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역사공통교재, 한일 교류의 역사-선사에서 현대까지’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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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
2007-03-25 11:21
서울--(뉴스와이어)--서울시립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는 한일공동역사교재인 『한일 교류의 역사』출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3월 26일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개최되는 이 심포지엄에는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교재 집필진 30여명을 비롯한 학계 관계자, 현직 교사 등이 양국의 이목을 집중시킨 한일역사공통교재의 출간 과정과 그 의미, 전망과 과제 등에 대해 발표와 토론을 벌인다.

지난 3월 1일 출간된『한일 교류의 역사』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 연구자들이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전 시대를 망라하여 공동 집필한 최초의 한일공동역사교재이다. 본 교재는 한국의 역사교과서연구회(회장 이존희)와 일본의 역사교육연구회(회장 가토 아키라 ·加藤章)에 속한 36명의 집필진이 10년간 16차례에 걸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함께 발표하고 토론한 결과물로 문화의 일방적 전파가 아닌 상호 교류를 강조하고, 일제 강점기의 역사를 개발과 수탈의 틀을 넘어서는 시각에서 서술하는 등 양국에서 논란이 될 만한 부분들을 담고 있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한국 언론뿐 아니라 아사히신문을 비롯한 도쿄신문, 쥬니치신문, 교토통신, 산케이신문, NHK 등의 일본 언론사도 참가 취재경쟁을 벌인다. 심포지엄 당일 13:30-14:30의 시간에 서울역사박물관 2층 시청각실에서 한일역사공통교재 개발에 참여한 한국과 일본의 핵심 집필진들이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집필자와 언론인 사이에 치열한 질의응답이 오갈 것으로 예상된다.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한일의 관계자들은 역사박물관에서 기획 전시중인 ‘흥선대원군과 운현궁 사람들’ 특별전도 관람하게 된다.


■ 일 시 : 2007.3.26 9:00-18:00
■ 장 소 : 서울역사박물관 강당
■ 주 최 : 서울시립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역사교과서연구회(한국),
역사교육연구회(일본)
■ 후 원 : 서울시립대학교, 동북아역사재단,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기자회견자료

* 일시 : 2007년 3월 26일 13:30-14:30
* 장소 : 서울역사박물관 2층 시청각실(위치는 심포지엄 안내장을 참조할 것)
* 會見者 : 한일역사공통교재 개발에 참여한 한국과 일본의 핵심 멤버 4-6명
* 회견 내용 : 아래와 같은 趣旨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고 質問에 대해 답한다.

1. 들어가는 말
그 동안 역사연구자와 역사교육자 사이에서 소문으로 떠돌던 『한일역사공통교재, 한일 교류의 역사-선사에서 현대까지』가 마침내 한국과 일본에서 2007년 3월 1일에 출간되었다. 한일 양국의 매스컴은 정부도 하기 어려운 작업을 민간인들이 훌륭하게 해냈다는 식으로 높이 평가하고, 주요 일간지의 사설에서도 공통교재의 출판과 활용이야말로 한일 양국의 歷史葛藤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賞讚하여,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온 우리로서는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이 책의 출간에 참여한 한일 양국의 역사연구자와 역사교육자가 서울시립대학교에 모여 서로 自國의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그 개선의 방향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 1997년 12월이었다. 첫 심포지엄을 마친 참가자들은 모처럼 나누기 시작한 ‘歷史對話’를 좀 더 생산적으로 확대·발전시키기 위해 이런 회의를 지속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그것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역사교과서연구회’(한국, 서울시립대학교)와 ‘역사교육연구회’(일본, 東京學藝大學)를 결성했다. 그리고 해마다 여름방학이면 일본측이 한국을 방문하고, 겨울방학이면 한국측이 일본을 방문하여 3박 4일 정도씩 집중적인 발표와 토론을 거듭했다. 그 과정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든가 원고 집필이 늦어지면 견해를 조정하거나 독려하기 위해 양쪽의 관계자가 수시로 상대방을 방문하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 10년의 작업 끝에 마침내 『한일역사공통교재』가 출간된 것이다.
