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첫 정기국회 유감

서울--(뉴스와이어)--17대 국회는 젊습니다. 평균 연령도 그러하고 무려 187명이 초선의원입니다. 또한 매우 성실하며 의욕에 넘치는 의정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의원들이 발의한 의원발의법안의 건수만 보아도 그렇고, 연중 내내 열렸던 각종 공청회와 정책간담회, 토론회가 이를 반증합니다. 이런 면만 보면 얼핏 ‘일하는 국회’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또한 과거 국회가 가졌던 국회의원의 허위적인 권위주의를 벗어던지고 있습니다. 대통령부터가 자신의 권력과 권세를 누리지 않고 분권화시키고 탈권위주의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탈권위주의화 현상은 새로운 집권세력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큰 변화이면서도 소리 없이 진행되는 성공한 개혁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러나 17대 국회는 여전히 치욕스런 16대 국회와 견주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국민과 언론은 연일 ‘별반 다를 것 없는 17대 국회’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바뀌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무엇인가 만들고 연구하고 대안을 내오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혹은 몇몇 뜻 맞는 의원들만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문제는 형식입니다. 내용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모두 일정 정도 성숙하였지만, 그 컨텐츠를 담아내고 운영하는 프로세스로서의 형식이 정치문화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17대 국회가 여전히 과거 군사독재시절의 낡은 운영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과거 국회는 군사정권의 강력한 견제와 통제를 받으며 일방통행만 강요되던 ‘통법부’라는 치욕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입법부가 독립적인 헌법기구로서의 토론과 대화, 타협보다는 군사정부의 일방적인 입법의도가 관철되어 형식적인 명분을 얻는 통로 구실 밖에 못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군부독재정권은 우리 사회 곳곳에 수많은 병폐들을 만들어 놓았을 뿐더러, 입법부인 국회마저 지극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토론과 대화를 통한 타협조차 하지 못하는 심각한 병리현상으로 오염시켜 놓은 듯 합니다.

