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회 논문 ‘비아그라가 한국의 남성성과 남성문화에 미친 영향’
20일 열리는 문화인류학회 학술대회 발표논문입니다.
채수홍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1. 비아그라 효과(Viagra effects)
성(性)에는 ‘사오정’이 없다. 비아그라 5년...중·노년들의 起立 박수. 작은 알약 하나가 ‘夜史 ’를 바꿨다. 70대 부부도 주1회 ‘비아그라 러브.” 전세계 2천만 '문제男'에 희망. 대한민국 침실도 러브콜. 폭발하는 욕망...폭발하는 시장 (중앙일보 Week& 2003. 9. 23).
지난 20세기 성(性)혁명은 두 종류의 약이 견인했다. 1차 혁명을 이끈 것은 1950년대에 나온 피임약. 여성에게 임신에 대한 불안을 씻어줬다. 2차 혁명의 주역이 바로 비아그라다. 비아그라(Viagra)는 ‘활력(Vigor)'을 ‘나이아가라(Niagara)’ 폭포처럼 넘치게 해준다는 의미로 만든 이름. 덕분에 ‘일나그라’ ‘서그라’ ‘살리그라’ ‘누에그라’ ‘동초그라’ ‘진생그라’ 등 비슷한 이름의 상표들이 특허청에 무더기로 출원되는 등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ibid.).
‘발기부전(erectile dysfunction)' 치료제인 비아그라는 피임약과 함께 인류의 성문화에 단기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의약품이다. 피임약이 여성의 몸을 통제함으로써 성에 대한 관념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았다면 비아그라는 남성의 몸을 통제할 수단을 제공함으로써 다시 한번 성문화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비아그라가 단기간에 떨친 영향력은 양적 통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화이자(Pfizer)가 비아그라를 시판한 98년 3월 이후 5년 동안에만 2천만 명 이상의 남성이 1억 3천 3백만 건 이상의 처방을 받았다. 초 당 9정을 소비한 셈이다. 덕택에 비아그라 판매회사인 화이자(Pfizer)는 발매 첫 해에 7억 7천여 달러를 시작으로 2003년 한 해에만 17억 3천 5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Week& 2003. 9. 3). 2003년부터 시알리스(Cialis)와 레비트라(Levitra)가 경쟁제품으로 등장했고 각종 유사비아그라가 판매되는 암시장이 거대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통명사'’로서 비아그라가 세계적으로 거둔 성공은 경이적이라 할 수 있다.
비아그라는 한국에서도 예외 없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국화이자가 식약청의 판매허가를 획득한 99년의 4개월 동안에만 180억원의 매출을 올려 단일의약품 매출 신기록을 수립했다. 2003년에는 4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이후에도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의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의 규모도 2000년 약 200억원에서 현재는 약 700억원까지 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정규적 경로로 유통되는 유사비아그라를 포함하면 발기부전 치료제 시장의 규모는 공식통계의 수배에 달할 것으로 짐작된다.
이와 같은 비아그라의 성공은 발기부전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바꾸어 놓았다. 자연스런 노화현상이나 치료가 어려운 장애로 취급되던 발기부전이 치료해야하고 치료 가능한 질환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의사이다. 비아그라 등장 이전에는 의사의 1/3 이상이 발기부전 환자를 치료하지 않고 돌려보냈으며, 치료를 적극적으로 원하는 환자에게만 까다롭고 위험이 따르는 보형물 수술과 주사요법을 시술했다. 이와 비교하여, 지금은 거의 모든 의사가 발기부전을 고쳐야할 병으로 설명하고 “성공적” 치료를 장담하고 있다. 비아그라와 같은 경구제를 처방함으로써 환자를 쉽게 만족시킬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발기부전을 치료할 손쉬운 수단이 생기면서 의사의 인식이 전환되고 그 결과 일반인의 발기부전에 대한 통념이 바뀌고 있다.
