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류학회 논문 ‘한국 사회의 남성 만들기’
정유성(서강대 교수: 교육학)
둘러보니: 남성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 남성성의 구조와 형성과정
인류는 생겨나 자라오면서 자연 생태계의 양성평등 또는 모성 중심이라는 일반법칙을 거스르고(최재천 2003), 야만성을 피 속에 담아 남성중심의 폭력과 억압구조를 만들었다. 인류가 계통발생 과정에서 만들어 낸 남성 지배체제는 그렇다고 ‘주어진 운명’(랭햄/피터슨 1998)은 결코 아니다. 살아남기를 빌미로 오로지 힘의 법칙에 매달려 남성의 폭력과 억압을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쪽으로 역사의 물꼬를 텄을 뿐이다. 그 바람에 남성의 악마성을 키우고 또 마음껏 휘두르는 남성 지배체제인 가부장제가 삶의 온 자리에 터 잡고, 끊임없이 이어가는 쪽으로 역사가 흐르고 말았다.
인류역사는 힘 가진 남성들이 권력을 독차지한 채, 여성들과 그 밖의 사람들을 ‘타자화(他者化)’하고, 억누르며 다스려 온 기록이다. 힘을 가진 남성들은 그렇지 못한 남성들을 포함해서 사람 사이를 안팎이나 위 아래로 가르고 나누면서 신으로, 왕으로, 아버지로 군림했다. 이는 고대로부터 봉건시대에 이르기까지 삶터 어디서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시대에 따라,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정도를 달리 해 나타났다. 이렇게 제 각각 전통적 가부장 제도의 잔재(殘在)가 쌓이고 이어지다가, 지구촌 한 구석에서 생겨난 자본주의가 세계체제로 커지고 전 지구적 가부장제의 전제(前提)로 자리 잡으면서 현대 가부장제와 이에 따른 근대적 남성성 신화, 남성 이데올로기가 땅 끝까지 퍼져나갔다. 이것이 지구촌 곳곳에 이미 오랫동안 자리 잡은 가부장적 문화와 부딪치기도 또 손잡기도 하면서, 이른바 ‘보편적 현대 남성성’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현대의 가부장 남성 지배체제는 남성성의 틀과 신화를 서구 중심적, 이성(理性) 중심적으로 바꾸었을 뿐 아니라, 남성들을 그밖에 인종, 계급의 복잡한 질서 안에 산업사회, 소비자본주의 사회에 맞춤한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그러면서 ‘초대형 담론’의 남성성 신화에 묶인 단일대상으로 재구성했다.(Connell 1995)
현대 남성성은 그 틀을 아직 굳건하게 지키고 있지만, 요즈음 문명전환과 함께 생활세계와 성(gender)개념 및 성역할의 변화(Butler 1990; Gardener 2002), 여성운동에 따른 남성위상의 변화(Pease 2001), 그리고 탈산업사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가족과 직업세계의 변화(Bey- non 2002; Messner 1997) 등을 겪으면서 위기에 빠지고 또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무엇보다도 남성 지배체제와 남성성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인 여성들을 비롯하여 문화적 타자 집단들의 해방운동 노력을 통해 거꾸로 남성성을 새롭게 새겨보고 따져보게 된 것이다. 거듭 변화를 겪게 된 오늘날 남성성의 특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남성성은 여성성이나 마찬가지로 사람의 본질이나 속성이 아니라, 권력을 고루 나누지 않고 서로 가르고 나누어 온 역사 그리고 사회문화의 흐름에 따른 ‘성의 형성과정(engende- ring)’의 결과다.(Bönisch-Winter 1997; Kimmel 2004) 다만 남성성은 사회 지배관계의 영향으로 여성성보다 더욱 강하게 개인 정체성을 틀 지우고, 개인은 개인대로 이를 심리적, 사회적 폭력과 억압의 기제를 통해 되받는다.(Cohen 2001; Gottschalch 1997) 남성성은 ‘인공의 제조물’이며(바텡데 2004), 그럴수록 개인의 존재성을 묶고 옥죄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볼린 1994)처럼 모든 남성을 짜 맞춘다.
