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쇠고기의 예
“성급한 결정이다”(61.9%). “수입재개해야 한다”(25.8%)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에 관해 어제(30일) 발표된 국민 여론조사이다. CBS가 리얼미터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60% 이상이 미국의 ‘실수’라는 ‘해명’만 듣고 수입을 재개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답변을 했다. 국민의 60% 이상은 정부의 이런 막무가내식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통령은 한미 FTA 협상이 끝나기만 하면 비준 동의 전까지 직접 토론에 나서서 국민을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덕수 총리는 정기국회 초반에 한미 FTA의 비준동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그야말로 며칠 남지도 않았는데 그 사이에 토론을 하겠다는 말인가? 아니면 이제 총리는 대통령의 뜻마저 제멋대로 묵살하는 것인가?
왜 진실을 밝히는 토론이 필요한지 쇠고기의 예를 우선 살펴보자.
정부의 말과 행동은 이렇다.
1) 쇠고기 수입 문제는 한미 FTA와 관계없다. 단지 통상현안일 뿐, 4대 선결조건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2) (MBC 피디 수첩이 ‘대외경제위원회’ 문건을 공개하자) “4대 선결조건이란 용어가 존재했음을 인정한다”(대통령)
3) 수입 재개 후 다시 광우병이 발생하자 새로 위생검역조건을 협의하여 ‘30개월 미만의 뼈없는 쇠고기’를 수입하기로 결정했다.
4) 수입 쇠고기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자 전량 반송했으나, 이후 한미 FTA가 진행되면서 뼛조각이 발견된 상자만 반송하기로 후퇴했다.
5) 민주노동당 강기갑의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무려 188회의 검역조건 위반이 발생했지만 정부는 대부분 공개하지 않았다.
6) 한미 FTA 타결 막바지 대통령은 부시와의 통화에서 “적절한 시기에 합리적 수준에서 개방하겠다”고 약속했다.
7) 광우병 위험물질인 등뼈가 발견되자 수입 중지가 아니라, ‘법에도 존재하지 않는’ 검역 중지 조치를 취했다가 한달 만에 바로 검역중단조치를 해제했다.
앞으로 예상되는 정부의 말과 행동은 이렇다.
1) 국제수역사무국의 결정(미국은 광우병 통제국가)이 대통령이 말한 ‘적절한 시기’이며 쇠고기의 완전 수입개방이 ‘합리적 수준’이다.
2) 위생검역조건을 개정해서 쇠고기의 완전한 수입개방을 결정한다.
3) 이러한 결정은 한미 FTA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과연 그러한가? ‘30개월 미만의 뼈없는 쇠고기 수입’은 한미 FTA 협상 착수의 선결조건이 아닌가? 이제 미국 농무부 장관의 말마따나 한미 FTA를 미국 의회에서 비준받기 위해서 정부는 쇠고기의 완전한 수입개방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하자면 ‘뼈 있는 쇠고기’의 수입은 한미 FTA 비준의 선결조건이 된 것이 아닌가? 국제수역사무국의 결정이 강제사항인가? 훗날 인간 광우병이 발생하면 누가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10여년 후 그 환자의 발병 원인이 미국산 쇠고기라는 걸 증명하는 건 불가능 할텐데 그 입증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국민의 의문은 꼬리를 잇는다. 우리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이런 문제에 대한 해명도 없이 비준을 강행할 작정인가? 미국의 압력에 계속 떠밀려, 위험하기 그지없는 쇠고기 수입 정책을 이렇듯 무리하게 채택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국민이 알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다.
2. 또 국민이 알고 싶은 것들
쇠고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한미 FTA가 아니라면 약값을 천정부지로 올리는 제도, 예컨대 특허-허가연계, 자료독점권 강화, 특허지연보상, 재심위원회 설치 등의 제도를 정부가 스스로 만들었을까? 괜히 저작권을 20년 연장해서 미국에 돈을 갖다 바치는 정책을 스스로 채택했을까? 모든 분야에 부지기수의 의문이 생긴다.
