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의 뉴스서비스, 어떻게 볼 것인가?···포털 저널리즘에 대한 소고
들어가면서
포털 뉴스를 보는 눈. 지난 번 연예인 x 파일 사건 때만 하더라도 포털 뉴스에 대한 악담이 많이 쏟아졌다. 단순한 악담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은 그 동안 포털이 보여준 행태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탓이리라. 그 동안 포털은 책임지는 자세보다는 책임을 미루는 모습을, 긍정적 언론문화보다는 부정적 언론문화를 조성하는 쪽을 택하고, 숙의적 내용보다는 단발적 내용을 싣는 등 사회적 비난 여론에 직면해 왔다. 물론 비판 일색만은 아니다. 포털이 종이 신문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언론 형태이기에 타 언론과의 관계 속에서만 생각할 일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포털에 쉽게 자신을 내맡긴 언론의 문제일 뿐 포털에 책임을 넘기는 일은 표적이 빗나갔다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과거 저널리즘 논의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던 포털 뉴스는 이제 다양한 형태로 논의되는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사회적 의제로 떠오른 포털 뉴스에 대한 논의의 켜는 그리 두텁지는 않다. 종이 신문의 위기와 연계되어 논의되거나, 뉴스의 대상 인물의 인권과 연관되거나, 포털의 사업 다각화와 포털 뉴스의 내용 간 음모론적 연계가 논의되긴 하지만 이 역시 단발적이다. 아직까지 포털의 정치경제학적 측면, 포털의 언론적 측면, 포털 뉴스의 구체적 구성 등은 많은 논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급격하게 신문 산업이 위축되자 포털에 가해지는 눈길은 많아졌으나 구체적이고 엄격한 분석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는 상태다. 여전히 포털, 포털 뉴스는 사회적 의제이기는 하되, 더 많은 학술적 논의, 사회적 인식과 논쟁 그리고 합의를 기다리는 의제인 셈이다.
사회적 토론을 기다리는 사회적 의제들의 경우 논의의 물꼬가 앞으로의 운명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논의의 물꼬를 트는 일은 문지방 효과를 낸다. 문지방을 어떻게 넘어서느냐에 따라 그 다음 행보가 정해진다는 말이다. 사회적 토론에서는 그처럼 문지방 넘기가 중요하다. 문지방 효과의 예는 많다. 오락 매체로 인식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텔레비전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로부터 ‘바보상자’라는 인식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불량스러움과 연관되기 시작한 만화가 겪고 있는 고통도 그와 유사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00 게이트’라고 이름 붙이는 것도 우선은 그것이 권력남용과 연관이 있음을 인식시키고자 하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 아직은 사회적 논의로부터 약간은 비켜 서 있었던 포털은 과연 어떻게 그 논의가 시작되어야 하는 것일까? 포털 뉴스가 저널리즘의 영역에 들 수 있는가, 아닌가 혹은 신문과 관련된 법규로 비추어 인터넷 신문인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하자는 주장도 있다. 현재 포털 뉴스가 사회 의제설정(agenda-setting)에 큰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저널리즘 영역에 가두고 그 영향력에 버금가는 책임을 강조하자는 의도라 짐작된다. 하지만 그 같은 시작은 규제에 더 많은 강조를 두고 있기에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포털과 그가 제공하는 뉴스에 대한 체계적인 언급없는 문지방 넘기는 위험할 수밖에 없다. 지금 적히는 이 글은 그 문지방의 모습을 가늠해보기 위한 일종의 시작(試作)이다.
사회적 소통에 대한 고민
한국은 이른 바 ‘사회적 소통’과 관련된 딜렘마에 빠져 있다. 그 딜렘마는 전방위적으로 산포되어 드러난다. 우선 통신 영역에서의 사회적 소통에 대한 압박은 엄청난 무게로 다가오고있다. 공익성을 강조해왔던 방송에 시장경쟁을 모토로 내세우며 통신영역이 도전하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듯 하고, 융합을 둘러싸고 각 국가 기구들은 통제권을 쥐려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공공 영역이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 사건을 두고도 기술결정론적 시각에 기댄 낙관론들이 우세하다. DMB, IPTV, Take-out TV, 와이브로 등등의 신기술적이고 신매체적 소통들을 앞세워 사회적 소통의 혁신이 일어날 것처럼 외치고 다닌다. 이른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자’는 국가주의적 슬로건에 북을 치듯 뒤따르다, 이젠 자신이 앞장서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같이 화려한 슬로건의 이면에는 사회적 소통이 어두운 그림자 안으로 밀려들어가는 딜레마적 사건도 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 같다.