발기부전에 대한 한국인의 사회적 통념을 바꾸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또 하나의 주체는 미디어다. 90년대 초만 해도 한국사회에서 발기부전이라는 용어는 아직 생소한 금기어였다. 한 조사에 의하면 93년 국내 종합일간지에 발기부전이라는 용어는 10여회 등장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비아그라 국내시판이 시작된 99년에는 330여건 이상의 발기부전 기사가 실렸다(Pfizer 2004b:2). 이젠 TV, 신문, 영화, 인터넷, 서적 등을 통해 발기부전에 관한 정보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의사와 미디어의 발기부전치료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홍보는 그동안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던 여러 가지 성격의 성 담론을 공론화하고 변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주책을 떠는 것으로 치부되어 음성적인 영역에 머물러 있던 노인의 성이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애마부인(愛馬夫人)에 대한 환상과 변강쇠 콤플렉스에 기초해 만연하던 각종 보양식문화도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한국남성의 상징적 집단의례인 보양식문화”(함한희 1999:33-34)가 “발기에 해로운 콜레스테롤 덩어리를 먹지 말고” 알약 하나로 해결하라는 의사의 유권해석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이와 같이 비아그라는 한국남성의 성과 성문화를 표면에 드러내는 리트머스 용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동시에 이를 변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2. 비아그라 효과를 보는 시각
비아그라가 세계적인 이목을 끌면서 2004년까지 비아그라를 다룬 학술적인 논문도 최소 3000여 편 이상 쏟아져 나왔으며 책도 50여 권 이상이 발간되었다(Stecher 2004:18). 이들 중 절대다수는 비아그라 효과에 대한 의학적인 연구결과물이다. 특히 발기의 속도, 지속성, 강직성에 초점을 맞춘 소위 ‘스톱워치 스터디(stopwatch study),' 발기에 관한 생화학적 연구, 발기부전 환자의 종류와 수를 파악하기 위한 역학조사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와 더불어 발기부전 치료가 환자의 자긍심, 자신감, 관계개선 등에 어떤 효과를 나타내는지를 탐구하는 심리학적 연구도 제법 있다. 흥미로운 것은 비아그라에 관한 대중적인 서적들도 대부분 가족이나 남녀의 심리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Myles et al. 1999; Whitehead 1998). 이런 대중서적들은 발기부전 환자가 비아그라 복용이후 섹스, 가족관계, 애정관계에 어떤 효험을 보았는지를 에피소드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이를 종합해 보면, 비아그라에 관한 연구는 남성의 성적 능력을 세밀하게 분석하거나 이를 토대로 삶에 대한 만족도와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려는 연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연구의 한계는 남성의 성적 능력이 중요하고 이것이 삶의 만족도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점을 선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성의 성적 능력이 왜 사회문화적으로 중요하게 인식되는지, 삶의 만족도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변수가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존의 남성성과 남성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녀문제를 관계적(relational)인 것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생물학적· 심리적 문제로 환원시켜 탈정치화 시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수의 논문과 책자가 비아그라 효과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을 시도하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이들이 비판적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비아그라의 성공이 제약회사, 의사, 미디어, 정치인 등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데 힘입은 것이 아닌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Loe 2004; Reidy 2005 참조). 비아그라의 상업적 성공은 경이로운 약품의 발견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기보다는 이들이 공모하여 적절한 상품화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노화나 신체적 쇠약과 연계되어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간주되던 발기부전을 치료요법에 맞게 질환으로 재창조(reinvention)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발기부전 문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비아그라의 상품화 과정이 성에 대한 기존의 남성-중심적 시각을 재생산하고 있지 않나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Boschert 2001; Loe 2004 참조). ‘음경의 성능(penile performance)'과 ‘남성적 정체성(masculine identity)’을 동일시해온 성기/삽입 중심의 남성주의 시각을 재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성을 기능의 문제로 단순화시키고 성이 사회적, 문화적, 감정적 요소가 얽힌 정치적 문제라는 점을 간과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들은 발기부전과 비아그라 효과에 대한 여성의 인식이 남성의 인식과는 많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아그라에 관한 담론은 여성이 느끼는 복잡한 사회심리학적 문제를 남성의 의학적 조건에 맞추어 창작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시각을 따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밥 돌의 되찾은 발기력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의 아내인 엘리자베스 돌의 시각과 느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발표는 위와 같은 세 가지 비판적 논점을 순차적으로 검토하면서 비아그라의 등장이 한국사회의 남성성과 남성문화에 대해 어떤 점을 말해주고 있으며 또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로 본 발표에서 활용하는 자료는 발표자가 2004년 8월부터 의사, 발기부전 환자, 비아그라 복용 경험자, 배우자, 일반인 등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현지조사에서 얻은 것이다.
