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민족단합대회가 곡절을 겪은 책임은 남측에 있다”
조영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학술위원장(경남대 명예교수)은 21일 인터넷신문 <참말로>에 기고한 ‘6.15 민족단합대회는 어떻게 성사되었는가’ 제하의 글에서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은 남측위원회의 구조적 문제이며, 그것은 2기 출범을 준비하면서 제기됐던 문제의 연장으로 집행위 간부들의 전단, 전결이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갈 수 있는 개연성이 내재적으로 존재했다는 점”이라며 “상임대표는 이런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정확한 정보 제공을 바탕으로 대표자회의체에서 민주적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냈어야 했으며 대회 중 비상대표자회의에서는 이와 관련해 항의가 빗발처럼 이어졌다”고 밝혔다.
조 위원장은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의 구조적 문제와 관련해 “6.15 남측위는 2기 출범을 위한 총회준비위에서 ‘남측위 파행적 운영의 걸림돌이 집행 실세의 전단, 자의, 전결, 전횡에 있다’고 지적되고 집행위 개혁과 인사 쇄신 등이 요청됐으나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1기 구조를 그대로 연장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며 “비록 우여곡절 끝에 대회가 성사되었지만 백 대표 스스로 천명했듯이 평양에서 제기된 6.15 남측위의 모든 문제는 향후 남측위 단합과 공동행사의 원활한 속행을 위해 백 대표가 책임지고 극복해야 할 과제로 부하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 위원장은 민족단합대회와 관련한 언론 보도 행태에 대해 “대회 기간 중 제도권 언론이 보여준 6.15 민족단합대회의 파탄, 무산, 실패, 더 나아가 6.15를 매도하는 역사적 오보와 곡필아세는 낡은 냉전 특권의 맹목적 관성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여실히 표출하였다”며 “이는 실로 탈냉전 민족화해 6.15 통일시대에 심히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했다.
조 위원장은 “백낙청 상임대표의 절망적 좌절적 대회 무산 선언 발표장에서 남측 대표단의 충격과 분노에 어린 항의와, 결정적 타결 방안을 제시하고 호소하는 장면을 특종 사진으로 대서특필한 언론이 사진 설명에서 ‘6.15공동선언 7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남측 대표단 일행이 민족단합대회가 무산되자 북측에 항의하고 있다’라고 왜곡 보도한 이 기막힌 언론 흥행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조 위원장은 6.15 민족단합대회 성사 의의에 대해 “통일운동의 의지와 축적이 있는 한 6.15가 반 6.15에 뒤집어질 수 없다는 역사적 증명과 확신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라며 “ 6.15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북해외 모든 대표의 절절한 민족애와 통일염원이 결국 하나가 되어 민족단합대회를 성사시켰다는 것이 6.15 공동선언의 거연한 표상으로 확인되었다”고 평가했다.
조 위원장은 “남측대표단은 15일과 16일 양일간에 걸쳐 자발적으로 비상대표자회의를 소집, 대회 성사를 위한 활로를 모색했다”며 “대표단은 대회 성사의 절박한 심정으로 부문과 지역, 그리고 원로모임에서 밤을 꼬박 새면서까지 토론에 토론을 거쳐 지혜를 모아, 대안을 제시해 대회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지루한 공방이 오가는 피를 말리는 긴긴 시간 대회장을 지킨 대표단과 평양시민들의 6.15 성사의 의지가 이번 대회를 성사시키는 지탱력으로 작용했다”며 “점심을 굶어가며 아무런 기약도 없는 대회를 위해 묵묵히 대회장을 지켜 대회를 성사시킨 이들의 인내와 부동의 자세에 민족적 사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조영건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학술위원장의 <참말로> 21일자 특별기고문은 다음과 같다.
6.15 민족단합대회는 어떻게 성사되었는가
[6.15민족통일대축전 특집 1] 조영건 6.15남측위 학술위원장 특별기고
남북해외 각계 대표들과 인사들은 6.15 공동선언 7돌을 기념해 6월14일~17일 평양에서 개최한 6.15민족통일대축전에서 민족단합대회를 열어 민족대단합선언을 채택했다. 민족단합대회 성사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난관을 겪기도 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온 겨레의 염원에 따라 6.15 공동선언 실천의 굳은 결의를 다졌다. 대회 참가자들은 일부 언론이 6.15 대축전의 이런 성과를 공정하게 보도하지 않고 민족단합대회와 관련한 사실을 왜곡 보도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참말로>는 6.15민족통일대축전의 진실한 이해를 돕기 위해 대회 참가자들의 증언 등을 특집으로 마련한다. 조영건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학술위원장의 특별기고를 싣는다. 「편집자」
1. 결정적 위기국면과 돌파
2007년 6월 15일 오전 10시 평양 인민문화궁전.
남측대표 300명, 북측대표 300명, 해외대표 150명, 평양시민 2500명이 민족단합대회를 열기 위해 운집해 있었다.
1시간 가량 아무 소식 없이 대기상태가 이어지더니 11시 전후 6.15남측위 집행부가 나타나 남측대표단의 퇴장을 요청하는 광고가 있었다.
