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측면에서 한나라당의 입법계획은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첫째, 실효성의 측면에서 한나라당의 계획은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현대의 행형 원칙은 교화와 사회복귀에 그 목적이 있다. 평생 범죄자에게 주홍글씨를 새겨주고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교육과 예방이라는 방법이 행형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주장처럼 성폭력범죄는 죄질이 무겁고 재범율이 지극히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폭력범죄자들을 무조건 사회와 격리하는 것이 재범율을 낮추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치추적이 되는 전자팔찌의 착용이 과연 어느 정도 재범율을 낮출지에 대해서 한나라당은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지속적인 교정 및 교화프로그램의 실시를 통해 가해자들의 잘못된 성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범죄 예방이나 2차 가해를 방지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지난 해 여성부는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교정프로그램 운영을 제시한 바 있다. 아직까지 여성부의 계획이 현실화되지 않고 있으며 의무적인 것이 아니라서 실효성에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이러한 교정프로그램의 강화를 법적으로 구체화하는 작업을 먼저 추진했어야 한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기기의 외관이나 오작동 등의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전자팔찌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인권침해가 일어날 수 있다. 팔찌형태가 부담스러우면 시계 형태로 할 수도 있다는 한나라당의 발상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유치함의 극치이다. 또한 시행 후 효과가 있을 때 다른 범죄에도 확대 실시하겠다는 한나라당의 발상은 공안기관의 인식수준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인권침해 논란이 있는 부분을 줄여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효율이라는 측면만 강조하는 것 역시 입법을 책임지고 있는 공당의 발상으로 보기에는 수준 이하이다.
둘째, 기본권의 제한은 최후의 수단으로서 가능한 것이며, 비록 제한을 하게 되는 경우라도 기본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전자팔찌 착용계획은 최후의 수단으로 보기도 어렵고,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조차 침해할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성폭력범죄자들에 대한 제재는 법률이 목표로 하고 있는 수준에도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쉽게 말해 있는 법조차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자신이 저지른 죄과보다도 훨씬 경미한 처벌을 받거나 처벌을 회피할 수 있는 반면 피해자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경찰의 성폭행범 수사과정에서 아직도 인권보호의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밀양 집단성폭행사건 등에서 여실히 드러난 바 있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성폭행범들에 대한 형량이 지나치게 관대하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최근에도 정신지체장애인 성폭행 사건 등에서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형법 및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따르면 적어도 3년 이상의 형벌을 받도록 되어 있는 성폭력범죄자들이 친고죄 규정을 악용하여 법망을 교묘히 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불과 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성폭력범죄 고소율은 친고죄와 같이 광범위한 성폭력범죄를 용인하는 제도적 장치에 의거한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나라는 가석방율이 지극히 낮아 범죄자가 형기 이전에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그렇다면 이미 형기를 마친 자들의 위치를 24시간 추적하면서 그들의 사생활 일거수일투족을 공안기관이 감시하는 것은 이들을 이중처벌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회보호법이라는 악법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보호법을 전자적 장치로 수행하는 제도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한나라당의 인권인식수준이 여전히 군사독재시절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한나라당이 입법책임을 지고 있는 공당이라면 먼저 이렇게 법치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제도정비에 신경을 써야 한다. 경찰 등 공안기관이 전자팔찌 제도의 도입을 먼저 주장하더라도 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공당의 의무이다. 그런데 오히려 공안기관이 할 수 있는 발상을 앞장서 추진하는 이러한 모습은 전혀 공당의 자세로 보이지 않는다. 과잉침해금지, 적법절차의 원칙, 이중처벌의 금지 등 법치주의가 갖추어야할 기본 이념들을 부정하는 입법을 준비하는 것은 입법자의 태도가 아니다.
법치주의의 원칙은 피해자는 물론이려니와 가해자에게도 적용될 것을 요구한다. 입법자들은 이를 위해 보편타당한 정책을 수립하는 한편, 법치주의의 근간을 확립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이 추진하고 있는 전자팔찌 계획은 자칫 이러한 법치주의의 원칙을 뒤흔들 수 있는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80% 이상의 지지율이라는 여론과 기술만능주의에 기대 인권보장의 노력을 무시하는 한나라당의 전자팔찌도입 계획은 당장 철회되어야 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대중의 환호에 취해 입법기관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리는 한나라당은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자신들의 태도에 대해 향후 반드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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