3. 비아그라를 통해 본 한국남성의 남성성과 남성문화: 비아그라 효과에 대한 비판적 논점을 중심으로
(1) 비아그라가 발기부전에 대한 개념을 재구성 ?
비아그라의 등장으로 발기부전을 치료해야 할 질환(disease)으로 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비아그라의 발견 이전에는 일부 전문의들조차 발기부전을 경험하고 고통을 느끼는 환자에게 자연스럽고 "범상한 병(common illness)"으로 설명하고 치료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각주3 참조). 하지만 이제 의사는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발기부전을 치료해야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비정상적인 질환(abnormal disease)"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런 변화를 고려해보면, 문제에 적합하게 치료가 고안된 것이 아니라 치료에 적합하게 문제가 재구성된(reconstructed) 것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Loe 2004).
비아그라가, 엄밀한 의미에서 보면, 치료제가 아닐 수 있다는 점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비아그라가 장기적으로 발기기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와 약품에의 의존도를 높여 오히려 발기기능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양립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분명한 것은 비아그라가 발기부전을 일으키는 (예를 들어, 당뇨, 전립선 이상, 혈관과 신경계통의 이상, 우울증 등) 병인(etiology)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환자가 고통을 느끼는 '증상만을 치유하는 전략(fixed treatment strategy)'에 사용되고 있는 약품일 뿐이다(Whyte et al. 2002 참조). 기침을 할 때 기침만 멈추게 하면 만족하는 소비자의 성향에 적합한 약품이라는 것이다(Kleinman 1980:104-118).
이런 주장을 근거로, 비아그라의 발견을 의학적 신기원이라고 홍보하며 세계를 흥분시킨 제약회사와 미디어의 상업적 의도에 냉소를 보내는 학자도 있다(Loe 2004 참조). 이들은 발기부전이 생사가 달린 문제도 아닌데 의사들이 이런 흐름에 동조하여 발기부전의 심각성을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치아가 28개라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정상/비정상의 이분법적 틀을 만든 다음 (문제가 없어도) 모자란 이빨을 꼭 해 넣도록 만들어 수입을 올리는 치과의사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결국 범상한 병으로 취급되던 발기부전이 치료받아야 되는 비정상적인 병으로 둔갑한 것은 이를 통해 이윤을 창출하려는 여러 주체들의 암묵적 명시적 동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아그라 효과에 대한 이런 비판적 성찰은 특정 역사적 맥락에서 인간의 신체와 질병에 대한 정의가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될 수 있다는 구성주의자(constructivist)의 시각과 일치한다. 발표자는 오히려 이런 시각이 발기부전과 비아그라 효과의 사회문화적 성격을 단순화시키는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필자가 현지조사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발기부전의 경험은 파괴적일만큼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자연스러운 노쇠현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일과 가정에서 자신감을 잃고 우울증에 빠지거나 수치감으로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다는 반응이 훨씬 일반적이었다. 우리가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같은 발기부전의 고통이 육체적인 통증 때문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인 통념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남자구실 못하는 남성”이 한국사회에서 문화적으로 어떤 취급을 받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고통을 경험하는 남성의 수가 많다는 점이다. 안태영이 1996년 정읍에서 실시한 역학조사에 의하면 40대의 26%, 50대의 37%, 60대의 69%, 70대의 85%가 발기부전을 경험하고 있다. 서울의대 비뇨기과의 조사는 더 충격적이다. 발기에 전혀 문제가 없는 한국 남성은 40대 23%, 50대 13%, 60대 3%, 70대 1% 뿐이다(중앙일보 Week& 2003.9.3.). 이런 통계에 근거해 볼 때, 이들이 발기부전을 범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가 비아그라의 등장과 함께 심각한 질환으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손쉽게 치료할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은밀하게 고통받아온 남성이 많았다고 보는 것이 좀더 옳을 듯하다. 