둘째, 남성성은 그러면서도 하나 뿐인 보편적인 ‘남성성(masculinity)'이 아니라, 다양한 ‘남성성들(masculinities)’로 나타난다. 남성성들은 복합적인 층위에서 사회적, 심리적 또는 문화적으로 서로 부딪치고, 다투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렇다고 같은 힘과 무게로 나란히 있는 것이 아니라 위계질서를 만들면서, 그 중 한 사회 안에서 같은 시대에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또 구성원들이 좇는 남성성을 ‘지배적 남성성(hegemonic masculinity)’으로 삼는다.(Bosse/ King 2000; Connell 1995, 2000) 오늘날 한편으로는 서구중심, 이성 중심, 이성애 중심의 ‘비즈니스맨 남성성’(Connell 2001)처럼 표준 남성성이 전 지구적으로 앞장서서 날뛰고 있다. 다른 한편 다양하기 짝이 없는 남성성들이 저마다의 성적 취향,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각각, 또는 탈(脫)국가적 그리고 범(凡)국가적 차원에서(Cleaver 2002; Pease/Pringle 2001) 나타나 서로 엇걸리고 이어지며 또 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셋째, 남성성은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삶의 꼴 뿐 아니라 문화로서, 생활세계의 경험으로서 존재하며 ‘사이비 천성(Pseudonatur: Dahmer 1982)’으로 남성의 정체성을 만든다. 여기서는 지배적 남성성이나 다양한 남성성들이 다채로운 방식으로 접합(接合)하고 착종(錯綜)되며, 나아가 자발적 또는 타율적으로 제들끼리 분할 통치하면서 이른바 ‘남성 아비투스’(부르디외 2000; Brandes 2002)로 재생산된다. 이렇게 남성 개인의 삶 전반, 특히 그 깊숙한 행태와 관행에까지 스미고 젖은 남성 아비투스는 남성들 뿐 아니라 사람끼리 모여 사는 삶 전반에, 그리고 사람 관계, 자신과의 관계에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살펴보니: 한국의 남성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가부장적 근대화 프로젝트와 한국 남성성
한국 사회 남성성 또한 위에 둘러본 큰 틀 속에서 만들어졌고, 또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그 과정이 다른 사회, 문화에 견주어 뒤틀리고 일그러져 한 마디로 ‘아수라장’을 이룬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현대 남성성 만들기만 해도 그렇다. 남의 손에 끌려 억지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들어설 때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식민경험과 내전, 그리고 이어지는 권위주의 군사정권의 폭압을 거치면서 갖은 고초를 겪었다. 와중에 죽기 살기로 산업화에 매진한 끝에, 압축적 성장을 통해 겉보기엔 풍요로운, 하지만 안으로는 엉망진창인 천민자본주의 근대화를 졸속하게 해치웠다. 그 바람에 전통은 단절되고 가치는 혼미해져, 세상은 온전하지 않고 온통 찢겨져 버렸다. 이른바 ‘비(非)동시적인 것의 동시성’을 띈 엉성한 사회질서와 문화적 ‘구조적 혼재(混在)’에서 오는 어질머리(정유성 1998)가 아프기만 한데, 새로 밀어닥친 지구화 바람, 개인화라는 질곡 등 포스트모더니즘 장단까지 맞추자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병이 깊을 수밖에 없다. 한국 남성성은 이런 역사상황과 사회문화의 맥락에서 짜 맞춰 만든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오늘날 한국사회 남성성은 온갖 남성성 귀신들이 벌이는 난전일 수밖에 없다. 단절되었다지만 아직도 질기고도 역한 숨을 잇고 있는 유교 이데올로기에 따른 봉건적 남성성, 제국주의 남성성에 대한 피해망상에서 과대망상으로 뒤틀어진 신식민주의 남성성, 물화(物化)된 남성중심 성문화로 상징되는 천민자본주의 남성성, 군사주의와 일상적 파시즘에 물든 가학-피학적 남성성, 부분적 성공과 한류 열풍으로 거들먹거리는 전 지구적인 비즈니스맨 남성성, 개별화되고 파편화된 곁가지만 무성한 포스트모던 남성성 등이 한국 남성성의 번다한 차림표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것들을 섞바꿔 가며 남성성을 상 차리지만, 사회 자체가 다양성을 받아들이지도, 그렇다고 개인이 다채로운 남성성을 입고 또 살지도 못하는 터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하나가 이끌어 가는 꼴도 아직 아니다. 단일한 지배적 남성성이 워낙 오랫동안 저 혼자 위세를 떨쳤고 지금도 멀리, 그리고 깊게도 그늘을 드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유교 이데올로기에 따른 전통적, 봉건적 남성성에서 비롯되어 탈바꿈만 거듭해 온 권위주의 남성성이 그것이다.
