 고무하거나, 일반 시민들의 문화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것과 직결되지는 않는다. 결국 한 나라, 한 사회의 문화적, 예술적 수준은 사람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문화에 대한 투자는 사람- 작품생산자와 관객들-에 대한 투자로 귀결되어야 한다. 문화는 정치인들의 업적과시를 위한 장식품이 아니며, 이 땅을 사는 사람들이 고루 섭취해야 할 정신의 양식임을 아는 상식적인 시장을 기대하는 일은 아직도 시기상조란 말인가?
2006년 10월 13일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의장 이용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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