자구책을 미리 구하지 못했거나 스스로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행태를 보여 온 탓이기도 하겠지만 - 이유야 어떻튼 - 인쇄 매체는 위기 이상의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그 동안 사회 여론을 주도하며 가장 큰 영향력을 자랑하던 신문매체는 사양산업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그 위치가 하락하고 있다. 인터넷의 토론방들의 활기와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 숙의 민주주의(deliberate democracy)의 전형을 보여줄 것처럼 기세가 등등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의 모습은 초라하기 조차 하다. 인터넷은 이제 친구 찾기, 친한 사람 확인하기, 자신의 솜씨 뽐내기 등등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니면 상품의 정보를 구하고, 구매하는 시장의 모습도 강하게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방송 또한 마찬가지다. 항상 공공성을 중심으로 논의되던 지상파 방송도 주변부였던 케이블이나 위성의 도전, 그리고 모바일임을 자랑하는 위성 DMB 등으로 생존이라는 극한 단어를 들먹이며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해가고 있다.
이른바 사회적 소통의 존재 이유가 ‘상업성’으로 판단 받는 시기를 맞이한 것이다. 사회적 소통의 딜렘마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소통을 유도해낼 채널이 전에 없이 늘어났지만 실질적인 소통은 - 소통자격이 상업성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 편향적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한 흐름인 규제완화 혹은 탈규제에 편승해 사회적 소통마저도 ‘상업성이라는 그늘 에 잠식되었다. 신문은 괜찮고, DMB는 나쁘다는 본질적 논의를 펼치자는 것은 아니다. 매체 간 균형발전, 매체를 통한 사회의 성숙, 그를 통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꾀하자는 것이 사회적 소통 문화의 목표일 터인데 지금 흘러가는 방향은 그렇지 못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매체 양적 증가와 경제적 발전을 묶고 그를 통한 사회발전이라는 편향된 논리가 활개를 치고 있다. 인터넷에 대한 믿음도 이미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버렸다. DMB도 논의도 그에서 한 발자욱도 벗어나지 않는다. 방송 통신 융합 또한 그런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마땅하나 경제적 논의를 앞세운 통신의 약진이 두드러져 보이고 있으니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80년대 국가에 의한 3s 전략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정치적 고민을 뒤로 하고, 스포츠와 재미와 선정성을 앞세운 영상으로 시민들을 끌고 가게 하는 국가 전략이 있었음을 주장하는 말들이었다. 지금 우리는 다시 그 시대를 맞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기에 딜렘마인 것이다. 물론 그 주체는 바뀌었다. 새로운 주체는 자본이다. 대자본을 앞세운 새로운 매체들은 문화할인률이 낮은 3s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 크게 공을 들이지 않아도 재미를 구할 수 있는 문화 할인률이 낮은 3s의 융단 폭격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대자본을 앞세운 이들이 사회적 소통을 주도하게 되면, 그 동안 사회적 소통에 참여하던 다른 매체들도 그를 닮게 된다. 동화현상은 불가피해지고, 우리의 사회적 소통은 편향적이고, 일률적이며, 상업적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게 될 전망이다. 포털의 문제 또한 이 같은 맥락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포털은 문제의 영역인가?
포털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포털의 진화과정을 살펴보자. 포털 마다 차이는 있지만 포털은 애초 e-메일 서비스를 걸고 회원을 모아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에 광고를 싣는 모습을 띠었다. 이 메일 주소를 지니고 있지 않던 많은 이들은 여기 저기에 등록을 하였고, 여러 개의 이 메일 주소를 지니게 되었다. 사실 이 때 이 메일 서비스를 누가 더 잘하느냐가 포털의 성패를 좌우하고 있었다. 이 때만 하더라도 포털 사업의 미래는 불명확한 것이었다. 포털 사업이 안정 기조에 들어서게 된 것은 포털이 제공한 네트워크 즉 코뮤니티 서비스의 성공 이후라고 하겠다. 이 때부터 포털은 네트워크와 상품정보 제공을 주 사업분야로 잡아가고, 정보 사이트를 소개해주던 중계자 역할에서 정보를 갈무리하는 포털 뉴스가 자리를 잡아간다. 포털은 언론을 정보제공업자(IP)로 삼고 자신의 방식대로 뉴스를 선택하고 배열하는 적극성을 보인다. 이 메일, 커뮤니티를 찾거나 정보를 찾던 이들은 포털이 언론을 동원해 마련한 포털 뉴스를 클릭의 주요 대상으로 삼게 된다. 이로써 포털은 이 메일, 커뮤니티 활동, 상품정보, 그리고 언론의 역할을 하는 종합적 소통 채널이 된다.
