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관련 경제개혁연대 논평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니, 이번 정부 개정안에는 순환출자 규제에 목소리를 높이던 공정위의 입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규제완화를 통한 재벌 투자 활성화’라는 미신을 쫒는 산자부·재경부의 입장만이 반영되고 말았다.
정부는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출총제의 조건없는 폐지안과 순환출자 규제 도입안의 양극단을 정책적으로 조율한 결과물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실제로 이번 개정안은 그동안 근근히 맥을 이어가고 있던 출총제에 대한 최종 사망선고이자 투자를 볼모로 한 재벌의 협박에 굴복한 노무현 정부의 항복문서에 다름 아니다.
출총제가 각종 예외인정과 적용제외 규정으로 인해 누더기가 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2005.4.1 기준으로 출총제를 적용받는 기업집단의 예외인정 및 적용제외 출자는 총 13.4조원으로 이는 전체 출자총액(22.0조원)의 61.0%를 차지한다. 또한 출총제 기업집단 소속 283개사 중 출총제 적용으로 인해 추가 출자가 불가능한 회사는 전체의 17.7%인 50개사에 불과하다.
즉 전체 출자액의 상당부분이 각종 예외적용으로 인해 규제대상에서 제외되고 있고, 동시에 대다수 계열사들이 출총제로 인한 출자여력의 부족에 직면해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정부안처럼 적용대상 기업집단 및 계열사 범위를 축소하고 출자한도를 상향조정하는 것은 출총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특히 다기한 예외인정 및 적용제외 조항의 축소 없이 출자한도를 순자산의 30-40%로 상향조정하는 것은 출총제의 골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런 허울뿐인 제도는, 규제의 실효성은 전혀 없이 정부정책의 신뢰성만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폐지하는 것만도 못하다.
재계가 투자침체를 빌미로 해서 출총제 폐지를 요구하고 있지만, 사실 재계의 의도는 계열사 출자를 통한 경영권 방어에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정부와 여당은 더 이상 투자 활성화라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지 말고, 차라리 재계가 원하는 대로 재벌총수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출총제를 폐지한다고 깨끗하게 인정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게 ‘줄 것은 다 주면서 욕은 욕대로 먹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이번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정권 말만 되면 도지는 재벌 눈치 보기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김대중 정부 말기에는 임원 선·해임, 정관변경, 합병 및 양수도 등 이른바 경영권 변동 관련 사안의 경우 내부지분율 30%까지 재벌 소속 금융계열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공정거래법을 개정하여 고객의 돈을 총수일가의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더니, 이제 노무현 정부는 출총제를 사실상 사문화시켜 경영권 방어와 승계의 길을 열어준 셈이다.
2002년 대선 캠페인 당시 ‘재벌을 개혁한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 바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재벌규제의 폐지를 통해 ‘재벌공화국의 완성을 추인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여기에 열린우리당의 일부 의원들은 이런 누더기 개정안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조건없는 출총제 폐지를 주장하며 재벌의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여당의 정체성 위기를 보여주는데 이보다 더 좋은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경제개혁연대는 정부 개정안에 반대하는 여야 국회의원들과 함께 ▲ 순환출자 규제 도입(신규 순환출자의 금지는 물론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일정 유예기간 내 해소 강제), ▲ 중핵기업 출총제의 도입과 다기한 예외규정의 축소, ▲ 공정위 계좌추적권의 상설화, ▲ 계열사 부당지원행위의 경쟁제한성 간주 등을 골자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때 제출하고 정부안의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웹사이트: http://www.ser.or.kr
연락처
경제개혁연대 담당 신희진 02-3472-5052
-
2006년 12월 13일 1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