한일 양국을 오가며 역사대화와 『한일역사공통교재』의 출간 작업을 주도한 우리로서는 10년 묵은 滯症이 뚫린 것 같이 시원한 감회를 느끼고 있다. 반면에, 앞으로 이 책을 둘러싸고 갖가지 論難이 제기될 것을 예상하면 가슴이 조리기도 한다. 이에 이 책을 만든 목적, 출간 과정, 집필 원칙, 내용과 특징, 성과와 효용, 과제와 전망 등을 나름대로 정리하여 제시함으로써 관심 있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그리고 그 裏面에 얽힌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앞으로 유사한 작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한다. 우리가 해온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쏟아내는 평가와 비판은 한일 양국의 ‘和解’와 ‘相生’을 위해 묵묵히 역사대화와 공통교재의 출간 작업을 추진해온 사람들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은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격조 높은 대화를 나누고 공동 작업을 추진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활동이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러분께서 우리가 추해온 이 작업의 본질적 意義를 이해하고 그 功過에 대해 忌憚 없는 비판과 조언을 해 주실 것을 仰望하는 바이다.

2. 왜 이 책을 만들었는가?
지금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그렇게 양호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정부 레벨의 관계는 서로 불신과 혐오가 팽배하여 정상회담조차 제대로 열지 못할 지경인 것처럼 보인다. 그 배경에는 일본의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문부과학성의 역사교과서 검정 등을 둘러싸고 惹起된 두 나라 사이의 역사갈등이 존재한다. 역사인식의 차이와 대립은 정부 레벨뿐만 아니라 쌍방의 국민 사이에서도 內燃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갈등만큼은 한일의 우호협력을 위해 盡力하는 사람 사이에서도 아직 해결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이렇게 대립의 수렁에 빠지게 된 기본적인 원인은 일본정부가 한국에 대한 침략과 지배에 대하여,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죄와 반성을 명확히 실천하지 않은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어정쩡한 태도가 역사교육에도 반영되고, 매스컴 등을 통해 증폭되어, 두 나라 사람들 사이에 서로 싫어하는 감정을 부채질한 것이다.
물론 역사갈등의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한국과 일본이 한일관계의 역사 전반에 대해 아주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2천여 년 동안 깊고 넓은 관계를 맺어왔다. 역사의 커다란 물줄기에서 보면, 그 관계는 세계 어느 나라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인간, 문화, 물자, 정보의 교류라고 할 수 있지만, 구체적 사안으로 들어가면 한일관계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침략과 저항, 전파와 수용, 개발과 수탈, 지배와 해방, 협력과 반발 등이 복잡하게 錯綜한 남다른 관계였다. 일본인은 이런 한일관계사의 다양한 성격에 대해 한국인과 아주 다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때로는 한국인의 역사관과 정면으로 충돌하여 서로 非難하고 罵倒하는 상황조차 빚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근대 天皇制 국민국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일본은 自國爲主의 韓日關係史觀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내셔널리즘을 고양시키는 수단으로서 철저히 교육했다. 그리하여 敗戰前의 일본인은 不知不識間에 皇國史觀的 韓日關係史觀에 물들었고, 敗戰後에도 이런 역사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이에 대항하는 성격의 韓日關係史觀을 가지고 있던 한국인과는 쉽게 歷史和解를 이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역사인식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반목과 알력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韓日關係史 전반에 대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며, 그 성과를 전파하고 교육함으로써 공통의 역사인식을 형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과 일본은 한일관계사 전반에 대해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역사대화를 나눠야 하는 것이다. 두 나라의 역사인식의 차이는 상호관계의 역사만큼이나 오래고 깊다. 우리는 그 차이를 조금이라도 좁힐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10여 년 동안 역사대화를 나눠왔고, 그 성과를 정리하여 이 책을 발행했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대화를 계속하다보면 한일관계사에 대한 상호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양국에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역사공통교재를 만들어 보급하면 두 나라의 역사인식의 차이는 어느 정도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이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우리의 작업과 성과가 빈약하고 초라한 것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한일역사공통교재』의 출간을 계기로 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역사갈등을 극복하고 和解와 相生의 길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3. 이 책은 어떤 과정을 거쳐 출간되었는가?