이에 따라 남측대표단이 복도로 이동해 모이자 백낙청 남측위 상임대표가 집행 실무단을 대동하고 나타나 “민족단합대회는 무산되었다. 변수는 있을 수 있다. 이후 일정은 점심을 먹고 논의하자”라고 발표했다.
남측대표들이 이에 격렬히 항의하며 질문을 하자 실무단에서 황급히 차단, 종결하고 퇴장했다.
필자는 현장에서 다음과 같이 사태 해결을 위한 긴급 제안을 했다.
“기념행사를 성사시킬 수 있는 돌파구를 제의하겠다. 기념행사가 가능할 수 있다. 한나라당 의원 문제, 즉 주석단 문제는 부차적이고 보조적 문제이다. 방법은 이렇다. 주석단에 남, 북, 해외 공동의장 4인만 올리면 된다.
6.15공동선언실천 남북해외 민족공동위원회 최고의결기구는 4인공동위원장회의다. 매번 위기국면에서 이 최고 단위에서 풀어갔다. 이 기구가 주석단 성원과 자격이다. 소위 주석단에 앉히는 여타 인사는 가변적이고 심지어 집행부 자의에 의해서 결정된다. 한나라당 의원을 포함하여 여타 인사 대표는 이 위기상황에서 다 내려도 된다. 이로서 문제가 간단하게 해결된다.
6.15남측위원회 규약은 조직의 결정을 전적으로 상임대표 1인에게 위임하기로 되어 있다. 6.15남측위 대표자회의도 있고 상설기구인 운영위원회도 있다. 그러나 남측 규약은 일반 민주주의원칙, 다수결의 결정은 배제하고 있다. 대표자회의는 사실상 자문 보조기구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대표자회의 결의가 있다 하더라도 상임대표의 자의와 전단이 모든 것을 최종 결정한다.
백낙청 상임대표가 대회 무산을 선언하는 것은 6.15선언 7주년 민족통일대축전을 위해 평양에 온 대표단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다. 대회를 성사시키지 못하는 것은 역사적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며 민족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같은 제안이 대표단 절대다수의 적극적 지지와 동의로 이어지자 남측 실무단 역시 이 제안에 거부가 없었고, 남측 백낙청 상임대표와 북측 안경호 위원장 회동에서 4인 공동대표 주석단 구성이 제시되었던 것으로 이후 보고되었다.
북측에서는 ‘4인 공동대표에 연설자 3인 공동성명 발표자 3인, 사회자 1인을 추가하는 11인 주석단’을 수정제의했다. 결국 16일 오후 8시경 11인 수정안으로 타결해 대회 성사를 결정하게 된다. 이후 백낙청 상임대표가 대표자회의를 소집해서 공포하기에 이른다.
2. 평양 6.15 민족단합대회 갈등과 지연의 배경
가. 정세와 당국의 문제
2.13 합의 동시 이행에 있어 선차적 문제인 비디에이 자금 해결을 미국이 신속하게 진행하지 않고 원만히 진행되던 남북관계에 ‘속도 조절론’으로 압력을 가함으로써 남측 정부가 대북 쌀 차관 제공을 지연, 21차 남북장관급회담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됐다.
이번 6.15민족통일대축전에 당국 대표가 불참하기로 하고 민간행사로 됨으로써 6.15민족공동위의 임무와 책임이 더욱 막중하게 되었다. 미국의 간섭으로 답보상태에 있는 남북 당국을 견인하고 6.15정세를 발전시켜야 하는 막중한 역사적 책임이 민간대회에 부여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남갈등, 그리고 남측 내부의 반 6.15책동에 대처하는 남측위원회의 기조와 대책이 매우 이완된 모습을 보였다.
먼저, 6.15 남측위 위상과 역할에 문제가 노출되었다.
남측위원회는 조직 위상을 실천적 책무보다는 소위 조정기구, 자주통일진영에 대한 과도한 견제, 행사관리 기구로 왜곡, 축소되었다는 비판에 봉착했다.
6.15 남측위는 2기 출범을 위한 총회준비위에서 남측위 파행적 운영의 걸림돌이 집행 실세의 전단, 자의, 전결, 전횡에 있다고 지적되고 집행위 개혁과 인사 쇄신 등이 요청됐으나 이를 반영하지 못하고 1기 구조를 그대로 연장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상임대표 인선은 당시 백낙청 대표의 노고와 신망을 고려, 별도의 추대 없이 추인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이번 평양 6.15민족통일대축전에서 개인적 조직적 신뢰와 기대가 크게 혼란되었다.
백낙청 상임대표는 평양에서 대회가 성사되지 못하면이라는 단서를 달며 대회 차질과 무산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까지 공언한 바 있다.
비록 우여곡절 끝에 대회가 성사되었지만 백 대표 스스로 천명했듯이 평양에서 제기된 6.15 남측위의 모든 문제는 향후 남측위 단합과 공동행사의 원활한 속행을 위해 백 대표가 책임지고 극복해야 할 과제로 부하되고 있다.