유교 이데올로기는 거꾸로 전통적, 봉건적 남성성 속에 ‘뿌리 너무 깊은 나무’(이윤기 2003)로 끈질기게 살아남아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근대화 과정에서 이른바 ‘가족 로망스’를 통해 공개적이고 집단적인 ‘아버지 죽이기’(헌트 1999)라는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한 탓이다. 오히려 식민지라는 아버지 빼앗긴 시대를 지내면서 아버지와 닮은 토템인 ‘제국주의 논리’를 섬겨 이를 내면화하기에 이른다.(박노자 2003) 이렇게 살아남은 전통적, 봉건적 남성성은 한편 제국주의 남성성을 내면화하면서 동시에 식민경험을 통한 노예의식, 그리고 타자화된 집단에 대한 ‘마름(舍音)’의식마저 더해 사뭇 병리적이고 기형적으로 쏠린다. 특히 이데올로기 대리전인 내전을 겪으면서 아버지 대신 잔혹한 형제살해나 저지르면서 정신분열적 증상과 더불어 피해망상에서 우러난 과대망상으로 잔인한 ‘가학-피학성’(챈서 1994)마저 띄게 된 것이 그렇다. 이는 냉전논리에 따른 음습한 환경에서 더욱 독버섯처럼 번창하여, 이어지는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시대 졸속한 산업화를 통한 사회 해체과정에서 극에 달한다. 마름의식에 이은 ‘하우스 뽀이’ 멘탈리티 같은 신식민주의 정체성에다가 이른바 건강한 초자아를 ‘폭군심급(tyrannische Instanz: Amigorena/Vignar 1979)’으로 갈음한 비루하고 덜떨어진 남성성마저 낳는다.
권위주의적인 남성성은 기형적 ‘자기 완결체계’를 갖는다. 찢겨진 세상의 유기적 통일성을 억지로라도 되찾고, 자신의 초라한 몰골을 덮어 가리는 방패막이를 바로 부계 혈통주의부터 남성 국수주의로 이어지는 ‘완강한 가족주의’에서 찾는다.(임지현 2000) 피붙이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집착과 더불어 확대된 혈연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연이나 학연으로 울타리를 넓히되, 그 배타성은 더욱 강해지는 못나고도 못된 패거리 문화가 그 두드러진 모습이다. 한국 남성들은 누구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줏대 없이 자아가 취약한 남성들은 ‘나’는 없고 ‘우리’만 있는 패거리에 기대 살아남으려 든다. 하지만 패거리에 기대 얻어걸린 남성성은 당연히 전체적이고 추상적이다. 봉건지배, 식민지 경험, 이데올로기 대립을 통해 남성의 ‘단일한 정체성’을 요구하던 데서 비롯된 이 전근대적 남성성의 잔재는 이제 ‘획일을 강요하는 강압적인 동질성’으로 오늘의 남성성을 싸잡는다.(임지현 2000) 한국남성은 이렇게 ”’동일자(同一者)’로, 위계에 따라 서열화 된 경직된 단일주체“(조한혜정 1998)로 존재할 뿐이다. 시민은 없고 국민만 있는, 개인은 없고 가족이나 패거리만 있는 삶터에 중음신(中陰身)들로 떠돌며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근대화를 통해 파행적이고 왜곡된 남성성을 ‘악개발(maldevelopment: Shiva 1998)’한 탓에 드러나는 모습 중 가장 흉물스런 것은 앞서 살펴본 ‘남성 아비투스’ 중 가장 못나고 못된 ‘일상의 파시즘적 아비투스’다. 