우리는 1997년 말부터 2005년 초까지 매년 겨울방학과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15회에 걸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심포지엄을 개최해 왔다. 그렇지만 이런 단계까지 이르는 데는 한국과 일본에서 이 모임을 선도해온 사람들의 선구적 노력이 토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과 일본이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렇지만 그 대화가 본격적으로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를 화제로 삼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였다. 거기에는 1982년에 발생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79년부터 1982년까지 한국의 政治地形과 한반도의 정세는 未曾有의 振幅으로 搖動쳤는데, 그 과정에서 한일관계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험악하고 불안했다. 두 나라 국민 사이의 역사인식도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랐다. 1982년 여름에 터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건’은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립을 극복해야 한다는 명제를 부각시켰다.
우리는 먼저 한국과 일본의 역사연구자ㆍ역사교육자와 손을 잡고 두 나라의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모임에 참가했다. 그 중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것은 1991년부터 1993년까지 활동한 ‘한일합동역사교과서연구회’였다. 이 모임에서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검토하고 토의했다. 그 당시에는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焦眉의 關心事였기 때문에 한국의 역사교과서는 아예 논의의 대상으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이 연구회는 활동 결과를 한 권의 단행본으로 발행함으로써 所任을 다 했다. 그런데 다행히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우리의 활동 전 과정을 녹화하여 1시간짜리 특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4차례나 방영함으로써 한일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다르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본 국민에게 일깨워주었다.
위의 작업에 참여했던 우리는 어렵게 마련된 한일 역사대화의 場을 2년여의 활동만으로 접는다는 것은 아까운 일이므로 그것을 계승하여 발전시키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1996년부터 일본측 멤버가 서울시립대학교에 연구교수로서 1년 동안 유학하게 된 것을 계기로 하여 우리는 매일 같이 역사대화와 공동작업의 추진에 대해 의논했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서울시립대학교와 일본에서는 동경학예대학을 거점으로 하여 정기적으로 합동 심포지엄을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심포지엄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우리는 두 나라의 역사교육과 역사교과서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단행본을 한 권씩 일본에서 上梓하여 好評을 받았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모두 15회나 개최한 ‘한일역사교과서심포지엄’의 경과는 다음과 같이 몇 단계로 나눠 볼 수 있다.
제1회 ; 출발점, 한일 공동작업의 중요성 공감
제1단계 ; 제2-5회, 自國史 교과서의 비판적 검토
제2단계 ; 제6-8회, 역사공통교재의 試案 작성 및 토론
제9회 전환점, 주요 論點의 추출과 협의
제3단계 ; 제10-12회, 분회별 역사공통교재의 작성 및 토론
제4단계 ; 제13회-15회, 역사공통교재의 윤독 및 수정
제2회부터 제5회까지는 한국과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읽고 비판하는 작업에 치중했다. 다른 사람들이 개최했던 종래의 유사한 심포지엄에서는 주로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논의의 대상이었는데, 우리는 한국의 역사교과서에 대해서도 과감히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었다. 한일 양국의 참가자가 각각 자국사 교과서에 상대국의 역사가 어떻게 쓰여 있는가를 검증하는 형식이었다. 우리는 이 작업을 통해 두 나라의 고등학교 교과서(한국사와 일본사)를 정독하게 되고, 한일관계의 역사가 두 나라의 역사교과서에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단계의 성과를 정리하여 양국은 각각 단행본을 간행했다.
제6회부터 8회까지는 한일 양측에서 한일관계사에 대해 같은 주제를 설정하고, 자국의 고등학생을 독자로 想定하면서 교재의 試案을 만들었다. 참가자 중에는 교과서를 집필한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처음부터 공통교재를 만드는 일은 곤란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같은 주제를 가지고 교재를 만든다면, 어떠한 차이가 발생할 것인가를 확인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공통의 역사인식을 추구하기 위해서도, 쌍방의 역사인식이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 작업을 통해 양국의 역사인식에는 두드러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재삼 확인함으로써, 앞으로 이 작업이 곤란할 것이라는 점을 실감했다. 반면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작업이 오히려 의미가 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작업의 결과는 일본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제9회 심포지엄에서는 제기된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안을 집중적으로 모색했다.
