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장신대 ‘제2의 창설자’ 고인애 초대교장 추모예식 거행

완주--(뉴스와이어)--한일장신대학교(총장 정장복 鄭長福) ‘제2의 창설자’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대학발전을 위해 헌신하다 8월 28일 별세한 故 고인애(본명: Cora Wayland) 초대교장 추모예식이 9월 3일 대학내 황기주기념채플에서 거행됐다.

이 예식에는 이사장 이석권 목사(순천성북교회), 한일장신대 전 학장 강택현 목사(현 기전대학 학장), 총동문회 김재수 목사(원양교회), 여성동문회장 김한희 전도사(신일교회)를 비롯한 동문들과 교직원, 재학생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과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정장복 총장 부부는 상주로서 조문객들을 맞았다.

조문객들의 헌화에 이어 진행된 이 예식은 정장복 총장이 집례하고 김한희 여성동문회장이 기도, 강택현 전 학장이 설교, 이석권 이사장이 축도했다.

정총장은 “고인은 우리대학의 창립자라 할 수 있는 분이며 한일의 어머니, 신앙의 어머니로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존경을 받아왔다”며 고인에 대해 소개한 후 예식을 진행했다.

김한희 여성동문회장은 “세상의 모든 명예를 다 버리고 한국과 한일을 사랑하며 혼신을 다하여 전력질주하던 모습이 기억난다”며 “선생님의 뜻을 이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며 세상을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실 것을 믿는다”고 기도했다.

고인과 가장 절친했던 동료이기도 한 전 학장 강택현 목사는 ‘위의 것을 찾으라’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고인은 학교의 신앙적인 근본정신을 실제적으로 본을 보여주신 분”이라며 “학교의 근본정신은 고인애의 성경정신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라고 회고했다. 또 강목사는 “고인은 늘 위의 것을 바라보며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노력했다”며 “처녀로서의 일생 전부를 한일에 바치고 본국에 돌아갔을 때에도 그리고 마지막까지 일생을 대학발전을 위해 기도하고 모금활동을 했던 분”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학교가 폐교의 위기에 있을 때 고인이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해갔는지 자세히 설명했으며, 이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이어 당시 제자이기도 했던 황인복 교수(한일장신대 신학부)가 차분한 음성으로 추모사를 읽어나갔다. 황교수는 “선생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사실에 아쉬움과 섭섭함을 금할 수 없다”며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성경적 가치관과 삶의 양식은 학생들에게 무언의 힘있는 교육으로써 한일이 말씀위에 서있도록 만드는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특히 황교수는 “어려운 재정으로 폐교의 위기를 맞을 때마다 쉬지않고 기도하고 모금하신 열정과 헌신은 눈물겨운 것이었다”며 “한일을 위한 선생님의 기도와 헌신은 한일의 역사를 만들어왔고 그 역사속에서 길이 기억될 것”이라고 말할 때에는 목이 메인 듯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하기도 했다.

예식이 끝난 후 정장복 총장의 부인인 김준희 여사는 자리에 일어나 가족의 대표로서 고인을 추모했다. 김여사는 “고인은 선교사로서 한국인들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 선교사들의 주거지에서 벗어나 자칫 위험할 수도 있었던 한국인들의 거주지에 들어가 생활했던 분”이라며 “여러분께서도 자기 활동현장에서 봉사·헌신하는 것이 이 분의 얼을 받드는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한일여자신학교의 교장으로서 늘 기도하고 절약하던 사람이었다”면서 “자나깨나 늘 기도하고 1불을 모금할 때에도 편지를 받는 사람이 감동받아 모금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편지쓰고 또 기도하던 그 모습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이어 “지난 6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고인께서 아직도 한일을 많이 사랑하고 자신에게 쓰고 남은 돈이 있다면 한일에 쓰라고 말씀하셔서 마지막까지 학교를 생각하는 분이라는 생각 때문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었다”고 말하고, “틀림없이 천국에 가셔서도 기도하고 계실 분”이라며 “특별히 관심이 많았던 여성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돼 학교가 더욱 발돋움하기를 바라실 것”이라고 말하자 좌중은 울음바다로 변했다.

늘 검약을 강조하던 고인의 뜻을 받들어 이날 예식은 검소하게 치러졌으며 조의금을 받지 않았으나, 일부 조문객이 반강압적으로 놓고간 조의금은 고인애 흉상 제작을 위한 제작에 사용하기로 했다.

한일장신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헌신과 봉사의 상징으로서 흉상을 제작해 10월 30일 제막식을 갖고, 고결한 정신을 살리기 위해 명예신학박사학위를 수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명예신학박사학위는 수여할 수 없게 됐으나 흉상 제막식은 예정대로 진행할 계획이며, 9월 15일 미국에 조문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故 고인애 박사는 지난 8월 28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데이빗슨시에 있는 은퇴자 안식처에서 향년 87세에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1920년 9월 19일 중국에서 선교사로 파송된 부모로부터 태어난 고인애 교장은 1954년 10월부터 1980년까지 한국에서 미국장로교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퀸스칼리지를 졸업후 뉴욕의 비브리컬신학교를 거쳐 1965년 콜롬비아신학교에서 기독교교육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1972년 조지아주립대학교에서 교육학박사학위를 매우 우수한 성적으로 취득했다.

1960년 한일장신대 설립기관인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학교를 폐교하려고 했을 때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기꺼이 학교를 맡았다. 그는 광주이일성경학교와 전주한예정성서신학원이 합병된 한일여자신학교 초대교장으로서 1961년부터 74년까지 대학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노력에 감화한 주위 사람들은 물론 미국에 있는 그의 가족까지 학교발전을 위해 크게 공헌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한 여성의 믿음과 기도와 눈물이 희생이 제물이 되어 오늘의 한일장신대가 우뚝 서있다며 한일의 어머니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공적을 기려 한일장신대는 2000년 선교사 기념비를 캠퍼스에 세웠고, 최근엔 한일선교기념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고인애기념관으로 명칭을 바꿨다.

고인애 교장의 죽음에 대해 미국장로교 본부는 물론 현지 신문에서도 이례적으로 크게 보도하고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그의 장례식은 9월 1일(토) 낮 12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헌터스빌에 있는 호프웰 장로교회(Hopewell Presbyterian Church)에서 치러졌으며 교회 묘지에 안장됐다.

웹사이트: http://www.hanil.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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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장신대학교 기획처 조미라, 063-230-5407, 이메일 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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