나. 이번 사태 발생의 원인과 전개
한나라당 의원 주석단 배치를 둘러싼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은 다음과 같다.
북측은 이번 행사에 한나라당 의원이 참가하는 문제는 실무 조율과정에서 몇 차례나 거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남측위원회는 한나라당 차원의 참여가 아닌 개인 자격을 부여해 결국 한나라당 의원 참가를 관철시켰다고 한다.
또한 개막식과 환영만찬에서의 주석단 배치도 남측위 집행부에서 요구하고 북측에서는 이를 수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대축전의 핵심인 본행사 민족단합대회에서 발생했다. 남측 집행위는 끝까지 한나라당 의원을 주석단에 올리기 위해 정치인 2인으로 하여 배치했으며 북측도 이를 수용, 행사 시작까지 갔다고 알려졌다.
아무튼 문제가 발생하기 전, 남측위는 그 동안의 경험을 살려 예상되는 사태와 불협화음에 철저히 대비하지 못하고, 문제 발생 소지를 안고 간 책임 소재와 비난에서 자유롭기 어렵게 되었다.
또한 한나라당 의원 역시 민족의 이익보다 당리당략과 개인의 입신을 위한 정략을 우선하는 고질적인 정치관행을 보여줌으로써 6.15에 장애를 준 정치적 책임을 빗겨갈 수 없다.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은 남측위원회의 구조적 문제이다.
그것은 2기 출범을 준비하면서 제기됐던 문제의 연장으로 집행위 간부들의 전단, 전결이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갈 수 있는 개연성이 내재적으로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상임대표는 이런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정확한 정보 제공을 바탕으로 대표자회의체에서 민주적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냈어야 했으며 대회중 비상대표자회의에서는 이와 관련해 빗발처럼 항의로 이어졌다.
3. 6.15민족통일대축전 성사의 노력과 동력
6.15를 실천하고자 하는 통일원로인사 등 남측대표단의 노력과 북과 해외대표단, 그리고 꼬박 이틀 동안 대회장에서 기다리며 대회 성사를 염원했던 평양 시민의 인내와 의지를 크게 평가할 수 있다.
남측대표단은 15일과 16일 양일간에 걸쳐 자발적으로 비상대표자회의를 소집, 대회 성사를 위한 활로를 모색했다. 대표단은 대회 성사의 절박한 심정으로 부문과 지역, 그리고 원로모임에서 밤을 꼬박 새면서까지 토론에 토론을 거쳐 지혜를 모아, 대안을 제시해 대회 성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여기서 남측 지도부는 대표자회의 성립과 적법성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지만 그 회의는 적법 절차와 합리적 논의 과정을 충족시켜 결론을 내왔으며, 대표단들의 강력한 의지는 결과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루한 공방이 오가는 피를 말리는 긴긴 시간 대회장을 지킨 대표단과 평양시민들의 6.15 성사의 의지가 이번 대회를 성사시키는 지탱력으로 작용했다. 점심을 굶어가며 아무런 기약도 없는 대회를 위해 묵묵히 대회장을 지켜 대회를 성사시킨 이들의 인내와 부동의 자세에 민족적 사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듯 남북해외 대표단과 평양 시민들의 6.15 의지와 의연한 인내에 의해 우여곡절의 난관을 극복하고 17일 10시 평양 태권도전당에서 6.15민족통일대축전 민족단합대회를 열어 민족대단합선언을 채택하게 됐다. 이로써 6.15 평양 기념대회는 성공되었고 민족대단합의 빛나는 금자탑을 또다시 올리게 되었다.
후기
통일운동의 의지와 축적이 있는 한 6.15가 반 6.15에 뒤집어질 수 없다는 역사적 증명과 확신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6.15 7주년 평양 민족대단합대회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가. 6.15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북해외 모든 대표의 절절한 민족애와 통일염원이 결국 하나가 되어 민족단합대회를 성사시켰다는 것이 6.15 공동선언의 거연한 표상으로 확인되었다.
나. 명예대표 지관 총무원장을 비롯한 통일원로, 민족원로들의 헌신성과 의연함, 그리고 대승적 처신이 민족의 사표가 되어 민족대단합의 항로를 도왔다.
다. 이번 대회 기간 중 제도권 언론이 보여준 6.15대회 파탄, 무산, 실패, 더 나아가 6.15를 매도하는 역사적 오보와 곡필아세는 낡은 냉전 특권의 맹목적 관성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여실히 표출하였으며, 이는 실로 탈냉전 민족화해 6.15통일시대에 심히 개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백낙청 상임대표의 절망적 좌절적 대회 무산 선언 발표장에서 남측 대표단의 충격과 분노에 어린 항의와, 결정적 타결 방안을 제시하고 호소하는 장면을 특종 사진으로 대서특필한 언론이 사진 설명에서 “6.15공동선언 7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남측 대표단 일행이 민족단합대회가 무산되자 북측에 항의하고 있다”라고 왜곡 보도한 이 기막힌 언론 흥행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실로 착잡한 심경을 안고 6.15 실천 의지를 다시 가다듬으며 극히 초보적인 보고만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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