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저서 “문화의 블루오션을 꿈꾸다”(2006) 에서 밝히고 있듯, 문화다양성의 논리에 대해 뚜렷한 신념을 가졌던 그가 불과 몇 달 사이, 마치 지난 모든 기억을 잊은 듯, FTA를 강행처리하는 경제관료들의 논리와 어휘를 그대로 차용하며, 문화를 철저히 산업적 도구로 만들어 버렸다.
김 장관은 이렇게 말을 연다. <세계는 국경 없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영토적 의미의 국경 외에는 국가 간의 장벽이 허물어져 가는 추세인 것이다. 교역도 예외가 아니다. 보호주의 무역은 갈수록 불가능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더라도 해당 국가의 발전에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이 시대적 현실이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18개국 중 호주, 캐나다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 아래 있는 작은 나라(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도미니카, 콰테말라 등) 들이다. 미국이 해온 FTA 체결은 정치적 속국들을 힘으로 압박하여, 경제적으로 확실한 속국들로 만든 과정이었다. 미국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일부 대자본만의 자유를 보장하는 불공정교역을 전세계에 확산시켰다. 그러나 그 결과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UN대학 세계 개발 경제연구소(UNU-WIDER)가 지난 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2%인구가 전 세계 자산의 50%를 점유하고 있다. 양극화의 세계적 확산이다. 미국이 독점적인 군사적 지위를 남용하여, 소수의 자본가들을 위한 자유무역의 물꼬를 확대하는 동안 미국의 중산층은 몰락의 길을 걸었고, 미국 경제는 급격한 무역수지 적자의 수렁에 빠졌다.
70년대 후반 이후 20년 동안 미국 내에서 최하위 계층의 소득은 하락한 반면, 최상위 계층의 소득은 42% 증가하였다. 세계화의 혜택을 최상위 계층이 독차지 한 셈이다. 결국 극소수 최상위층의 자산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나머지 전 세계 민중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상황이 “자유무역”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미국식 세계화의 현실이다.
김 장관은 또 한미FTA를 적극 활용해 시장을 넓히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무역장벽이 미국의 문화시장을 막고 있어서 우리가 FTA를 통해서 시장을 넓히려고 하는 건가? 우리는 단지 미국의 요구에 저항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국영화의 작품성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전 세계 영화시장의 85%를 점유하고 자국시장의 95%를 점유하는가? 그들은 중학생 정도 수준에 맞춰진 영화들을 공식에 맞춰 찍어내고, 자본력을 앞세운 배급과 마케팅으로 전 세계에 배포한다.
영화 산업기반이 약한 나라들을 이런 막강한 마케팅과 배급망을 바탕으로 하나씩 접수해 온 것이 미국 헐리우드 방식이다. 미국영화가 비교우위에 있는 부문은 자금력과 정치권 로비력일 뿐이다. 힘의 논리를 통한 약육강식의 정글에 문화를 내 던져 놓았다가는 그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될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문화다양성협약>이다. 문화가 교역의 대상이 아니고 교류의 대상이라는 것에 미국과 이스라엘을 뺀 전 세계가 동의했다. 김 장관은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시간과 정열이 남거든 이 두 이단아를 설득하는데 소비하길 바란다.
뉴욕영화제에 초대된 봉준호 감독에게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문답이 오간 후, 한 기자는 “당신이 할리우드에서 <살인의 추억>을 만들었으면 범인이 잡혀야 했고, <괴물>을 만들었으면 소녀가 살아야 했을 텐데, 이런 자유를 누리는 곳에서 왜 할리우드에 오겠냐”고 말해 작가주의가 존재할 수 없는 헐리우드의 현실을 비꼬기도 했다.
문화관광정책연구원의 보고서,<문화산업 대미 개방에 따른 영향분석연구>는 한미FTA가 인쇄를 제외한 모든 문화산업분야에서 대미무역수지를 심각하게 악화시킬 것임을 지적하였고,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가 한국산업연구원에 의뢰한 연구보고서 <한미FTA 관련 시청각서비스분야 개방의 영향분석>은 1,200억의 매출손실과 2,400여개의 일자리 감소를 예견한 바 있다. 정부 연구기관들이 한결같이 비관적인 결과를 예측하고 있고, 한국협상단 또한 한국의 이득을 예측하는 분야가 무역구제, 섬유 정도임을 시인하는 상황에서, 김 장관의 글은 마치 일제 때, 대동아전쟁 참여를 선동하는 친일지식인처럼 무책임하며 비굴하다.
문화부는 지난 10월20일 외교통상부에 '문화다양성 협약이 차기 임시국회에서 유효한 비준절차가 완료될 수 있도록 관련 절차를 진행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앞에서는 FTA로 도약하자고 선동하고, 뒤에서는 자국의 문화 보호를 원칙으로 삼는 다양성협약을 빨리 체결하자는 제스처를 취하는 문화부는 이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원칙 가운데 어떤 입장을 선택할 것인지 명확히 밝혀라.
국민들의 문화향유는 해를 거듭할수록 바닥으로 치닫는데, 문화산업의 세계시장 확대에만 눈을 돌리는 문화부는 정책 실패를 시인하고 국민들의 문화적 권리 확대를 기준으로 정책을 재정립하길 촉구한다.
2006년 12월 7일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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