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광주박물관 만의총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광주--(뉴스와이어)--국립광주박물관(관장 조현종)은 지난 3월 2일부터 5월 23일까지 약 60일간 예정으로 진행 중인 해남 만의총 3호분의 조사 성과를 공개하는 현장설명회를 개최한다.

만의총은 원래 총 6기가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2기만 남아 있으며, 지금까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전사한 수많은 의병들이 한꺼번에 묻힌 무덤으로 구전口傳되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몰무덤” · “몰뫼” 등으로 부르고 있다. 해남군에서는 이들 무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성격을 밝히고자 현존하는 3기의 무덤 중 가장 크기가 큰 3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국립광주박물관에 의뢰하였다. 이번 설명회에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조사 성과를 통해 고분의 구조와 성격을 소개하고,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유물들을 공개할 예정이다.

만의총 3호분은 해남군 옥천면 대교들 중심에서 분지성 평야와 주변 마을들이 잘 조명되는 나지막한 구릉에 입지하고 있다. 봉분은 지름이 약 24m, 높이 약 3m로 대형이며, 봉분의 가장자리를 따라 둥글게 도랑周溝이 설치되어 있다. 도랑은 무덤의 입구 방향인 남쪽 부분에 너비 8m 정도가 평지로 남겨져 있으며, 이는 당시의 장례와 관련된 통로로 생각된다.

봉분 가운데에는 앞트기식 돌방무덤橫口式 石室墳 1기가 축조되어 있다. 돌방무덤은 당시 지표면보다 약 60㎝ 정도 높은 지점에 축조되었으며, 장축방향은 남-북향南北向이며, 남쪽에는 장례 때 출입을 위한 길墓道이 마련되어 있다. 무덤의 축조연대는 도랑에서 출토된 개배蓋杯와 단경호 등으로 보아 늦어도 5세기 후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앞트기식 돌방무덤은 삼국시대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사용된 무덤 형태로, 전남지역을 제외하고는 조사례가 상당수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조사에서는 앞트기식 돌방무덤은 대부분 소형분이고, 봉분이 잘 남아있지 않은 까닭에 전체적인 무덤의 구조를 밝히지 못한 상태이다. 해남반도를 비롯한 전남지역에서는 이와 유사한 무덤이 해남 용운 3호분, 무안 인평 2호묘 등 몇 예에 불과하고, 특히 옹관고분과 굴식 돌방무덤橫穴式 石室의 조명에 가려 역사적 의의로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이번 만의총 3호분의 조사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석실과 봉분의 축조과정이 잘 드러난 점, 시신 매장을 위한 묘도 구축의 시점과 폐쇄 과정이 드러난 점, 횡구식 묘도의 구조와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점 등을 통해 앞트기식 돌방무덤의 성격과 구조를 구체적으로 밝혀냈다는 점이다. 특히 대형 봉분속에 횡구식 석실이 축조된 무덤이 조사된 예는 이번이 처음이다.

둘째는 이 고분의 구조가 백제의 웅진기(475~537년) 횡구식 무덤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논산 표정리 3호분·4호분, 논산 표정리 당골 3호묘·5호묘, 공주 보통골 4호·8호분, 공주 산의리 30호묘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묘는 석실의 구조에서 횡구식을 채용한 점, 석실의 평면 플랜이 세장방형인 점, 석실의 최하단석을 세워쌓기를 한 점, 석실 바닥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점 등에서 공통점을 보인다.

지금까지 해남반도에서 조사된 5~6세기 초(初)의 석실은 봉분의 평면 형태와 돌방의 구조, 출토된 유물 등에서 일본 구주지역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당시 해남반도의 대외관계는 주로 왜(倭)와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번 조사는 삼국시대 해남반도의 역사적 접근에서 백제와의 관계가 새롭게 설정되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즉 만의총 3호분은 5~6세기대 해남반도를 둘러싼 백제와 왜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주목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유물은 도굴로 인해 대부분이 없어져 중요 내용은 확인할 수 없지만, 석실 내부와 도랑 등지에서 구슬류와 철기류 , 개배 · 단경호 등의 토기류가 출토되었다.

만의총 3호분에 대한 구체적인 조사 성과는 5월 15일 11시 30분에 발굴조사 현장에서 자세히 공개할 예정이다.

웹사이트: http://gwangju.museum.go.kr

연락처

국립광주박물관 홍보 담당 김정현 062-570-7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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