지배적인 특정 담론을 집단 차원에서 권위로 강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갖은 억압과 폭력의 기제를 동원하여 사람마다 생김과 속내까지 스며들도록 하여 사람을 억누르고 그예 망가뜨리는 일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남들에게 손가락질 하며 손가락 잘라서라도 안팎으로 겁주는 ‘폐쇄적 민족주의’ 담론이나, 아직도 우리 모두의 의식 안에 불침번 서고 있는 ‘반공규율’(권혁범 2000), 일상을 가로질러 여전히 얼차려 주고 있는 군사주의에서 나온 가부장적 ‘위계와 권위의 멘탈리티’(권인숙 2002), 정 안되면 나이로라도 눌러보려는 알량한 연령주의(조한혜정 1996), ‘아이돌’ 스타는 껍데기를 벗겨서라도 팔아먹지만 기존질서에 시비 거는 아이들은 입시교육으로 재갈 물리고 학력사회로 주리 트는 반교육적이고 비인간적인 교육 지상주의(정유성 2002)까지 한국 사회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버릇이 돼버린 행태와 관행 말이다.
들여다보며: 한국의 남성성은 무엇으로 사는가?
- 일상의 파시즘적 아비투스 재생산
일상의 파시즘적 아비투스는 한국의 가부장주의 남성 지배체제의 원리와 남성성의 구성 및 운영원칙에서 온 당연한 결과다. 이는 남성 개인의 남성성을 막무가내로 보쌈 하는 과정은 말할 것도 없고 이렇게 얻어걸린 자신의 단순, 무식한 남성성을 남들에게 억지로 덮씌우는 과정에까지 어김없이 드러난다. 특히 학교교육과 군대경험, 또는 사회에 만연한 군사주의를 통해 훈육과 감시, 감시와 처벌을 거듭해 이를 강화한다.
한국 교육은 제도서부터, 의식, 현장의 일상까지 여러 가지, 아니 온갖 문제를 죄다 지니고 있지만,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을 제대로 만들고 길러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교육은 무릇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길러내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 교육은 학습, 그것도 시험 잘 치르는 공부에만 매달려 사람 만드는 일은 소홀히 한다. 비단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일차 사회화가 일어나는 가정에서부터 그렇다. 남성들을 남성성 규격에 맞추어 ‘귀남이’로, ‘동굴 속의 황제’(전인권 2003)로 기른다. 학교에서 또한 성인지력을 키우거나 양성 평등한 삶의 채비를 해주기보다는 ‘성공과 출세’만 강조한다. 그러면서 기존 가공(架空)의 성 정체성만 강조하는, '무성성(無性性)'을 가장한 가공(可恐)할만한 ‘잠재적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을수록 가슴깊이 새겨지는 성차별을 재생산 한다.(정유성 1998)
군사주의는 마치 평생교육의 이념처럼 삶 곳곳에, 삶 전반에 걸쳐 깃발을 나부낀다. 졸속한 산업화 과정을 국민 총동원 체제로 사회 전반을 병영화 하여 ‘안 되면 되게 하라’고 함부로 밀어 붙인 탓에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하지만 군사주의는 이제 그것이 비단 군대경험을 통한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 아비투스’, 나아가 ‘일상의 파시즘적 아비투스’로 규격화, 표준화되어 마구잡이로 깃발을 휘두른다. 그것이 가장 적나라하고 흉하게 드러나는 모습이 다름 아닌 남성중심 성문화, 아니 성작태(性作態)다. 흔히 말하는 성의 아노미가 가장 심하게 그러면서도 교묘하게 감추어진 사회가 바로 한국사회다. 한 때 ‘페니스 파시즘’(노혜경 외 2001)이라고 날카롭게 지적되었듯이 여전히 소유와 지배, 권력의 놀음으로 성과 사람을 도구화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급기야 스스로 망가진다.
