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와이어)--로마의 원형경기장. 잔인한 피의 경기가 벌어졌던 이 무대는 고대 최대의 수수께끼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 무대에서 검투사들이 목숨을 걸고 치렀던 경기는 보통 사람들의 오락거리로서 500년 넘게 로마 사회를 풍미했다. 거대한 타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은 오늘날의 웬만한 미식축구 경기장보다 더 크다. 검투사들은 이런 콜로세움을 가득 채우고 환호하는 55000명의 군중 앞에서 싸우다 종종 숨을 거두기도 했다.

이 죽음의 제전이 로마 사회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로마인들은 왜 그 경기를 위한 특별 건물을 따로 만들 정도로 좋아했으며, 건물들은 어떤 구실을 했을까? 그리고 그런 큰 경기의 스타, 검투사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콜로세움: 죽음의 무대>는 잔인하고 화려했던 고대 로마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 검투사들이 싸우고 훈련했던 실제 방식을 조명해 본다.

첫 방송은 3월 27일 밤 10시 디스커버리 선데이 시간에 나간다. 재방송은 3월 28일 오후 2시, 30일 저녁 8시, 31일 오후 12시.

<콜로세움: 죽음의 무대>에는 호화로운 세트와 혁신적인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동원되었으며 안드레아스 페트리데스가 지도한 실감나는 전투 장면이 볼 만하다. 그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전투 장면을 담당했다. 이 특집에서 검투사나 콜로세움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은 검투사 베루스의 실화를 통해 전달된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가공인물 막시무스처럼, 베루스 역시 노예였다가 자유를 얻기 위해 검투사가 된 인물이다. 그러나 막시무스와는 달리, 그는 실존인물이었으며 검투사로서는 드물게, 그 경기가 역사에 기록된 사람이다.

베루스는 채석장 노예로서 가혹한 노동의 암담한 나날을 탈출해 견습 검투사가 되고, 복잡하고 어려운 검투사 기술들을 배워나간다. 그는 다른 견습 검투사들과 우정을 쌓으면서, 검투사의 인생이 험하고도 거칠며, 짧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그러나 한편, 행운과 기술, 용기를 지닌 스타 검투사는 부자가 되어 많은 여자들의 환심을 살 수도 있으며 결국에는 자유를 얻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콜로세움: 죽음의 무대>는 베루스가 명성을 얻고 콜로세움의 개장 축하 경기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게 되는 과정을 쫓는다.

한편 이 프로그램은 콜로세움 건물 자체를 탐험한 기회를 제공한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은 당시 콜로세움의 아름다움과 야심 찬 설계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콜로세움은 76개의 입구에서부터 관람석까지, 불과 몇 분 내로 55,000 관객을 입장시킬 수 있는 복도와 계단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경기장 밑으로는 미로 같은 지하 통로와 검투사 및 야수들이 대기하는 방들이 있었다. 여기서 무대 바닥에 감춰진 뚜껑문까지 도르래로 올려지는 승강기는 경기의 긴박감을 더해 주었다.

2003년 영국에서 처음 방영되었을 때 런던의‘이브닝 스탠더드’지로부터 “역대 최고의 극적 다큐멘터리”라는 평을 받은 <콜로세움: 죽음의 무대>는 BBC/디스커버리 채널 공동제작이다. 디스커버리 채널에서는 스티븐 매뉴얼이 연출을 맡았으며 BBC에서는 조나단 스탬프와 로렌스 리스가 공동 연출했다. 대본, 제작, 감독은 틸먼 렘이 맡았다.

<콜로세움: 죽음의 무대>는 실제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내세우고 컴퓨터로 놀랄 만큼 사실적으로 재현한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실제 검투사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보여준다. 1시간짜리 특집인 이 프로그램은 실존인물이었던 베루스라는 검투사에 초점을 맞추면서, 웅장한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55000명의 피에 굶주린 관객들 앞에서 싸우는 남자들의 심경을 들여다본다.

<콜로세움: 죽음의 무대>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검투사들:

베루스 --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가공인물 막시무스처럼, 베루스도 자유를 얻기 위해 검투사의 반열에 오른 노예였다. 그러나 막시무스와는 달리, 그는 실존인물이었으며 역사에 그 경기 기록을 남긴 몇 안 되는 검투사였다.