비아그라의 등장으로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갔으며 이 약에 “100점 만점에 200점을 주고 싶다”고 말하는 발기부전 환자들이 많다는 점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증상치료제에 불과한 비아그라가 발기부전을 질병(disease)으로 인식시키고 이를 토대로 한국사회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타당하다. 하지만 비아그라의 성공한 진짜 이유는 발기부전의 고통이 사회문화적인 성격을 띠고 있고, 이 때문에 은밀하게 고통이 숨겨져 왔으며, 비아그라가 발기부전 환자에게 이런 사회문화적 고통을 해결할 수단을 제공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이가 들거나 쇠약하면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을 심각한 병으로 다시 구성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자연스러움의 관념에 의해 억압되어 포기하고 있던 성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비아그라가 발기부전을 범상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인식하는 한국사회의 통념을 깨면서 일으킨 변화는 많다. 의사는 발기부전 환자의 사회문화적 고통을 어루만져주기 위해 자연스러움에 관한 사회적 통념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이런 통념을 깨면서 환자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노인의 성에 관한 권리가 신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사회적 통념에 의해 수동적으로 억압되어 있던 성을 주체적으로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60세 이상의 배우자가 있는 한국노인의 54%가 월 1회 이상 성생활을 하고 있으며 1주에 2회 이상 성생활을 하는 노인의 비율도 11.1%나 된다는 사실에 근거해 볼 때 매우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비아그라의 등장이 한국사회에서도 큰 사회적 효과를 낳은 것은 범상한 현상을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구성하여 이익을 보려는 상업적 의도가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라고만 보긴 힘들 것 같다. 이 보다는 잠재적· 실질적 발기부전 환자인 모든 남성에게 성에 대한 사회적 금기와 억압적 통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 비아그라가 성기/삽입 중심적 성 관념을 재생산?
비아그라효과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비아그라가 상품화되면서 성을 ‘음경의 성능(penile performance)' 문제로 단순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Loe 2004). 성의 사회문화적 성격을 단순화시켜 남성의 가치를 발기의 강직성과 지속성으로 환원시키는 기존의 성 관념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성기-중심적, 삽입-중심적 성 관념이 남성의 공격적 성충동을 합리화하고 남성의 성적 특권을 강화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여성주의의 비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이영자 2000; 정유성 2004 참조). 또한 비아그라가 상품화되는 과정에서 이용하는 성(性)적 이미지를 면밀히 살펴보면 이러한 우려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성기와 삽입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남성적 관념이 남녀의 정서적 교감이 필요한 성생활을 단순화시켜 온 것이 사실이다. 발기부전인 남편을 곁에 두고 은밀한 성욕에 몸부림치는 ‘애마부인’을 ‘대물(大物)’로 정복하는 꿈을 꾸는 변강쇠들이 낳은 왜곡은 많다. “여성을 정복하려는 남성의 공격성과 여성의 방어적 태도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해석”(정유성 2004:53)함으로써 남성의 성적 일탈행위가 정상적인 행위로 둔갑하는 경우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비아그라의 등장이 성을 단순화시키고, 과장하고, 왜곡하는 기존의 한국남성문화를 확대재생산하고 있지 않나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비아그라가 낳은 사회문화적 효과를 단순화시키고, 과장하고, 왜곡하는 것 역시 남성성과 남성문화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발표자는 비아그라 효과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남성성/남성문화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좀더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남성, 특히 발기부전 남성에게 삽입-중심적 성행위와 이를 위해 필요한 정상적 발기가 갖는 중대성과 의미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성기와 삽입 중심적 사고를 비판하는 글을 보면 흔히 정서적 교감이나 포옹이 남녀의 성관계 나아가 남녀관계 전반에서 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하지만 발표자가 만난 대부분의 남성은 발기부전을 경험한 뒤 성적 파트너와의 신체적 접촉은 물론이고 대화까지 단절되었다고 고백했다. 