포털은 이에 머물지 않고, 느슨한 형태의 오락적 네트워크(블로그, 미니홈피 등)와 게임 등 오락 서비스를 갖추면서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접어든다. 이른바 포털이 종합 엔터테인멘트 센터가 되었고, 이로써 포털의 오락적 성격이 강해지고, 포털에 접속만 하더라도 몇 시간 웹 서핑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른바 포털이 인터넷의 중심이 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앞으로 포털은 더 많은 진화가 이뤄지리라 예상된다. 주문에 맞는 맞춤형 서비스, 개인에게 실시간으로 모바일 기제를 통해 보내는 서비스 등등 모습을 다변화해 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진화는 앞서 제공되었던 포털 서비스에 보태지는 것들이기 때문에 포털의 아성은 쉽게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포털 간 경쟁은 치열해질 것이지만 인터넷이 포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것에는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온라인 소통을 주도하고 있는 포털은 과연 어떤 이유로 사회적 의제로 부상하고 있는가? 사실 온라인 상으로만 보자면 포털은 상업성을 적극적으로 띠기 시작했다는 점과 과거와는 달리 토론 중심의 커뮤니티 육성 보다는 일회적이고 덜 생산적인 커뮤니티 육성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상업성과 단편성 등으로 비판을 받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면은 포털 만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들이 겪고 있는 변화와 유사하기 때문에 포털만이 받아야 할 비판은 아니라 할 수 있다. 포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포털과 다른 매체와의 관계 즉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사회적 소통이라는 맥락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포털 서비스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고 있는 부분은 포털 뉴스 서비스 영역이다. 포털은 자신이 언론임을 부인하고 있지만 사실 포털이 서비스하는 뉴스 영역은 이미 기존 언론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20대의 경우 사회에 대한 정보를 포털 뉴스로부터 구한다는 이가 80% 정도에 이르고 있다 한다. 포털 뉴스로의 접근은 이미 생활화되어 있으며 다른 매체의 접근을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포털 뉴스 배열로부터 주요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뉴스는 포털이 가진 댓글 달기 기능, 쉽게 퍼 나르기 등과 어울려 엄청난 파급력을 갖게 된다. 신문이나 방송이 가진 의제설정(agenda-setting)력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설정력을 갖는 것이다. 연예인 X 파일 사건이 그 예라 하겠다. 만약 그 사건이 인터넷 포털 이전에 발생했다면 뒷 이야기로만 떠도는 수준에서 그치는 등 사건 자체가 긴 생명력을 가지지 못했을 수 있다. 하지만 댓글달기, 댓글을 통한 새로운 정보, 퍼 나르기 등등으로 X 파일 사건은 길고 긴 생명력으로 모두가 관심을 갖는 사건으로 자리 잡았다. 포털이 직접 뉴스를 생산하지는 않지만 선택과 배열이라는 편집 기능을 통해 뉴스의 가치에 변화를 주고, 의제를 설정하기도 하는 것이다.
포털의 선택과 배열의 대상이 되는 뉴스들은 포털과 계약을 맺은 언론사, 정보제공사에서 제공되는 것들이다. 뉴스 내용이나 질은 제공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으나 포털의 뉴스 창에는 그 생산자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아 모든 뉴스들은 등가치의 대접을 받는다. 심지어 이니셜 투성이의 ‘파파라치성 뉴스’들로 공을 들여 생산된 뉴스를 압도하며 포털의 전면 창에 오르는 대접을 받기도 한다. 언론이나 뉴스 제공자는 포털과 계약을 하는 순간 모두 같은 수준의 제공자로 대접받으며, 제공되는 뉴스가 가치를 갖는가 아닌가 하는 결정은 전적으로 포털에 의존하게 된다. 포털이 편집자가 되고, 게이트 키퍼(gatekeeper)가 되는 셈이다. 이미 만들어진 뉴스를 다른 창구를 통해 판매하게 되어 언론은 소위 창구효과(window effect) 혹은 OSMU(One Source Multi Use)를 누리게 되었지만 자신의 의도대로 뉴스가 수용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보자면 소통에서는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뿐만 아니라 포털은 한 눈에 여러 형태의 정보를 볼 수 있다는 편의성을 제공하기에 있기에 언론이나 정보제공자는 경쟁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포털은 언론과 정보제공자의 권위를 와해시키는 동시에 자신이 언론적 권위에 올라서는 해체적(de-construcstion) 권력을 쥐게 되는 것이다.