위와 같은 준비과정을 거쳐, 제10회부터는 공통교재의 원고를 쓰는 작업을 추진했다. 여기서부터는 여러 차례에 걸쳐 원고를 고쳐 써야 했다. 심포지엄이 열릴 때마다 완성된 원고를 재검토하는 회의를 계속했기 때문이다. 12회까지는 시대별로 6개 部會로 나누어 검토회의를 열고, 제13회 심포지엄부터는 시대가 서로 다른 집필자들이 원고를 상호 검토했다. 그리고 제15회 심포지엄에서는 전체의 원고를 검토함으로써 일단 완성을 보게 되었다.
그렇지만 책을 출판하기까지는 편집과 교정 등의 구체적인 작업이 山積하여, 양측에서 각각 2명의 편집위원을 선정하여 조정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정하고 보완할 것이 많이 서울시립대학교와 동경학예대학의 교수들은 2년여 동안 몇 차례나 따로 만나 의견을 조정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막바지에는 양국 출판사의 편집자가 참가한 가운데 徹夜作業을 벌이기도 했다. 그런 渦中에서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각 절의 집필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처음에는 각 절마다 집필자를 선정하여 원고를 썼지만, 분과회와 전체회에서 여러 차례 검토하고, 여러 사람이 수정하여 보완했기 때문에 집필자의 의도와는 상당히 다른 서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공통의 문장이 되도록 손을 댔기 때문에, 각 절 별로 집필자 이름을 명시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연하지만, 한국이라든가, 일본이라든가, ‘집필 담당자의 나라 이름’도 표시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명실공이 한일 양국이 공동작업을 통해 형성된 역사인식의 合一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공통역사교재인 것이다.
[한일역사공통교재]의 제작 작업은 상당히 힘들었다. 그 旅程은 한일 양국의 참가자가 서로 탐색하고, 오해하고, 비판하고, 모색하고, 격론하고, 이해하고, 존중하고, 합의하는 험난하고 지루한 오디세이였다, 양국에서 40여 명이 참가하여 衆口難防으로 쓰고 떠들고 고치고 다듬었으니 그것을 하나로 묶어내기가 어찌 힘들지 않았겠는가! 차라리 서너 명이 意氣投合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열성을 다하여 달라붙었더라면 작업은 훨씬 쉽게 빨리 끝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연구자와 교육자가 참가하는 것이 공통교재 작성의 취지에 부합된다는 생각에서 일부러 힘든 길을 택했다. 苦行은 스스로 택한 業報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2007년 3월 1일을 기해 양국에서 이 책이 동시에 출판되고 나니 목표를 달성했다는 보람과 自負로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해 두 나라가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갈등과 싸움만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대화와 합동작업을 통해 共感과 共助를 실현할 수 있다는 실례를 보여주었다. 가장 민감한 역사인식에서도 이런 성과를 거두었는데, 하물며 그보다 쉬운 다른 분야에서는 더 많은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는 우리 나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많이 노력했다고 자부하지만, 이 책이 과연 한일 양국민의 공감을 얻을 만한 공통교재가 되었는지 어떤지는 확실히 판단할 수 없다. 지금은 그저 독자 여러분의 평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4. 이 책은 어떻게 구성되었고, 어떤 원칙 아래 집필되었는가?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를 선사부터 현대까지 通史의 형식으로 저술한 것이다. 한일 양국의 관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동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한일관계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이 책의 구성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① 각 장의 시작 부분에는 그 장에 나오는 사건을 중심으로 한 연표를 실었다. 사실 관계를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연표와 본문의 날짜 표기는, 제1~8장은 음력을, 제9~12장은 양력을 사용했다.
② 각 장의 처음에 설정한 「이 시기의 한국」, 「이 시기의 일본」에서는 양국의 그 시기의 역사를 간략하게 서술했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 시기의 배경이 되는 상대국의 역사를 먼저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각 장이 취급하고 있는 양국의 역사를 알기 쉽게 기술했으므로, 여러분은 양국의 교류사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부터 먼저 읽어주기 바란다.
