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아시아를 뒤흔드는 한류. 불과 몇 년만에 중국 일본 베트남 몽고까지 한류 열풍에 휩싸여 한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문화코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와 주목받는 한류의 원류는 과연 어디서부터일까.

중국전문방송 중화TV가 11월 10일 낮 12시 밤10시 방영할 HD특집 다큐 ‘한류 1920-대륙의 조선키네마’는 한류의 원류를 1920년대 중국 대륙에서의 조선청년영화인 활동에서 찾고 있어 주목된다. 50분물.

일제식민통치가 강화되던 1920년대말 동양의 할리우드로 불리던 상하이로 건너간 전창근 정기탁 이경손 김염등 소위 ‘상하이파’로 불렸던 조선영화인들을 한류의 뿌리로 되살려내는 작업을 국내 방송사상 처음으로 조명해낸 것. 이들 ‘상하이파’의 존재는 한중수교 이전까지 한국영화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운규가 ‘아리랑’으로 조선에서 항일영화의 선봉적 역할을 했다면 ‘상하이파’는 바다 건너 중국 대륙에서 영화인 및 임시정부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항일운동을 주도해 나갔던 것이다.

한해 5편의 영화도 생산되지 못하던 조선에 비해 수입 450여편, 제작 50여편이라는 왕성한 영화제작이 이뤄지던 상하이에서 상하이파는 안중근의사의 의거를 다룬 최초의 항일영화 ‘애국혼’을 비롯, ‘화굴강도’ ‘삼웅탈미’ ‘상하이여 잘 있거라’등의 작품을 만들어낸다.

‘애국혼’은 중국배우가 출연, 한중합작의 첫 시도로 꼽히며 ‘화굴강도’는 중국활극영화의 원형이 됐다. ‘상하이여 잘 있거라’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 롼링위가 출연, 사회적 편견에 맞서 꿋꿋이 자아실현을 해 나가는 신여성의 이야기를 다뤄 화제를 모았다.

중국영화사 100년을 통틀어 유일하게 영화황제라는 칭호를 얻은 조선영화배우 김염 또한 상하이파의 주축. 북경영화박물관에 김염기념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중국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김염은 중국 최초로 할리우드식 신세대 스타의 개념을 민중들에게 심어준 배우다.

이번 다큐에선 상하이필름스튜디오, 중국영화박물관의 협조를 얻어 당시의 필름을 조명해 내 의의를 더하고 있다.

준수한 외모와 건강미, 지성미로 현대적 남성미를 대표하는 스타 김염은 중국최고의 여배우 친이와 결혼, ‘야초헌화’에선 서생과 건달의 경계를 넘나들고 ‘일건매’ ‘도화읍혈기’ ‘연애와 의무’ ‘대로’등의 작품을 통해 전성기를 구가했다.

김염은 ‘예술은 사회에 이바지해야 하고 항일투쟁에 힘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고 1983년 84세로 눈을 감기까지 영화뿐 아니라 조선인들의 교육활동 사회활동에도 남다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영화학자들 중엔 중국영화예술의 시작을 김염으로부터라고 보는 이도 있을 정도다. 김염을 처음 주인공으로 기용했던 감독 쑨유는 “김염은 다른 배우들에게선 찾을 수 없는 새로운 청년상을 지니고 있었다. 조선인으로서 세상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불만과 불안이 화면으로 표출돼 나오면서 김염만의 독특한 캐릭터가 만들어졌다”고 평가한다.

망명의 한을 필름에 담아냈던 일제시대 영화인들과 달리 21세기 한류는 상하이거리, 베이징 브라운관에 넘쳐나고 있다. 한편으론 한류의 일방적 진출로 중국내 한류에 대한 반감도 생겨나고 있는 지금은 한류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류가 일방적 진출이라고 보는 한국인들과 달리 중국은 쌍방 교류의 차원으로 한류를 받아들인다. 여기에 바로 한류의 위기도 존재한다고 인터뷰에 응한 이들은 지적하고 있다.

교류 관점에서 시장을 열고 질높은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성장 기반을 갖춰 나가는 것이 오늘의 중국콘텐츠 산업의 현주소라고 이 프로그램에선 강조한다. 상하이파가 개척자 정신으로 상하이에서 영화를 만들었듯이 초심으로 돌아가 한국영화가 세계공통의 근본적인 가치에 천착하는 것, 독자적 어법으로 이를 풀어나갈 때만이 한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있을 수 있다고 이 프로그램에선 강하게 주장한다.

웹사이트: http://www.chinatv1.com

연락처

중화TV 홍보담당 강인자 02-723~0975 / 017-560-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