토론과 대화를 어렵게 생각하고 기피하려고 하는 세력들은 자신들이 옹호하고 지켜 내야할 기득권을 위해 이미 정해진 결론만이 용납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국회를 두고 벌어지는 일종의 관전 태도입니다. 과거 군부독재시절 야당은 정말 말도 못할 감시와 억압 속에서 의회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하여 싸워왔습니다. 당시 언론이 폭압적인 군부독재정권과 여당을 나름대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중립성과 공정성’이라는 피상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잣대로 애써 야당의 잘못을 부풀리는 「양비론」을 펼쳐왔습니다. 양비론은 결코 가치중립적인 공정한 잣대가 아니라, 철저히 거대군부여당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것을 방조하는 편법적인 방법론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17대 국회를 평가하고 재단하는 잣대 또한 과거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내용과 형식에 대한 진지한 평가보다는 ‘여야가 싸우고 있다’, ‘싸우는 형국을 보니 과거와 다르기는커녕 더 심하다’, ‘역시 그놈이 그놈이다’ 라는 식으로 정치허무주의를 조장하는 결과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러한 국회의 낡은 운영 방식과 비겁한 평가 잣대는 결국 정치권 전체를 몰염치의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자신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양쪽으로 똑같이 쏟아지는 비판은 억지와 떼를 쓰고도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심지어 법사위에서는 161명의 국회의원이 발의한 국가보안법 폐지안 및 형법 보완안이 상정되지도 못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수당의 논리로 자신들이 만든 국회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국회내 논의의 시작을 의미하는 법안 상정조차 가로막은 행태는 지난 수 개월 전 개원 협상 당시 법사위원장직을 갖기 위해 몇날 며칠을 국회를 파행시켰던 한나라당의 본의가 드러난 것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헌법 기구인 동료 의원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간첩으로 몰아버리는 백색테러까지 자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파렴치한 행위가 국회에서 공공연히 벌어질 수 있는 것은 누구누구의 잘못이 정확히 알려지고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국회 파행”이라는 ‘양비론의 장막’ 속에 가려질 것이라는 얕은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책임은 물론 정치권입니다. 누구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제대로 된 정치문화와 성숙한 정치문화를 갈망하는 것이 우리 정치권만으로는 해결이 더딜 수 있고 이를 좀 더 빨리 깨치고 나아가기 위해서 전체를 조망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법사위와 동료 의원에 대한 백색테러 등 최근 국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의회 민주주의의 기본 시스템이자 의회주의의 기본 틀을 다시 한번 곧추 세워야겠습니다. 자신들의 입장과 이해관계에 조금만 어긋나도 같이 마주앉아 대화하고 협상하기를 거부하고 표결조차 하지 않는 행위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또한, 20세기 낡은 메카시즘으로 21세기를 재단하려는 낡아빠진 행태도 용납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국회 운영에 관한 법률이 엄연히 있음에도 ‘떼법’과 ‘억지법’이라는 그들만의 상위법으로 헌법과 국회법의 정신을 맘 놓고 유린하는 행태를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당 또한 고질적인 양비론에 잔뜩 움츠린 모습은 아니었는지, 멀리보고 크게 생각하는 대신 지금 당장 현실의 비위만 맞추려는 급급함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자성해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주장과 핵심 법안의 관철을 위해서 얼마나 절실하게 노력하였는지도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또한, 국민과 반대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지도 둘러봐야 합니다.
저 자신도 이러한 책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준비와 진행정도를 보면 입버릇처럼 되뇌이던 “연내 4대개혁법안 처리”라는 말이 무색할 지경입니다. 비록 한나라당의 비협조와 지연전술, 일부 언론과 이해관계자들의 집요한 공격도 하나의 핑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당당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과반의석의 집권여당으로서 야당의 합리적인 대안제시와 의사진행은 적극 수용하여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원칙에 입각해 과감히 돌파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총선에서 승리 이후, “자만하고 있다”, “내부 분파간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 “잡탕정당이다”, “좌파세력이다” 라는 온갖 못된 소리를 들어가면서도 그동안 151석의 과반여당을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4대 개혁법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역사적 정당성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열을 다시 정비하여야 합니다.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연내 처리를 가시화시키지 못할 경우, 4대 개혁법안에 대한 찬반론자를 막론하고 우리당과 지도부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가 예상됩니다.

당 지도부와 원내대표단의 무능과 전략부재를 집중 질타하여 개혁 구심점을 무력화 시키려는 파상 공세도 예견됩니다. 이는 참여정부의 정책 추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전 사회적으로 급속히 반개혁진영의 단결과 개혁진영 분열의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4대 개혁법안’을 저지하기 위해 기금관리기본법, 민간투자법, 공정거래법 등 경제관련 법안들을 연계하여 저지하고자 하는 한나라당의 민생과 경제살리기를 볼모로 한 인질극을 더 이상 묵과해서도 안됩니다. 인질극에는 네고시에이터를 통한 협상전술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대테러 작전을 통한 소탕만이 해결책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17대 국회의 첫 정기국회를 마무리하면서, 연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국회의사당에서, 의원회관에서, 도서관에서 열정적으로 의정활동에 임하신 모든 동료·선배 의원님들께 다시 한 번 경의를 보냅니다.

그러나, 정기회 일정 중 보름을 파행으로 보낸 우리 국회는 조속한 시일 내에 임시국회를 소집하여 산적한 민생·경제 법안과 현안을 해결하여야 할 것입니다. 임시회 동안에는 진심으로 송구영신의 마음으로 낡은 정치관행과 행태를 돌파하고 당선자 시절의 패기와 동력으로 개혁과 민생의 수레바퀴를 전진시킵시다.

그것이 올해 개혁국회를 만들어 준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자, 새로운 역사를 향한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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