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채널,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 특집 방송

서울--(뉴스와이어)--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 이후, 일반적 기대와는 달리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그 시작은 일본 측의 역사 교과서 왜곡과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선언한 망언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지난해에는 동해의 해저 지명과 해양 조사 문제로 양국이 충돌 위기까지 직면했고, 북한의 핵 실험과 육자회담의 지연으로 두 나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한국과 일본. 이 뿌리 깊은 갈등의 진원지는 어디에 있을까. 또 그 갈등의 해법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그런 면에서 양국 사이에서 ‘조선통신사’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양국은 조선통신사를 통해 외교 문제를 해결했고, 물자와 문화를 교류했으며, 그 결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올해는 <조선통신사 400주년>이 되는 해다. 중앙방송(대표 김문연) 케이블·위성TV 역사전문 히스토리채널의 ‘역사특강, 숨은그림찾기’는 이를 기념하여 <조선통신사 400주년 기념특강>(3회)을 기획했다.

본 프로그램은 30일(월)부터 3주간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 방송되며, 강의는 ‘조선통신사, 일본과 通하다’ 등의 저서를 낸 손승철 교수(강원대 사학과)가 맡았다.

30일(월)에 방송되는 제1강 ‘믿음을 통하게 하라’편은 조선통신사의 탄생과 그 배경이 된 왜구 문제를 다루었다.

고려 말, 해안지방은 물론 내륙 깊숙이 침투했던 왜구의 약탈은 1392년에 조선이 건국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그리하여 조선과 일본은 왜구 문제를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틀 안에서 해결하고자 했고, 비슷한 시기에 양국이 중국의 책봉 체제에 편입되면서 조선통신사와 일본국왕사가 왕래하기 시작했다. 양국은 이들을 통해 왜구 문제를 해결하고 교린 관계를 성립시키면서 공존의 시대를 열어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조선통신사는 믿음으로 통하는 통신(通信)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5월 7일(월)에 방송하는 제2강 ‘저팬타운과 임진왜란’을 얘기한다.

1426년 삼포제도가 정비되면서 일본인들은 한반도 동남해안의 세 포구(염포, 부산포, 제포)에 입항했다. 그들은 각종 명목으로 삼포에 기거하며 ‘저팬타운’을 형성했다.

이들 삼포 왜인들은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왜인의 입항과 무역, 상경로와 방법, 체류 기간 동안의 생활, 국왕의 알현, 이들이 지닌 무역품 등을 각종 자료와 사진, 고지도를 통해 알아본다.

하지만 1592년, 조선통신사와 삼포에 의한 200년간의 한일 우호교린이 임진왜란에 의해 깨졌다. 이것은 일본이 무로마치 막부의 외교 노선을 계승하지 않고 배신한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통신사를 조공사로 취급했다. 1592년 4월 13일, 부산 동래성을 함락한 일본군은 과거의 상경로를 통해 20일 만에 한양을 입성하고, 한 달 뒤에는 평양을 점령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승리도 개전 초기 2달간이었고, 이후 7년간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7년간의 전쟁은 조선인에게 지울 수 없는 전쟁의 상혼을 남겼다. 전쟁 중에 당한 연인들의 수난을 그린 ‘삼강행실도’와 양국의 각종 기록들은 지금도 그 참혹함에 치를 떨게 한다.

5월 14일(월)에 방송하는 ‘400년 전의 한류’는 임진왜란 후 이루어진 국교 재개 등을 통한 ‘조선시대의 한류’를 본다.

전쟁이 끝난 후, 1607년 강화사에 의해 국교가 재개되었지만, 조선은 이 강화사를 <통신사>라고 하지 않고 <회답겸쇄환사>라고 했다. 아직 일본과 믿음을 통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 <회답겸쇄환사>에 의해 전쟁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평화를 개막했다. <조선통신사 400주년>은 이 <회답겸쇄환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통신사라는 명칭은 1636년부터 부활되었다.

통신사의 규모는 평균 400명에 이르고, 장군의 습직을 축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들은 한양에서 출발하여 부산, 대마도, 후쿠오카, 오사카를 육로와 배를 통해 거쳐 도쿄에 도착했다. 이 여정은 보통 1년 반이 걸렸다. 이 조선통신사에 관해서는 수많은 기행문과 그림을 통해 그들이 무엇을 했고 누구를 만났으며 심지어 무엇을 먹었는지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일본을 방문하는 조선통신사 행렬은 이국적인 모습으로 일본인들을 매료시켰다. 통신사 행렬에 얼이 빠져 있는 일본인의 모습에서 한국의 한류는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인 바로 얼룩진 한일 관계사 속의 숨은 그림이다.

조선후기 200년간이나 지속된 평화는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동요하기 시작했고 1868년 메이지유신에 의해 위기를 맞았다. 일본이 조선과의 대등한 교린관계를 무시하고 1872년에 부산에 있던 왜관을 무력으로 점령한 것이다. 조선 전기 200년간의 <통신(通信)>이 히데요시의 배신에 의해 깨진 것처럼, 조선 후기 200년간의 <통신(通信)>이 메이지 정부의 배신에 의해 깨졌다. 이 후 양국은 또 다시 침략과 피 침략의 관계를 되풀이 했고, 아직도 청산하지 못하는 쓰라린 역사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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