한국처럼 ‘게임의 법칙’이 가차 없이 또 살벌하게 적용되는 사회에서는 이러한 남성 지배체제와 남성 아비투스에서 벗어나기는커녕 비껴서기 조차 쉽지 않다. 이른바 ‘사회적 죽음’ (Erd- heim 1984)을 무릅쓰지 않고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 그대로 ‘억지춘향’으로 그 남성성을 몸 입고, 마음 살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정유성 2003)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고 사람도 달라진다. 지난 동안 한국 사회에도 여성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법과 제도가 제법 마련되었다. 어디서나 여성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자 한국 남성들은 알게 모르게 흔들린다. 그동안 성공과 출세만 보고 내달았던 이들은 급기야 ‘경쟁-경력-경화(Konkurrenz- Karriere-Kollaps: Bründel/Hurrelmann 1999)라는 악순환에 빠져 든 초라하고 불쌍한 본새를 하릴없이 마주본다. 그러자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우스꽝스럽게 마주한다.
게다가 ‘뿌리 너무 깊은 나무’의 든든한 토양이 사라지고 있다. 직업과 가족이 무너지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한 때 산업역군으로 나섰을 때 마치 병영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던 일터는 더 이상 평생직장이 아니다. 진작부터 소모품으로 영혼의 노숙자로 언제 내몰릴지 모를 불안에 잘 나가던 과거를 ‘화장(火葬)’하며 철지난 남성성을 분칠한 ‘화장(化粧)’을 지울 수밖에 없다.(김훈 2004) 한 때 언제고 돌아와 푸근하게 쉴 수 있었던 품인 가족은 더 이상 비빌 언덕이 아니며 남성, 특히 아버지의 자리는 좁기만 하다. 이를 못 견딘 어떤 아버지는 모두가 여성들 탓이라며 불쌍하다는 상처를 덧내 자해공갈을 일삼거나(김정현 1996), 덫에 치인 멧비둘기처럼 몸 둘 바를 몰라 하며(김소진 1995), 굳이 공개적으로 처형하거나 몰래 고려장 지내지 않아도 스스로 죽어가고 있다. 이런 죽음이 두려운 젊은 남성들은 아버지 되기를 거부하며 이른바 ‘포스트모던 뽀이’로 파편처럼 부서지고 형해(形骸)만 남은 가건물 같은 개인성에 도피하고 매몰되어 단절과 소외를 자처하기도 하지만 그 노릇조차 쉽지 않다.(윤대녕 2004).
찾아보니: 한국의 남성성은 새로 태어날 수 있을까?
- 비판적 자기성찰과 젠더적 자살
지금, 여기 한국 남성성은 이 모양 이 꼴이다. 그것은 아마 앞서 번거롭게 둘러보고, 훑어보고, 또 살펴보았듯이 역사상황과 사회문화의 맥락이 그 지경인 탓일 게다. 하지만 남성성은 늘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지금 이대로 못나고 못된 한국남성들이 꺼떡거리며 사회를 지배하고, 일상적 파시즘으로 안팎을 폭력으로 다잡으며 남들과, 서로를, 그리고 자신을 부수고 있는 한 사람다운, 그리고 사람 사랑하는 일이 어렵지 않을 세상은 결코 만들 수 없다. 그러니 철저하고 처절한 문제인식과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물론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늘 악어의 눈물로 반성문만 쓰는 척, 과거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 또한 한국 남성성의 특성이다. 게다가 위험한 수준에 이른 것은 이른바 사이비 깨인 남성들의 거짓 반성이다. 사실 이는 모든 것을 여성들의 농간, 음모, 수작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자신의 비루한 꼴을 감추려는 안간힘보다 더 무섭다. 이제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한 때 내 영혼을 흔들었던 살벌하기 짝이 없는 화두가 생각난다. “지식인들이 계급, 계층의 평등을 이룩하려면 하루에도 몇 번씩 상징적이나마 계급, 계층적인 자살을 꾀하지 않으면 안 된다“(프레이리 1980)는 준열한 질타가 그것이다. 이제라도 남성들 스스로 뼈를 깎는 반성과 성찰을 거듭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젠더의 의미에서 상징적인 자살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고한 책과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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