포털의 (징후적) 정치경제학
포털의 해체적 권력은 포털도 의도하였거나 예상한 부분은 아니었다. 포털은 자신에 주어지는 뉴스 중 방문자들이 관심을 가질 법한 뉴스를 선택해 배열하는 데 열중했을 뿐 기존 매체를 와해하거나 약화시키는 의도를 가지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포털에 뉴스를 제공하는 편에서도 그런 부분 우려를 했다는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포털이 언론의 가치를 더욱 키워줄 것이라 기대했던 증거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포털을 결코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탓인지 스스로를 언론으로 사고하거나 규정짓지 않고 뉴스 유통자 혹은 중계자로 규정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미디어라고 부르는 방식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포털이 타 매체를 해체하는 결과를 낳은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다. 포털이 지니고 있는 기본 성격 탓이다.
앞서 밝혔듯이 포털은 심한 경쟁 속에서 상업성을 띨 수 밖에 없는 정보상품의 생산자다. 정보를 상품으로 만들어 이득을 취하면서도, 통신의 영역에 포함되어 공공성이나 공익이 크게 강조되지 않는 주체다. 정보고속도로 형성에 심취해 극단의 선정성이나 반국가적 메시지 등이 아니면 제재를 하지 않는 틈을 타서 인터넷 영역은 공공성, 공익성과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인터넷이 오락적 성격을 강하게 띠어가면서 정보상품도 오락성 중심으로 재편되기에 이르렀다. 눈에 잘 띠이고, 누구에게든 많이 읽히기만 하면 정보로서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인터넷이 등장할 때 기대되었던 소위 깊게 소통되고, 쌍방적으로 소통되어 숙의가 이뤄지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즉 최대공약수적 정보가 압도하게 된다. 이른바 포털 사업 방식이 정립되기 시작한 셈이다.
포털은 상업적 가치가 높은 정보 상품 중심으로 뉴스를 선택하고 배열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벌이는 사업에 유리한 선택과 배열을 하기도 한다. 포털의 사업이 다각화되면서 자신과 관련된 뉴스의 취급에 차별을 두게 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사업에 유리한 정보를 전진 배치하거나 불리한 정보를 은폐하는 일에도 익숙하게 된 것이다. 또한 뉴스에 따라오는 광고주에 대한 뉴스 배려도 불가피하게 되었다. 또 그 같은 포털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에 대한 외면 혹은 변형에도 손을 대게 되었다. 포털이 소비를 촉진하는 정보를 담아 판매하는 이상 상품소비, 그리고 생산을 담당하는 기업, 자본에 친근해진다. 자연스럽게 포털이 선택과 배열에서 고려해야 할 사안들이 많아진다. 포털의 정치경제학이 포털 뉴스의 질적 저하, 편향성, 정파성, 오락성으로 이끌었고, 타 매체를 해체하는 효과를 낳았다.
기존의 언론이 포털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포털 뉴스 서비스가 더 이상 힘을 갖지 못할 거라는 믿음이 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스포츠 신문들이 포털로부터 이탈을 꾀하는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서 깨지고 만다. 연예 오락 정보를 많이 가졌던 스포츠 신문의 연합 즉 파란 닷 컴이라는 독자적 포털 형성 이후에도 기존의 포털들은 더 큰 번성을 누린다. 이탈한 숫자보다 더 많은 정보 제공업자가 포털 주위로 몰려들었고, 지금은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더 정리가 되었다며 전혀 부족함을 못 느끼고 있다. 포털에만 뉴스를 제공하는 정보제공업자도 생겼다. 이른바 포털이 숙주가 되고 언론, 정보 제공업이 포털에 기생하는 관계 역전이 완성된 것이다. 포털로부터 선택되려는 욕망은 포털의 생리에 맞추어 뉴스를 생산하는 자기 비하적 언론문화로까지 이어진다. 정보를 제공하는 쪽이 정보를 유통하는 쪽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포털의 정치경제학이 작동하고 있음에 주목한 사회는 포털을 사회적 의제화하기에 이른다.
