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지마 전투는 일명 유황도전투라고도 하고,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단일전투로는 가장 큰 피해를 낸 전투이기도 하다.
도쿄에서 1,060km 떨어진 작은 섬인 이오지마는 미국이나 일본 모두에게 전략상 반드시 필요한 지점이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이오지마는 일본 본토를 공략할 장거리 폭격기 기지로서, 미국이 차지해야 할 중요한 곳이었다. 일본인들도 이 섬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에 불가피한 미국의 공격에 대비해 몇 년 걸려 지하 방공호를 만들었다. 이오지마 점령은 미군에게 꼭 필요한 과제였지만 쉽게 이루어질 수 없었다.
1945년 2월 19일 아침, 미 해병대 제5사단, H 중대 병사들은 6만여 명의 해병대원들과 함께 이오지마 해안을 습격했다.
2월 19일 밤 10시 디스커버리 채널에서는 미국의 이오지마 전투에 관한 두 시간짜리 특집 <H 중대 대원들>을 방영한다. 생생한 1인칭의 해설과 극적인 재현, 문서국에 보관된 당시의 화면을 통해 미국 역사상 가장 값비싼 희생을 치른 전투에 참가했던 H 중대 대원들의 싸움을 더듬어 본다.
1945년 2월 19일 오전 9시, H 중대 대원들은 화물용 그물을 타고 내려가 수심 1.5m 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상륙용 주정에 옮겨 탔다. 이오지마 해안까지는 불과 1.5km 떨어진 곳이었다. H 중대는 이 날을 위해 1년 이상 훈련해 온 18에서 20세까지의 소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이오지마가 첫 전투였다. 소년들은 이 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브리핑 때에 섬의 모형을 보긴 했지만 ‘이오’섬의 검은 모래에서 벌어질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그 소년 중 하나는 이렇게 회상한다. “해변은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포화가 퍼붓고 있었죠. 부상을 입거나 죽지 않고서 상륙한다는 건 불가능했죠... 우리가 어떻게 상륙했는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H 중대는 섬 내륙으로 진격하면서, 철통같은 방호벽을 쌓은 적군의 결연한 항전에 부닥쳤다. 일본군은 토치카에서, 입구를 숨긴 방대한 지하 참호에서 이들을 상대했다. 일본군은 언제든 해병대를 포위할 수 있었다 해병대는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했다. 상륙한 지 3일 후, 해병대는 스리바치 산에 기를 꽂았다. 이제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끈질긴 항전은 그 후로도 33일 동안 불을 뿜었다. 이오지마에서만 7,000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20,000명이 부상당했다. 일본인 사상자는 22,000명에 달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훈장을 받은 해병대원 80명 가운데 22명이 이오지마 전투에 참가했던 이들이었다. 미 태평양함대 사령관이었던 니미츠 제독은 H 중대 대원들을 이렇게 치하했다. “이오 섬에서 싸웠던 미군들에게는, 비범한 용맹이 아주 보편적이고 평범한 덕목이었다.”
이오지마에서의 미군의 승리는 2차세계대전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위싱턴 DC에 세워져있는 거대한 기념상은 H중대 대원들이 스리바치산 정산에 성조기를 꽂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H 중대 대원들>은 2월 19일 밤 10시부터 12시까지 Part 1과 Part 2로 나눠서 첫 방송된다. Part 1의 재방송은 2월 21일 밤 10시, 2월 22일 오전 7시, 오후 3시, 2월 28일 새벽 3시, 오전 11시, 오후 7시. Part 2의 재방송은 2월 22일 밤 10시, 2월 23일 오전 7시, 오후 3시, 3월 1일 새벽 3시, 오전 11시, 오후 7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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