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분리, 출총제 폐기 법안 국회처리에 대한 경실련 입장

2009-03-03 14:08
서울--(뉴스와이어)--금산분리 원칙 폐기를 주 내용으로 하는 은행법 개정안과 출총제 폐지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오늘(3일) 국회 정무위에서 한나라당이 단독 강행처리함으로써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게 되었다. 그동안 정부여당이 ‘경제살리기’라는 미명하에 충분한 심의도 없이,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 절차 진행 없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여온 경제 관련 악법들이 결국 현실화되고 말았다.

경실련은 이 두 개 법안의 국회통과는 공정경쟁과 투명경영이라는 시장의 기본적인 규칙을 훼손하는 것으로써 정부와 한나라당이 우리나라의 시장경제질서를 근본에서부터 무너뜨리는 반시장적 행위를 자행한 것임을 분명히 밝혀둔다. 또한 소수 재벌에 대한 경제력 집중을 더욱 심화시켜 과거 IMF 외환위기 이전으로 우리 경제의 시계를 되돌리는 시대착오적인 행위임을 밝힌다. 오늘 국회에서 처리되는 공정거래법과 은행법의 개정안 처리는 입법의 타당성과 절차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 경실련은 이후 우리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훼손된 관련 제도를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금산분리 원칙 폐기는 금융과 산업을 분리해야 한다는 경제학의 상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다. 산업자본의 투자활동을 감시·평가하고 이 결과를 통해 자금을 배분하여야 할 금융기관이 산업자본과 통합될 경우 효율적인 자금 배분을 저해함으로써 전체 경제의 효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고객의 돈을 운용하는 금융기관 또한 동반 부실로 이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삼성비자금사건에서 밝혀졌듯이 삼성은 지배력이 없는 정부소유 우리은행에 대하여도 대규모 거래자라는 지위를 악용하여 비자금관리, 금융실명제 위반 등에서 협조를 받았다. 이러한 재벌들이 특정은행 인수에 참여하거나 최대주주가 되는 경우 은행이 계열사에 과다한 대출을 유리한 조건으로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며, 이를 가능하게 하도록 인사에도 관여할 것이다. 재벌이 총수 일가에 지배되고 있는 현실에서 결국 은행도 총수의 사금고화로 변질될 것이라고 예견되는 것은 너무도 분명해 보인다.

이외에도 채무자가 채권자를 지배함으로써 시장경제질서를 위배하는 문제, 은행 재벌의 우월적 지위남용으로 인해 비금융업에 주력하는 다른 기업에게 큰 피해를 주는 경제력 집중의 문제, 대출을 통한 은행의 신용창조능력으로 인한 재벌 폐해가 모든 산업으로 확산되는 문제, 어느 한 재벌이 은행을 지배하게 되는 경우 다른 재벌들은 상대적 불리를 극복하기 위해 타 은행의 지분소유를 늘리려 함으로써 결국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부분의 민간은행이 재벌 영향 하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문제 등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우려된다.

특히 강조되어야 할 점은 현재의 금산분리 규제는 내국인과 외국인을 동일하게 규제하고 있으며, 만약 금산분리를 폐기할 경우 WTO 규정이나 한미 FTA 관련 조항에 의해 외국의 산업자본이나 사모펀드에게도 똑같이 적용되게 된다는 점이다. 결국 금산분리 완화는 국내 재벌뿐만 아니라 보다 큰 자본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외국 산업자본에게 송두리째 우리 은행을 내맡기게 됨으로써 국내 은행의 경쟁력 강화는 고사하고 국내 은행을 국적 없는 투기자본의 먹이거리로 전락시킬 위험에 노출시키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국내금융자본 육성이라는 정부여당의 금산분리 원칙 폐기의 명분은 허울에 불과하다. 오히려 금산분리 폐기는 우리경제 구조를 재벌과 외국자본들이 독식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시켜 우리경제의 발전이 아니라 후진성을 가속화시키고, 반시장적인 행태를 합법적으로 가능하도록 하여 우리경제를 죽이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재벌이 금융기관을 사금고화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금융기관의 자산을 유용하였을 때의 심각성과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이미 IMF 외환위기를 통해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외국자본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범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세계 각국이 그동안의 무분별한 금융규제 완화를 반성하고 다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금산분리 원칙의 폐기는 전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출총제 폐지 또한 결국에는 규제(Regulations)가 아닌 시장의 규칙(Rule)을 훼손하면서 건전한 시장경제질서를 무너뜨리고, 소수 재벌 집단의 이익과 ‘황제경영’을 영구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다. 재벌 총수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는 소유지배 행태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최근 더욱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산분리 완화와 더불어 출총제가 폐지되면 시장의 완전한 규율 공백상태가 초래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선 및 선진 경영 정착은 요원하게 될 것이며, 97년 외환위기에서 드러났듯이 이는 결국 국민경제 전체에 엄청난 피해를 입히게 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지난 98년 기업규제 완화 및 투자 활성화를 명목으로 출총제를 폐지한 이후 재벌의 출자총액이 급격하게 증가하자 2002년 다시 출총제를 도입하였던 경험은 이러한 폐해를 잘 드러내주고 있다.

시장경제질서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국가 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의 기업활동을 보장·육성함으로써 장기적인 성장동력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재벌의 과도한 시장지배력으로 인한 폐해와 대-중소기업간 불공정 거래를 막을 수 있는 기본적인 규제가 유지되어야 한다. 따라서 출총제가 폐지된다면 반드시 환상형순환출자 금지, 공정거래법상의 집단소송제, 이중(다중)대표소송제, 징벌적 3배 손해배상제,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 등 사후 규율방안이 반드시 도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안에 대한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폐기한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이번 ‘경제 악법’은 무엇을 명분으로 하던 결국 소수 재벌과 총수 일가의 이익만을 보장해주기 위해 우리 경제의 모든 것을 넘겨주겠다는 비극적인 선언이다. 외환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얻었던 소중한 경험과, 숱한 난관을 거치면서 어렵사리 다듬어온 재벌 개혁과 올바른 시장경제질서 확립을 위한 노력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소수 재벌집단에게 모든 이익을 넘겨줌으로써 우리나라의 경제 질서를 크게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은 그릇된 경제정책을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않은 채 강행통과 시키는 정부와 여당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개요
경실련은 1989년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라는 기치로 설립된 비영리 시민단체로서, 일한만큼 대접받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시민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특히 집, 땅 투기로 인한 불로소득 근절, 아파트가격거품 제거, 부패근절과 공공사업효율화를 위한 국책사업 감시, 입찰제도 개혁 등 부동산 및 공공사업 개혁방안 제시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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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계현 정책실장, 김건호 부장 02-3673-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