포털의 사회적 관리
지금보다는 나은 포털 뉴스 서비스를 요청하는 사회적 담론들이 쏟아져 나왔다. 포털의 일방적 독주가 더 이상 진전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나누어 가진 포털의 사회적 관리 담론들이었다. 그 첫 번째는 법제화를 통해서 포털을 언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자는 주장이다. 신문관련법 시행령 작성을 앞두고 포털을 신문의 영역으로 규정해보자며 쏟아진 제안들이 그것이다. 포털을 신문으로 규정하게 되면 당연히 포털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될 것이므로 지금 포털이 생산해내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제안들이었다. 적어도 포털 뉴스의 선정성 등으로 인해 생기는 인권침해의 문제(명예훼손, 프라이버시 침해 등), 수준미달의 기사 등등을 제거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의 제안들이다.
두 번째 담론 유형은 매체 균형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종이신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력, 그로 인한 매체균형발전의 저해를 우려하면서 제시된 주장들도 있다. 현재처럼 신문의 내용을 포털이 포털 내에서 전재하지 않고 이름 그대로 링크만 되도록 해 신문의 웹 사이트로 방문케 유도하는 대안이 제안되었다. 이름 그대로 중계하는 역할로 한정짓자는 제안이다. 세 번째 담론 유형은 언론이 중심이 되는 포털의 구축의 제안이다. 언론과 정보제공자들이 포털을 구축하여 양질의 뉴스 서비스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며 언론의 사회적 가치를 알리는 사회 교육으로까지 연장해보자는 주장이다. 네 번째는 포털의 자정 노력에 대한 촉구였다. 사실 포털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일자 포털은 자정 노력을 결의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대 사회 발표를 한다. 아쿠아 프로젝트로 명명한 이 결의는 포털을 규제하는 사회적 장치를 미리 막아내려는 예방 작업으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주장으로 포털 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해 네티즌들이 포털을 비판하도록 하는 장치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다.
다섯 번째는 구매체와 포털간의 공생의 가능성을 찾자는 제안이다. 종이 신문이 구어 매체를 대체했듯이 포털이 구매체인 종이 신문 등을 대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보면서, 신 구매체의 공생 가능성을 점쳐 보자는 주장이다. 여섯 번째는 사회적 인식을 높이되 포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구해가는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의 담론들이다. 이 입장은 위의 여러 유형들에 대해 구체적인 반대를 하지는 않으나 많은 준비를 한 상태에서 포털을 규제하거나, 책임을 묻는 장치를 만들거나, 균형발전을 위한 구체적 제안을 내놓자는 입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포털 이용이 갖는 의미를 사회가 고민하도록 의제를 사회화하고, 학술적으로 포털의 정치경제학, 포털의 메커니즘, 지금까지의 포털의 내용적 구성 등을 연구하는 일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다양한 주장들 중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리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모두가 따로 또 같이 논의되어야 할 사안이다. 지속적으로 책임공방을 벌이는 일보다, 생산적으로 데이터를 구하고, 가설적 주장들을 검증해보는 일이 더 요청된다. 그 결과를 놓고 사회적 소통과 연관지어 과연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적정한 소통 방식과 정도는 어떤 모습인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 포탈에만 국한되는 과정은 아니다. 최근 들어 난개발이라는 비판을 받아가면서까지 진행하고 있는 디지털 방송 영역 또한 마찬가지다. 신기술 방송이 공공영역을 얼마만큼 지켜가며(깍아가며) 방송영역에 진입해 얼마만큼의 양질의 소통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같은 논의방식이 있어야 한다. 결국 현 시점의 포털 서비스에 대한 논의는 전방위적인 형태를 띠어야 하며, 글 머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사회적 소통과의 연관성에서 이뤄져야 한다.
나가는 글
포털의 뉴스 서비스를 두고 포털 저널리즘으로 부르자는 제안이 있다. 그 이름으로 포털을 저널리즘 영역 안으로 끌어들여 사회적 논의에 불을 지피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이는 매우 생산적인 제안이다. 법적 규정을 정하기 전에 사회적 규정을 통해 분석하고, 평가하는 일을 먼저 해내야 함을 주장인 셈이다. 그 과정을 거쳐서 만약 필요하다면 제대로 된 법제화로 나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한국에서의 포털 서비스는 이미 첨단을 달리고 있어 외국의 사례를 참조하는 일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울하고 딜렘마적 언론을 사회가 겪고 있기 때문이다. 포털 저널리즘 논의는 한국의 사회적 소통을 점검하고, 언론의 미래를 점쳐 보는 일이기도 하다. 원용진(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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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4일 1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