③ 본문은 크게 전근대사와 근현대사로 나누어 배치했다. 한국과 일본의 역사인식은 근현대사에서 현저하게 달라지지만, 근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전근대사를 배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가능하면 전근대사부터 읽는 게 좋을 것이다. 시대구분을 좀 더 세분화할 수 없었던 것은 한국과 일본의 그것이 서로 잘 調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④ 본문의 각 절은 한일교류사를 기술하였다. 여러분은 각 절을 통해 한국과 일본 여러 교류에 대해 충분히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상대국의 역사에서 잘 모르는 인물이나 사건이 많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것은 상호 이해를 위해서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이것도 역사인식의 차이라고 생각하면서, 꼼꼼히 살펴보기 바란다.
⑤ 본문에는 각 장별로 용어 해설을 두어 사람과 사건 등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여러분이 본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므로 참고하기 바란다.
⑥ 이 책 후반에는 부록으로 「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를 실었다. 여기에는 각 장과 절의 집필 의도, 강조하고 싶은 점, 새로운 시점의 모색 등을 기술했다. 여러분은 이 부분을 읽음으로써 우리가 왜 이런 장과 절을 설정하고 또 이런 내용을 기술했는가를 더욱 잘 이해하실 수 있을 것이다.
⑦ 마지막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로 된 참고문헌을 ‘학생용’과 ‘교사·일반 독자용’으로 나누어 실었다. ‘학생용’은 비교적 읽기 쉬운 入門書이고, ‘교원·일반 독자용’은 좀 더 전문적인 硏究書 등이다. 이 문헌들은 우리가 원고를 집필하고 토론할 때 참고한 문헌이기도 하다. 더욱 깊게 공부하고 싶은 독자들은 이 참고문헌을 이용하기 바란다.
⑧ 「독자 여러분에게」는 이 책의 편찬 의도와 그 경과 등을 간략히 기술했으므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우리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사용한 몇몇 용어에 대해서는 다음 표와 같이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에서 다르게 표기하기로 합의했다. 동일 사안에 대해 양국이 서로 다르게 호칭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관행화되었기 때문이다.

또 이 책에서는 그 나라의 어법상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서로 표현을 달리한 곳도 있다.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은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이 같은 내용과 문장으로 되어 있다.

5. 이 책은 주로 어떤 내용으로 꾸며졌는가?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우선 이 책의 목차를 소개하겠다. 목차만을 보더라도 이 책이 담고 있는 주요 내용이나 그 흐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행에 부쳐|6한국과 일본은 함께 나아가야 할 동반자
·이 책을 읽기 전에
·글 싣는 차례
제1장 선사시대의 문화와 교류
제2장 삼국·가야의 정치정세와 왜와의 교류
제1절 삼국·가야의 대립과 왜
제2절 사람의 이동과 문화교류
제3장 수·당의 등장과 동북아시아
제1절 백제·고구려의 멸망과 신라, 일본
제2절 신라·발해와 일본의 교류
제4장 10~12세기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와 고려·일본
제1절 동북아시아 세계의 재편성
제2절 10~12세기 고려와 일본의 관계
제5장 몽골제국의 성립과 고려·일본
제1절 몽골의 침략과 고려·일본
제2절 14세기 후반의 동북아시아 정세와 왜구
제6장 15·16세기 중화질서와 조선·일본 관계
제1절 명 중심의 국제질서와 조선·일본
제2절 조선과 일본의 교류
제7장 16세기 말 일본의 조선침략과 그 영향
제1절 전쟁의 경과와 조선의 대응
제2절 전쟁의 영향
제8장 통신사 외교의 전개
제1절 조선과 일본의 국교회복 과정
제2절 통신사 외교와 조일무역
제3절 통신사 외교의 변질과 붕괴
제9장 서양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대응
제1절 개항과 불평등조약의 체결
제2절 조·일 관계의 전개와 마찰
제3절 청일전쟁과 대한제국의 성립
제4절 러일전쟁과 통감정치
제5절 항일투쟁과 대한제국의 주권 상실
제10장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인의 민족독립운동
제1절 조선총독부의 무단통치
제2절 3·1독립운동과 문화통치
제3절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여러 갈래의 독립운동