포옹은 발기에 문제가 없는 남성이 “운영의 묘”를 살리는데 필요한 것이지 발기부전 경험자에겐 “정신적 고문”이라고 주장했다. 비아그라가 일부 남성에게 “깜깜한 터널 끝에서 본 한줄기 빛”인 이유는 정상적인 발기가 이들의 성적 관계와 성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핵심적인 수단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와 더불어, 남성이 성기와 삽입에 집착하는 이유를 한국사회의 왜곡된 남성성과 남성문화 탓만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손쉬운 해석이다. 공격적인 충동이나 왜곡된 성 관념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너무 모순적이고 다면적인 것이 남성성과 남성문화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배우자(혹은 성적 파트너)에 대한 의무감도 남성이 성적 능력에 신경을 쓰는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남성다움을 강조하는 사회의 남성일수록 가족과 배우자에 대해 경제적, 사회문화적, 성(性)적 의무감을 강하게 느낀다는 민족지적 연구도 많다. 발표자가 인터뷰한 남성의 대부분이 발기부전을 경험했을 때 일과 가정에서 자신감을 잃었으며, 역으로 일이나 가정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기부전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남성이 성적 능력에 집착하는 것과 “남자로서” 사회문화적으로 규정된 각종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관념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 같다. 비아그라는 남성에게 발기를 돕는 약품일 뿐 아니라 남성다움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의무를 실천하도록 보조해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남성성과 남성문화가 모순적이고 다면적이라는 사실은 남성이 발기부전을 인정하고 비아그라를 복용하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남성은 비아그라를 복용하여 발기능력을 되찾는 것 못지않게 자신의 발기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감추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남성은 처음 발기부전을 경험했을 때 병원에 가길 망설이며 특히 배우자와 상의하거나 병원에 같이 가는 일은 극히 드물다. 비아그라를 복용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은 이미 남성성에 손상이 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발기부전 환자의 대부분은 비아그라를 복용하기 이전에 “자연적인” 발기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한다. 발기부전을 감춘 채 금주, 금연, 식이요법, 운동을 병행하며 “요즘 건강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태도와 관련하여 루빈(Rubin 2004)의 연구는 비록 외국의 사례지만 참조할만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루빈은 비아그라를 대하는 태도를 연구하기 위해 남성스포츠클럽과 병원의 남자환자를 대상으로 집단토론을 유도했다.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의 남성(특히 스포츠클럽의 남성)이 비아그라에 대해 충분한 지식이 있는데도 자기와는 무관하거나 흥미 없는 것처럼 '심리적 거부(psychological denial)'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자신의 남성적 이미지에 더 신경을 쓴 것이다. 또한 발기부전을 의사의 도움이 필요한 질환으로서가 아니라 건강과 남성다움과 관련시켜 이야기한다는 점도 발견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비아그라 효과가 한국사회에서 남성의 성기/삽입 중심적 성 관념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주장은 너무 일면적이다. 남성에게 성기의 발기기능이 정신적인 문제보다 일차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 이유는 다면적이고 모순적이다. 남성에게 발기는 공격적 성욕의 충족만이 아니라 남성다움을 유지하기 위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비아그라를 중요한 보조수단으로 환영하는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보조수단은 보조수단일 뿐이다. 남성이 비아그라를 대하는 태도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심리적 부정, 부끄러움, 수치심, 슬픔"(Conner 2001)등이 섞여 있다. 비아그라는 한국남성에게 공개적으로 복용하면서 사회문화적 효용을 누릴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남성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보조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3) 비아그라에 대한 여성의 생각은 남성과 다르다?