정부는 한미 FTA가 가져 올 이익이 크기 때문에 이런 위험과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연 정부 말대로 수출이 급증할까? KIEP의 계산(생산성 1.2% 증가라는 2차 충격)은 학계에서 인정받을 만한 것일까? 미국에서 생산된 일본차가 160만원 이상 싸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우리 자동차 시장은 안전할까? 기껏 50만원을 내릴 수 있는 한국 차가 미국에서 무려 10배 이상 더 많이 팔린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과연 한미 FTA로 한국경제는 선진경제가 되는 것일까? 미국 제도를 그대로 받아 들여 의약품 특허를 강화하면, 대통령 말대로 우리 제약회사가 갑자기 혁신 신약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환골탈태될까? 한국회사와 미국회사를 비교하면 매출액으로 1/100, R&D 투자로 1/160에 불과한데 과연 갑자기 혁신신약을 만들어서 세계 시장에서 당당하게 미국회사와 어깨를 겨눌 수 있을까? 저작권을 20년으로 늘리면 세계적인 문화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투자자국가제소권을 도입하면 외국인 투자가 급증할까? 이런 것이 과연 미래에 대한 도전이고 진취적인 태도일까? 아니면 그야말로 ‘무모한 도전’일까?
나아가서 철도, 전기, 수도, 개스, 우편, 그리고 의료, 교육 등 공공서비스는 안전할까? 이미 정부가 발표한 ‘물 산업 육성 대책’은 물 민영화를 예고하고 있는데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아닐까? 정부의 자발적 개방과 한미 FTA가 만나면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닥치는 것은 아닐까? 정부가 국회에서 비준동의를 얻으려면 이런 숱한 의문들에 대한 해명을 먼저 해야 한다.
3. 어떠한 형식이라도 좋다
대통령은 “협상이 끝나면 모든 정보를 공개하고 반대하는 이들과 무릎을 맞대고 밤을 새워서라도 토론하겠다”고 했다. 이제 협상은 끝났다. 그러나 우리는 무릎을 맞대기는커녕 얼굴조차 본 적이 없다.
천호선 대변인은 28일 기자와의 문답에서 그 동안 토론을 하지 않은 것은 공식적인 요청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 않다. 2007년 2월 민주노동당 심상정의원은 ‘한미 FTA 끝장 토론’을 요구했고, 3월 22일 문성현 대표는 ‘대면토론’을 제안했다. 4월 24일에는 범국본이 ‘끝장 토론’을 하자고 했으며 6월 19일에는 금속노조가 ‘공개토론’을 요청한 바 있다.
다만 정부가 협상 중에는 영향을 미치니 안되고(윤승용), 체결 전까지는 안 된다(천호선)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었을 뿐이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이제 비준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청와대의 주장대로 국회의 비준과정에 그 결과를 반영하려면 지금 당장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다음의 의제가 반영되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고 생방송으로 중계된다면 우리는 ‘밤을 새는’ 어떠한 형식의 토론에도 찬성한다.
1) 한미 FTA 협상은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했는가?
2) 과연 정부의 준비는 얼마나 잘 돼 있었고 분야별로 뚜렷한 전략이 있었는가?
3) 협상과정에서 우리의 전략은 얼마나 관철됐는가?
4) 한미 FTA의 효과는 객관적으로 어떠하고 그 결과 우리 경제와 사회는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
5) 과연 정부는 충분한 대책을 세웠는가?
한미 FTA 체결 지원위원회는 그동안 홍보비로만 73억원을 썼고 국정홍보처는 한미 FTA 광고에 38억원을 지출했으니 무려 1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다. 그에 비하면 민주노동당이나 범국본은 무일푼이나 다름없다. 농민들이 나락을 모아 만든 광고까지 사실상 방송불가 조치를 취할 정도로 두려워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대통령이 토론에 나선다면 유능한 수십만의 공무원, 11대 국책연구원의 수백명 박사가 모두 동원될 것이다. 반면 반대쪽은 그야말로 한줌의 사람들 밖에 없다. 무엇이 두려운가?
"청와대는 쟁점이 정리되면 어떤 수위에서건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과 합리적인 토론이 보장되는 한 토론할 용의를 갖고 있다"고 했다(천호선). ‘합리적인 토론’에 대한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이다. 다만 4대 선결조건처럼 분명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조건 거짓말로 일관해온 정부가 스스로를 점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또한 한미 FTA에 대한 반대가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단말마라거나, 낡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고루한 생각이라든가,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라는, 대통령의 편협한 선입견(8월 28일 모두 발언)이야말로 ‘합리적인 토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대통령이 원래의 솔직담백한 성품으로 돌아간다면 우리 모두 허심탄회하게 진실을 밝히는 토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한 약속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민주노동당 한미FTA저지 사업본부 본부장 정태인
- 31일(금) 오전10시 국회 정론관
- 정태인 한미FTA 저지 사업본부장등 참석
웹사이트: http://www.kdl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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