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공동제작영화 ‘안녕, 사요나라’ 시사회
그러나 양국 사이에는 과거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일 우정의 해’라는 올해도 양국간의 역사인식의 차이가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한일 양국은 어떻게 과거를 마주보아야 하는 것일까. 두 나라 사이의 상처를 치유하고 갈등을 넘어서 진정한 친구가 되는 방법은 무엇일까.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한일간의 아픈 과거를 털어버리기 위해 <새로 쓰는 한국기록영화>,<분단을 넘어선 사람들>로 잘 알려진 연출가 김태일씨와 <당신은 14세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No War On Iraq> 의 일본 연출가 카토 쿠미코의 한일공동 시사 영화 “안녕, 사요나라”가 오는 25일 영화관 상영에 앞서 16일 오후2시 서울 종각 부근 씨네코아에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갖는다.
영화 줄거리
야스쿠니신사에 일본인 전범과 함께 모셔져 있는 강제징용된 부친의 유골 등 한국인 유골의 국내 송환과 일본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소송을 하고 있는 한국인 유족 이희자씨.
일제강점하 한국인의 피해보상을 위해 활동하는 일본인 후루카와씨가 이 영화의 두 주인공.
두 사람은 1995년, 대지진으로 수 천명이 죽었던 일본 고베에서 처음 만났다. 이희자씨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후루카와씨가 그녀의 표정을 이해한 것은 몇 년이 지난 뒤였다. 그녀가 왜 그토록 야스쿠니 신사 합사 취하소송에 매달리는지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2001년부터 두 사람은 야스쿠니신사 문제로 함께 싸워 왔고, 올해 3월 한국과 대만, 오키나와, 일본의 유족들이 공동으로 집회를 열었을 때도 같이 있었다.
지난 6월 두 사람은 이희자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중국 광서성을 찾았다. 60년 만에 아버지에게 제사를 올리며 통곡하던 이희자씨. 비가 내렸고, 후루카와시는 그녀 옆에서 그저 말없이 우산을 씌워주었다…
이 영화의 소재인 야스쿠니 신사
세계 여러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도 자연이나 사물, 조상을 신으로 섬기면서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전통종교가 있으며, 이것을 신도라고 하는데 신사는 신도의 중심시설이다. 지금도 많은 일본인들이 근처 신사를 찾아 가족의 건강과 성공을 위해 기도한다.
야스쿠니 신사는 성격이 다르다. 야스쿠니가 모시는 신은 “천황의 심정처럼 영원한 평화를 기원하면서 일본을 지키기 위해 존귀한 생명을 바친 이들”이다.
야스쿠니신사는 1869년(메이지 2년)에 건립된 도쿄 초혼사에서 유래했다. 300여년간 정치·군사적 실권을 장악한 도쿠가와 막부 세력을 누르고 집권한 메이지 천황은 정권획득을 위한 내전에서 죽은 자기측 군인 3,600여명의 합동 초혼제를 지내고 영령을 도쿄 초혼사에 안치했다. 이후 메이지 정부는 초혼사를 야스쿠니 신사로 개칭하고 육·해군성의 독점적 관할 하에 두고 지위도 천황의 조상신이나 황족을 모시는 신사에 다음가는 별격관폐사로 승격, 이후 청일전쟁을 필두로 1945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일본의 대외 침략전쟁에서 죽은 이들이 모두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되어 있다.
2005년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도조 히데키 등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한 일본인 260여만명과 한국인 2만1,000여명, 대만인 2만8,000여명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제작 스탭들은 모두 태평양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젊은 세대지만 함께 촬영하고 밤새 이야기 하면서 제작에 임했다. 제작과정 바로 그것이 일본과 한국의 우호관계를 진전시키는 한 걸음이 됐다고 느꼈고, 양국의 많은 시민들도 이 영화를 보고 우리와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연락처: 한일공동다큐멘터리 ‘안녕, 사요나라’ 제작위원회: 02-96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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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도자료는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이) 작성해 뉴스와이어 서비스를 통해 배포한 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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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3일 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