발표자가 현지조사를 진행하면서 궁금해 하고 있는 것의 하나가 발기부전과 비아그라에 대한 여성의 시각이다. 비아그라가 남성이 느끼는 것처럼 여성에게도 획기적인 약으로 인식되는지, 여성도 비아그라를 매개로 발기부전을 포함한 성에 대한 담론을 활성화하고 있는지, 여성 스스로 비아그라로 인해 성생활의 양태나 성에 대한 관념에 변화가 왔다고 느끼는지 등에 대한 대답을 찾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럴듯한 대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남성인 발표자가 여성으로부터 진솔한 진술을 얻어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발표자가 면접하고 있는 여성의 성에 대한 관념이 직업, 계층, 개인적 경험에 따라 이질적이어서 분석도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남성과 접촉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은 직업여성과 그렇지 못한 가정주부 사이에는 성 담론의 노골성이나 전개방식이 판이한 것 같다. 교육의 정도나 연령에 따라서도 상당한 변이가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발표자가 만난 여성이 비아그라와 연관된 경험을 진술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전형적으로 이렇다. 남편의 발기부전을 경험하면 장애라고 걱정하거나 문제를 삼기보다는 “벌써 나이가 들었나보다”라고 생각하거나 “요즘 여러 가지로 힘든 모양이네”라고 짐작한다. “유통기간이 지나” “성생활의 정년”이 찾아오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거나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고개 숙인 남자”가 되었다고 해석한다. 이 과정에서 성적 장애를 존재의 이유와 연결시키며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남편을 보면서 성에 집착하는 남성을 새삼 발견한다. 삶에 대한 의욕을 잃거나 가정에서 짜증을 내는 남편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측은지심을 느끼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성생활을 즐길 수 없다는 것 못지않게 남편의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미 파산한 줄 알았던 남편의 성이 희망적인 “관리대상 종목”으로 변하는 것을 보면서 비아그라를 복용한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뛰어봐야 벼룩 아니겠는가. 남편이 어디에 비아그라를 숨겨두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잠자리에서 자신 있게 행동하는 남편을 보면서 복용 사실을 눈치 챈다. 다음 날 숨겨 둔 곳에 가서 남은 알을 세어 보면 틀림없다. 하지만 남편이 숨기고 싶어 하면 자존심을 건들이지 않기 위해 모른 체 해준다. 남편의 비아그라 복용이 긍정적인 것은 성생활이 다시 원활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비아그라를 복용하면서 자신과 아이들에게 친근감이 넘치는 남편이 보기 좋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편이 가정과 직장에서 제 역할을 찾아가는 것이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성에 대한 욕구충족 못지않게 측은한 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마음이 앞서는 것이다.