제4절 일본인의 한국인식과 한국인의 일본인식
제5절 한국에 살았던 일본인과 일본에 살았던 한국인
제6절 일본의 만주침략과 한국사회의 동향
제7절 전시체제의 전개와 독립투쟁
제11장 패전·해방에서 한일국교 정상화까지
제1절 일본의 패전과 한반도의 해방
제2절 6·25전쟁과 일본
제3절 한일조약의 체결
제4절 일본의 한국인(한일조약 체결까지)
제12장 교류확대와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
제1절 교류의 확대와 그 명암
제2절 일본의 한국인(한일조약 체결 이후)
제3절 한일관계의 현황과 전망
·더 깊은 이해를 위하여
제1장 선사시대의 문화와 교류
제2장 삼국·가야의 정치정세와 왜와의 교류
제3장 수·당의 등장과 동북아시아
제4장 10~12세기 동북아시아 국제질서와 고려·일본
제5장 몽골제국의 성립과 고려·일본
제6장 15·16세기 중화질서와 조선·일본 관계
제7장 16세기 말 일본의 조선침략과 그 영향
제8장 통신사 외교의 전개
제9장 서양의 충격과 동아시아의 대응
제10장 일본 제국주의와 한국인의 민족독립운동
제11장 패전·해방에서 한일국교 정상화까지
제12장 교류확대와 새로운 한일관계의 발전
·참고문헌
·독자 여러분에게
·찾아보기

이 책은 모두 12章으로 구성되었는데, 제1-8장이 전근대이고, 제9-12장이 근현대이다. 節의 수나 서술의 분량은 근현대가 전근대보다 많아 전체적으로는 현대와 가까운 시대의 교류사를 자세하게 서술했다. 근현대사에서는 특히 침략과 저항, 동화와 차별, 개발과 수탈, 전파와 수용, 협력과 갈등, 경쟁과 발전 등을 균형 잡힌 시각에서 다각적으로 이해하도록 기술했다. 또 一國史觀에서 벗어나서 동아시아의 관점에서 한일관계사를 바라보도록 궁리했다. 중화제국을 상대화하여 파악하고, 한일 사이에서 인간의 왕래와 정착, 경제와 문화의 교류, 상호 이해와 연대 등의 사례를 부각시켰다.

6. 이 책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 책은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과 일본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쓴 역사교재이다. 그러므로 첫 번째 독자는 고등학생이나 그 또래의 젊은이이고, 가능하다면 중학생도 읽어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 책이 학교교육에서 부교재로 많이 채택되어 읽혀지기를 기대한다.
두 번째로는 고등학교와 중학교의 선생님, 나아가서 한일관계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시민 여러분을 독자로 想定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의 역사연구서나 보통의 역사개설서보다는 덜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민 여러분이 한일교류의 역사를 공부하는데 이 책을 텍스트로 사용하면 좋을 것이다.
다음에 이 책이 다른 책과 구별되는 특색을 몇 가지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과 일본의 역사연구자와 역사교육자가 공통의 역사인식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정부는 물론이고 시민레벨에서도 다양한 부분에서 역사인식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공통교재를 개발하는 작업을 하면서도 확인한 바이다. 우리는 양국의 역사인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전제로 하여, 공통의 인식의 확대를 추구했다. 따라서 내셔널리즘, 즉 자국사의 정통성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타협했다고 비판할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국과 일본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두 나라가 공통의 역사인식을 모색하다보면, 자국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새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적절한 교훈으로서 살린 결과 이 책과 같은 내용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여러분은 한일 양측의 참가자가 쉽게 타협함으로써 이 책이 만들어졌다는 식으로 섣불리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둘째, 이 책은 한일 양국의 연구자와 교육자가 교과서와 같은 형태를 빌어 한일교류의 역사에 대한 공통인식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역사에 대한 연구논문에서는 결코 합의할 수 없는 공통인식을 교재라는 형식을 통해 실현하고자 한 점이다. 다른 하나는 여기에 기술된 역사는 한국과 일본의 고등학생 수준에서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즉 양국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고등학생 수준의 교재로 만듦으로써 공통인식을 실현하도록 꾸민 것이다.
