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TV 12부작 다큐멘터리 ‘저우언라이’ 방영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항상 제2인자의 위치에만 머물렀지만 최고 권력자보다 더 유명하고 더욱 존경을 받았던 저우언라이.
중국전문방송 중화TV는 중국인민의 마음 속 영원한 총리 저우언라이의 생애를 조명한 12부작 다큐멘터리 '저우언라이'(CCTV제작)를 5월 9일부터 매주 수요일 오전 9시, 오후 6시 방영한다.
항일전, 국공내전과 중국통일 뒤의 전과정에서 정치·외교·행정·군사·경제·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빼어난 지도력을 발휘한 신중국의 실질적인 건설자였던 저우언라이. 신중국 성립으로부터 총리재직 26년 3개월, 준의회의로부터 41년 동안 부동의 제2인자로 우뚝 서 있었던 저우언라이의 생애를 항일운동 시기부터 프랑스 유학시절, 국공합작, 대장정, 신중국 성립, 대약진운동, 문혁, 중미수교, 1976년 병으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조명한 다큐멘터리다.
저우언라이만큼 치열하게 인민을 사랑한 지도자가 있을까. 중국민이라면 누구나 이말에 수긍할 것이다.
저우언라이는 1973년엔 72일간을 병상에서 보냈다. 병상에서도 비서들을 불러 집무를 매일 했다. 퇴원 후에도 하루 평균 16-18시간씩 일하면서 병이 깃든 자신의 몸을 혹사했다. 그는 걱정하는 측근들에게 "나처럼 역사의 무대에 내던져진 인간의 몸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란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주총리의 임종의 말은 "자네들(의료관계자)은 내가 있는 곳에서는 이제 할 일이 없다. 다른 동지가 있는 곳으로 가서 빨리 도와주시오"였다고 한다.
중난하이 서북편에'시화팅(西花廳)'이란 곳이 있다. 신중국 성립 후 이곳은 개국 총리의 공관이었다. 1949년 가을 이곳에 이사 온 저우언라이는 매일의 일정을 탁상용 달력에 기록하는 습관을 지켜왔다. 그의 탁상용 달력은 26권이나 된다. 직원들은 저우언라이 달력의 1976년 1월 8일자를 펼쳐놓았다. 개국 총리가 생의 마지막 날까지 쉼 없이 달려 왔기 때문이다.
'격려의 천재'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자애로왔던 저우언라이의 격려는 중국인민들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고 문혁4인방의 쇠락을 앞당겼던 제1차 천안문 사건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혁명가 저우언라이는 신중국 성립 후 가장 절박한 국가적 난제였던 경제발전의 밑그림을 착실하게 추진시켰고 이는 이후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정책으로 결실을 보게 된다. 1950년부터 시작된 경제회복사업에서 저우언라이는 농업을 가장 중요한 위치에 뒀다. 그는 최초로 농업을 기초로 공업이 농업을 이끌게 한다는 경제건설 방안을 제시했다. 1952년까지 3년간 경제회복 시기 저우언라이가 작성한 초안과 문서는 현재까지 2천여 개 남아 있다.
저우언라이는 1차 5개년 계획을 직접 작성했다. 거의 모든 숫자를 확인하고 모든 비율을 다시 계산, 검토했다 한다. 만약 수치에서 실수가 나오면 인내심 있게 관련자들이 다시 계산하기까지 기다려 주었다. 총 4년에 걸친 작업이었고 여러 번 대대적으로 수정됐다.
1956년 초 일부에서는 '공업화 조기 실현'를 제시했지만 저우언라이는 바로 이를 저지하며 지도자는 언제나 냉정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기간동안 완성됐던 156개 핵심 산업은 신중국 공업화의 든든한 기초가 되었다.
강인함과 부드러움, 치열함과 냉정성을 함께 겸비했던 저우언라이의 생애는 동서고금을 초월한 지도자의 덕목을 그대로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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