이런 전형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조심스럽게 추측을 해 본다면 비아그라와 관련해서 성 담론을 전개하는데 여성이 남성보다 여전히 소극적인 것 같다. 자리만 깔아주면 성 이야기로 꽃을 피우는 남성과 달리 필자가 접한 여성의 다수는 절친한 친구와도 성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우연치 않게 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깔깔거리고 즐거워 하지만 남성과 달리 노골적이고 자기고백적인 대화는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분명했다. 남성 파트너와 성에 관한 대화를 하는 방식도 상당히 수동적이며 성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키는 것 보다는 대화자체를 즐기는 것이 목적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필자가 직, 간접적으로 면접한 여성이 모두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여성이 성에 관한 대화에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재미있는 것은 남성이 여성보다는 자신의 성적 파트너와 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여성이 남성의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대화방식을 진정한 대화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이 성에 대한 노골적인 묘사를 기피하는 것과 남성의 공격적인 대화방식을 꺼려하는 것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여성은 성을 은밀하고 조심스런 방식이 아닌 남성적이라고 느끼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것이다. 남성중심의 성 문화의 부작용이 여성의 잠재적 피해의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성이 비아그라의 등장을 남성보다는 덜 감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분명한 것 같다. 비아그라 덕택에 파트너와의 성생활이 근본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이다. 성이 삶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남녀 간에 차이가 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남성이 훨씬 발기와 삽입에 집착하는 반면 여성이 다른 방식의 애정 표현을 중요시한다는 통계들도 이런 차이를 설명해주고 있다. 물론 여성이 성적 파트너의 발기부전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발기부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남성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남성과 비교해 볼 때 여성은 발기부전을 자신의 성생활보다는 성적 파트너의 좌절감이나 애정관계 전반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서 고려하는 경향이 많았다.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 것은 발기부전 환자가 고령층으로 갈수록 많다는 사실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상의 차이점을 고려해 볼 때, 비아그라에 대한 담론이 남성 편향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비판에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좀더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의 남성과 여성이 발기부전과 비아그라를 대하는 태도에 차이점만큼 공통점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 같다. 앞에서 주장한 바와 모순되게 들리겠지만, 발기부전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심각한 문제이다. 다만 심각한 이유가 상이할 뿐이다. 또한 표면적으로는 남성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의 훼손을, 여성이 가정이나 애정관계를, 더 염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남성이 비아그라라는 보조수단을 통해 성적 정체성을 회복하려고 노력하는 이면에도 가정과 애정관계에서 의무를 다하려는 동기가 내재되어 있다. 무엇보다, 여성이 발기부전을 겪는 성적 파트너의 건강을 염려하는 반면 남성은 발기능력의 회복에 더 힘을 기울이지만, 양자 모두 발기부전이 비아그라와 같은 보조수단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성과 남성문화를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의 시각에 차이점 못지않게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4. 요약 및 결론
비아그라는 한국남성의 기존 성 관념에 의해 상징적 의미를 부여받으며 등장했지만 동시에 이 성 관념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촉매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비아그라의 등장은 나이가 들거나 쇠약하면 나타날 수 있는 범상한 병으로 간주되어 왔던 발기부전을 비정상적인 장애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변화는 남성이 노쇠함에 따라 남성성의 훼손은 자연스럽고 불가피하하다는 통념을 서서히 바꾸고 있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정상적인 발기부전 남성’으로 간주되어 왔던 노인이나 병약자들이 ‘비정상적인 발기가능 남성’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비정상의 범주를 확장하여 상업적 이윤을 실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일면적이다. 자연스럽게 인식되고 정상적인 범주로 분류되면서 오히려 억눌려 있던 이들의 성에 대한 권리가 역설적으로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의 공론화도 비아그라의 등장이 한국사회에 가져온 주목할 만한 변화이다. 금기어에 가까웠던 발기부전이라는 용어가 일상화된 것은 물론이고 이 약품을 매개로 성, 특히 남성성에 대한 담론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발기부전을 경험하는 부부 간에 대화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은 상당부분 비아그라의 덕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비아그라가 가져 온 성의 공론화는 제한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비아그라가 여전히 사적이고 은밀한 약품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아그라를 품에 넣고 다니는 남성에게조차 비아그라는 여전히 공적으로 자신과 무관한 약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남성이 비아그라에 의존하는 것은 여전히 자연스럽고 건강한 남성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 때 비아그라가 한국사회의 성성(sexuality)과 성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일방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거나 일방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비아그라가 미친 영향력의 정도를 일방적으로 과장하거나 축소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 비아그라는 한국의 남성에게 남성성의 훼손을 손질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비아그라에 의존하는 것을 남성성의 훼손으로 보는 사회적 관념이 엄존하는 현실에서 비아그라는 한국남성에게 은밀한 보조수단일 뿐이다. 비아그라의 기능적 효용성은 한국남성의 시험을 통과했을지 모르지만 사회문화적 효용성은 여전히 제한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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