셋째, 이 책은 선사에서 현대까지의 한일교류의 역사를 모두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한일의 역사인식의 차이는 근대사, 특히 일본의 조선 침략과 지배에 관한 인식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지만 근대사는 오랜 역사가 쌓인 위에 존재하기 때문에 양국 사람의 역사인식은 근대사만 따로 떼어 존재할 수는 없다. 그 전제가 되는 전근대사, 그리고 그 결과가 되는 현대사의 인식과 겹쳐져서 근대사에 대한 인식은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공통의 역사인식을 모색한다면 전 시대를 대상으로 하지 않으면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즉 通時代的 파악이 필요한 것이다.
넷째, 한일교류의 역사를 通史의 형식으로 기술했다. 한국과 일본의 교류사는 항상 양호한 것만은 아니었다. 교류가 막히기도 하고, 소원해진 때도 있었다. 토픽을 주제로 삼아 한일관계의 역사를 썼다면 연구와 자료가 엉성한 시대를 제외하면 되기 때문에 훨씬 더 쉽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한일관계사의 全體像을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욕심을 내어 통사 형태의 교재를 만들었다.
다섯째, 이 책은 쌍방의 역사연구의 성과를 근거로 쓴 것이다. 한일교류의 역사를 구성하고자 할 때, 역사연구의 성과에 바탕을 두는 것은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역사교육과 역사연구는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으면서 발전하는 것이다. 이 책에 쓰여 있는 내용은 역사교재로서의 독자성을 생각하면서,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알아야 하는 기초적인 사실은 물론이고, 선진적인 연구 성과를 반영했다. 따라서 두 나라에서 공감할 수 있는 연구 성과가 나올 때마다 이 책은 새롭게 개정될 것이다.

7. 누가 이 책을 만들었는가?
1997년 12월, 한국과 일본의 대학 교수, 중학교·고등학교 교사, 대학원생 등이 양쪽에서 각각 20명 정도로 ‘한일역사교과서 심포지엄’이라는 연구회를 조직했다. 연구회를 지속시키기 위해 한국에서는 ‘역사교과서연구회’를, 일본에서는 ‘역사교육연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각각의 사무국은 한국의 서울시립대학교와 일본의 東京學藝大學에 설치했다.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는 6명의 교수가 있는데 선사부터 현대사까지 시대별로 전공자가 골고루 분포하기 때문에 통사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일반대학원의 국사학 전공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에 40여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교육대학 석사과정에도 현직 교사가 30여 명 적을 두고 있어서 중등학교 교육의 현황에 맞는 교재를 편찬하는 데 여러 가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동경학예대학도 사정은 우리와 비슷하다. 이 대학은 원래 교사양성의 국립대학이기 때문에 각 시대의 역사연구 또는 역사교육에 밝은 교수가 많은데다가, 우수한 교사를 쉽게 동원할 수 있어서 역사대화와 공통교재의 제작에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일 양국에서 각각 20여 명씩의 연구자와 교육자가 이 작업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두 대학이 갖고 있는 이와 같은 장점을 충분히 살린 덕택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양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두 대학과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 중에서 한일의 역사대화에 찬성하는 연구자와 교육자로 구성된 순수한 민간인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양쪽 모두 연구자와 교육자의 수는 반반씩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조직을 바탕으로 하여 1998년부터 매년 두 차례씩 ‘한일역사교과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우리의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특히 2001년 일본에서 중학교 ‘새 역사교과서’가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하는 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한일 양국의 역사 갈등을 극복하는 방안으로서 양국 정부가 후원하는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조직되어 3년간 활동했다. 이 위원회는 방대한 연구 성과를 생산하는 등 일정한 범위에서 큰 기여를 했지만, 국가를 배경으로 한 때문인지 역사인식의 공통에 도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차이를 부각시키고 끝난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 우리는 이 위원회의 활동을 염두에 두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민간’의 처지라는 장점을 충분히 살려 논의를 계속했다. 우리 모임에는 강령이나 규약 같은 것이 없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모임에 참가하고, 참가자 모두가 스스럼없이 의견을 개진하면서 회의를 진행시켜 왔다. 말 그대로 민간레벨의 교류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한일역사교과서 심포지엄’ 등을 개최하는 과정에서 두 대학 사이에 이루어진 교류에 대해 특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交遊를 바탕으로 하여 두 대학의 학생 교류가 시작되었다. 우리 대학 국사학과는 해마다 봄과 가을에 각각 3박 4일 일정으로 유적답사를 하는데, 동경학예대학의 학생과 교수가 이에 참가한 것이다. 유적답사는 평소에 잘 가지 않는 奧地를 도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인이 이에 참가한다는 것은 한국의 역사, 문화, 생활, 자연, 환경, 경제 등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두 나라의 교수와 학생이 함께 어울려 3박 4일 동안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밥을 먹으며, 같은 여관에서 잠을 자니 서로 친해지지 않을 수 없다. 또 저녁에는 세미나와 歌舞를 곁들이니 국적이나 민족의 구별은 별 의미가 없게 된다. 아사히신문은 두 대학의 이런 특별한 교류를 치재하여 특종으로 보도한 적도 있다.