베루스는 원래 자유민이었으나 서기 76년 로마 제국 북동쪽 변경에서 포로가 되었다. 그는 이탈리아로 보내져 노예가 되었고 1년 동안 채석장에서 일하다가 검투사로 훈련받을 기회를 잡는다. 그는 점차 등급이 높아져 스타 검투사가 된다.

<콜로세움: 죽음의 무대>는 그의 눈을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프리스쿠스 -- 골(지금의 프랑스) 출신의 노예. 콜로세움의 개장 축하 경기에서 베루스와 싸운다.

통치자들:

베스파시아누스 -- 서기 69년 로마 황제가 되었다. 로마에 자신의 왕조를 세우고 싶었던 그는 황제 권력의 상징으로서 대규모 건설 공사를 추진했는데, 콜로세움도 그 일부였다. 79년에 그가 사망하자 아들 티투스가 제위를 이었다.

티투스 --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가 사망하자 서기 79년 황제가 되었다.

전기작가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로마 시민들 사이에서 티투스는 잔혹한 것을 좋아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황제가 된 티투스는 일단 콜로세움이 완공되자 성대한 개장 경기를 벌여서 대중의 환심을 사기로 했다. 그 계획은 효과를 거두었다. 그 경기들은 티투스를 로마 역사상 최고의 인기 황제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의 재위기간는 아버지보다 훨씬 짧았다. 콜로세움 개장 경기가 있은 지 6개월 후, 그는 의문의 병으로 세상을 떴다.

<콜로세움: 죽음의 경기>는 역사적 사실들을 제시함으로써 웅장한 콜로세움의 실제 드라마와 거기서 싸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준다.

디스커버리채널의 이번 <콜로세움: 죽음의 경기>에서 소개되는 흥미로운 사실 몇 가지 를 미리 들여다보면...

검투사:

많은 검투사들이 노예 출신이었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었다. 2세기가 되자 전체 검투사의 1/3 이상은 부와 명예를 좇아 자원한 시민들이었다.

검투사 집단은 10등급으로 분류되었다. 1등급 검투사가 한 번의 경기에서 받는 수당은 일반 병사 1년 수당의 15배에 이르렀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모든 경기가 죽음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경기마다 검투사들은 살아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검투사 생활을 성공적으로 마감하고 은퇴한 이들도 많았다.

검투사의 유형은 12가지가 넘었다. 커다란 방패와 긴 칼을 들고 싸운 무르밀로스(Murmillos), 그리스인들처럼 싸우는 트라키안(Thracian), 그물과 삼지창을 무기로 사용한 레타리우스(Retarius) 등이 있었다.

검투사들은 죽은 동료의 장례식 비용을 대기 위해 장례 클럽을 만들었다. 이들은 죽어서 제대로 매장되지 못하면 저주를 받아 영원히 유령 신세로 지상을 떠돌게 된다고 믿었다.

경기:

검투사들의 싸움은 원래 부유한 시민의 장례 의식에서 유래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것이 인기 있는 오락거리로 떠올랐다.

검투사 경기에서 많은 야생 동물이 희생된 결과, 외국의 일부 동물은 사실상 멸종되다시피 했다. 이집트에선 하마가, 북아프리카에선 코끼리가 사라졌으며 근동지방에서는 사자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야수들이 사람을 공격하도록 하기 위해, 사자와 호랑이에게는 인육을 먹이다가 경기 전에는 굶겼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동물이 늘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었다.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로마 시대의 원형경기장 가운데 가장 크고 공사비도 가장 많이 들었다. 서기 80년 55000석 규모로 완공된 이 경기장은, 네로 황제 시절에 불타버린 목조 경기장을 대신해 지은 것이다.

로마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점령하고 약탈한 전리품들이 콜로세움 건립비용으로 쓰였다. 여기에는 순금으로 된 탁자와 램프 걸이도 포함되어 있었다.

높이 48m의 콜로세움 같은 거대한 구조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콘크리트를 사용한 로마인들의 건축술이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로마 시대 콘크리트에는 화산석이 쓰였는데, 그 결과 콘크리트의 강도가 더욱 높아졌으며 수중에서도 건축이 가능해졌다.

콜로세움 개장 경기는 100일 넘게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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