우리는 이런 교류를 제도화하고 안정화하기 위해 두 대학 간에 정식으로 교류협정을 체결했다. 그리하여 매년 5명 정도의 학생을 교환학생으로 주고받게 되었다. 교수가 상대방의 학교에서 연구년을 보내기도 했다. 두 대학의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서로 유학한 것만도 30여 명에 이른다. 이런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프로젝트는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의 학과에서 50여 명이 참가하는 국제 심포지엄을 매년 어떻게 개최할 수 있었겠는가? 자료를 번역하여 제작하고, 발표와 토론을 통역하는 등의 실무적인 작업은 두 대학이 교류하는 과정에서 양성된 학생들이 맡아 주었다. 따라서 이 책을 만든 사람들에는 이름이 게재되어 있는 연구자와 교육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도운 두 대학의 학생들도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의 매스컴에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가 이 책의 출간을 기뻐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작업과 병행하여 두 대학 학생 사이의 교류와 친선이 확산되고 정착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시민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작업을 계승해갈 것이다. 풀뿌리 교류라는 것은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작업은 이처럼 望外의 소득을 가져온 것이니 어찌 마음 뿌듯하지 않겠는가?

8. 앞으로의 과제와 전망은 무엇인가?
우리는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마침내 이 책을 발간하게 되었다. 그 동안에 다른 그룹들이 특정 시대와 특정 주제를 다룬 몇 가지 역사공통교재를 출판했지만, 선사에서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른 통사는 이 책이 처음이다.
이 책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많은 특색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분야에서 완전히 공통된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토론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부분도 있다. 게다가 다루지 못한 중요한 주제도 있다. 따라서 이 책은 한국과 일본이 공통의 역사인식에 다다른 것을 보여주는 완결판이라기보다는 거기에 다가가려는 試驗本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또한 우리 모임에 참가한 사람의 역사인식이 양국의 역사인식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민간의 연구자와 교육자일 뿐이지 국가를 대표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의 과정에서는 한국인의 역사인식과 일본인의 역사인식이 충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물론이고, 서술의 방향과 형태에도 반영되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이 충분히 만족할 만한 공통의 역사인식을 이룩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우리의 작업에 10년이 걸렸지만, 아직도 부족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의 성과를 기초로 하여 한국과 일본이 역사인식에서 공통의 지평을 더욱 넓혀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 책이 그것을 위한 제1보가 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우리에게 이 책의 후속 작업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묻는다면, 먼저 이 책의 내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資料集을 발간하고 싶다고 대답하겠다. 이 책이 제시한 주요 事案에 관해 양국의 역사자료(史料, 사진, 지도 등)를 공통으로 편찬하여 제시하면 독자들은 훨씬 더 생생하게 韓日關係史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적지 않은 기금과 정력 및 시간이 필요하다.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을 仰望하는 바이다.

以上의 내용을 중심으로 質疑 應答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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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장 정재정 교수(010-5667-9850, 2210-2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